줄탁(茁啄)이란
줄탁(茁啄)이란 말이 있습니다.
줄(茁)이란
알 속의 새끼 병아리가 밖으로 나오기 위하여 껍질을 쪼는 것을 말합니다.
탁(啄)이란
병아리가 나오는 것을 돕기 위하여 어미가 바깥에서 껍질을 쪼는 것을 말하지요.
안과 밖, 어미와 새끼
그 둘의 시기가 딱 맞아야 한답니다.
너무 이르거나 늦으면 질식해 죽거나 미숙아로 죽고 만다는군요.
'줄탁(茁啄)'
이것은 병아리와 어미의 마음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어긋나지 않은 사랑의 정점이지요.
관심과 진정한 사랑이 있어야 보이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살면서 절실할 때 느닷없이 다가온 은인들
어느 순간 섬광처럼 눈앞을 환히 밝혀주던 경구 혹은, 한 소식
그 순간이, 그 만남이 그 지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그대와 나,
일체의 욕심과 바람과 허위를 버리고
오랜 기다림과 관심과 사랑이어야만 보이는 마음의 자리
그래야만 알 수 있는 바로 그때.
그래서 창조되고 완성되는 새로운 세계
줄탁!
아, 사랑 아닌 것이 없군요.
나이듦에 관하여
지금보다 젊었던 때,
얼른 나이 들길 원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행동과 몸은 돌멩이보다 단단하고 정확했으며
언어는 가시보다 날카로워
그 말과 행동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이웃 형제들을 상처 내고 재단하고
그것이 정직하게 제 스스로에게 날아와 스스로를 무너뜨리던
지치고 아프고 암울했던 시절.
나일 먹으면
부드러워지고 관대해질 줄 알았습니다.
저절로 온화해지고 깊어질 줄 알았던 거지요.
어서 나일 들었으면....
이제 압니다.
세월만으론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세월의 경험만으론 오히려 저를 더 완고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성찰하고 헌신하며 전체와 내면을 통찰하도록 돕는
그 어떤 노력들이 수반되지 않고는
그러한 노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여행과 독서, 고요한 명상 혹은 기도, 몸으로 사는 삶.
이런 것들이 모이고 쌓여 제 영혼과 의식의 결을 이루고
착한 행실과 따뜻한 시선으로 이웃을 바라보다 보면,
어쩌면 언젠가는 그냥 제자리에서 제 스스로 빛나는
맑고 지혜로운 노인이 될 수도 있지 않을는지....
새봄 이런 꿈을 함께 나눕니다.
그대, 그 자리에 계셔 참 고맙습니다.
가서 쉬어라
성서에 보면 전교 여행을 마치고 온 제자들이 스승님께 그간의 일들을 말씀드리자 스승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외딴곳에 가서 좀 쉬어라."
'쉼'은 '비움'입니다.
비워야 부드러워집니다.
모든 생명은 이 부드러움에서 싹 틉니다.
부드럽지 않은, 비어있지 않은 곳에서는 아무 생명도 창조되지 않습니다.
창조의 힘과 완성은 '쉼'입니다.
신께서도 천지를 창조하시곤 이레째 되는 날 쉬십니다.
어느 광고도 있지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우리도 쉬어야 합니다.
온전한 '쉼'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어떻게 쉴 것인가
하루에 적어도 이, 삼십 분
고요히 앉아 내 안의 진정한 참모습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즐기는 일
일 년에 적어도 보름 정도
익숙한 내 자리를 떠나 낯선 곳에서 전혀 타인처럼 훨훨 살아 보는 일
그대가 본시 대자유하고 완전한 존재이기에
가끔은 이곳을 떠나
고요한 그대의 자리로 돌아가 머무는 그것
"너희는 가서 좀 쉬어라."
제 밥을 덜게 하소서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교육받아야 합니다.“
나눔 단체 JTS의 생각입니다.
아, 진실은 이처럼 단순합니다.
무슨 군더더기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신영복 교수의 말씀도 떠오릅니다.
“…창 밖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다면
우리에게는 달콤한 잠을 잘 권리가 없다……“
ARS라도 누르는 마음, 그것이 사랑 자비의 실천이겠지요.
나눔의 평화!
그래서 오늘 우리의 기도는 이렇습니다.
“제 밥을 덜어 그들과 나누게 하소서.”
‘괜찮아’는 미래의 언어입니다
'괜찮아'라는 말은 상대방을 신뢰하고 기대한다는 아름다운 언어이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괜찮아’는 미래의 언어입니다.
‘왜 그랬니?’
‘이거 어떻게 할 거야?’가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추궁과 질책을 담고 있는
과거의 언어라면
‘괜찮아’는
그 존재에 대한 신뢰와 기대의 언어이며,
기다림의 언어입니다.
제가 한 잘못된 일에 잔뜩 주눅 들어있는 아이에게, 자녀에게, 친구에게
가장 다정한 말투로, 표정으로, 눈길로 말해줍니다.
“얘야, 괜찮아.”
“야, 괜찮아, 임마!”
“아빠, 괜찮아요.”
“여보, 괜찮아.”
그리고
눈을 맞춥니다.
꼬옥 안아줍니다.
따뜻하게 손을 잡아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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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쓸수록 참 괜찮은 말
‘괜 ․ 찮 ․ 아’
진정한 교훈이나 급훈은 이런 것
한 초등학교 복도 벽에 쓰여진 글이 많은 사람의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어떤 친구들이 너보다 공부를 더 잘 할 수 있어.
어떤 친구들이 너보다 멋진 옷을 입을 수도 있어.
어떤 친구들이 너보다 운동을 더 잘 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런 건 결코 중요하지 않아.
너 또한 너만의 무언가를 갖고 있거든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봐.
주위 사람에게 너그럽고 친절한 사람,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그런 사람,
그리고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자고.
그런 훌륭한 사람이 말야.
진짜 재산이란
동물은 배가 부르면 아무리 맛난 게 눈앞에 있어도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지구상의 생명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만이 먹을 게 썩어들어갈 정도로 많아도 더 쌓아두려고 합니다.
재산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진 게 차고 넘쳐도 더 가지려고 합니다.
자신의 재산을 세고 관리하기 위해 사람을 채용해야 할 정도로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이 조금 더 가지려고 다른 이의 재산을 탐냅니다.
하지만 그렇게 쌓은 재산은 자신이 죽은 뒤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쌀 한 톨도, 단 돈 십 원도갖고 가지 못합니다.
진짜 재산은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 작은 친절, 부드러운 말 한마디, 조건 없는 베풂, 다른 존재를 위한 기도, 어려운 이를 돕는 봉사, 핍박받는 이를 위한 지원 등.
이런 것들이야말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늘에 쌓는 부입니다.
죽은 뒤에도 지니고 있게 되는 참된 재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