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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계 어려운 음악인 위해 고품질 유료공연 플랫폼 개발 중

    코로나19가 경제에 끼친 여파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날이 갈 수록 폐업하는 가게들이 늘어났으며, 취업시장에는 어느 때보다 차가운 한파가 들이닥쳤습니다.

     

    문화, 예술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각종 공연의 취소, 레슨의 감소 등으로 오로지 음악의 길에 매진하던 이들은 생활고에 직면하게 됐고, 택배, 배달, 대리운전 등 음악과는 전혀 관련 없는 직종에 뛰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음악인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유료공연 스트리밍 플랫폼이 올해 말 등장합니다. 예비사회적기업 오디오가이에서 개발 중인 '라이브 360'은 pc,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통신기기들을 통해 고품질의 공연을 접할 수 있는 유료공연 스트리밍 플랫폼입니다.

     

    오디오가이는 레코딩 서비스 및 음반 기획, 제작 등을 담당하는 오디오 전문 회사로, 지난 2월 오디오가이는 스위스 바젤에서 활약하는 바리톤 이응광과 함께 무관중 공연 스트리밍 이른바 방구석 콘서트를 개최해 좋은 반응을 끌어냈습니다. 이후 전국적으로 방구석 콘서트가 붐을 이뤘으나, 일부 국공립기관을 제외하면 완성도가 떨어지는데다, 무료공연이라 정작 음악인들의 수입은 전무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오디오가이는 '라이브 360'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연의 완성도를 최대로 높이기 위해, 각 콘텐츠에는 3D 사운드 기술이 접목될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오디오가이는 올해 초부터 돌비코리아와 협멱해 국내 최초로 '돌비애트모스뮤직 3D 사운드 콘텐츠'를 제작 중입니다. 또한 음악인들의 부가적인 수입을 위해 음반 및 LP, 굿즈 제작 등 각종 수익 창출 방안 또한 마련하고 있다고 합니다.

     

    최정훈 오디오가이 대표는 라이브 360을 통해 공연문화를 좀 더 대중화시키고, 예술인들 또한 안정적인 수입으로 창작활동에 집중하는 생태계를 만들 것이라고 합니다. 이어, "3D 사운드를 접목한 라이브 공연 스트리밍 서비스는 전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다"면서, 향후 한국 아티스트가 만든 영상이 애플TV, 넷플릭스 등에 송출된다면 큰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지난 해 오디오가이는 2016년부터 진행한 프로젝트 '울림'을 계기로 문체부 지정 예비사회적기업이 됐습니다. 올해로 5년차인 프로젝트 '울림' 경제적으로 어려운 음악인들을 위해 음반제작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로, 지금까지 약 20여 명을 지원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에서의 활동을 포기하려던 네덜란드 음악가 부부가 재기할 수 있었으며, 이재하의 거문고산조 음반은 KBS 국악대상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 BTS, 청와대에서 청년들을 응원하다

    방탄소년단이 청년들에게 보낸 응원 메시지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19일 제1회 청년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방탄소년단은 "여러분의 훌륭한 생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그보다 더 미래의 청년을 위해, 앞장서 시대의 불빛이 되어주기를 바란다"라면서, 대한민국의 모든 청년들을 응원한다고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초청으로 기념식에 참가한 방탄소년단은 대표연설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겪었던 경험, 좌절 등을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미래의 청년 여러분, 우리가 서로 청년과 어른으로 마주하게 되어도, 이쪽이 맞는 길이다, 방법은 이게 좋다 등의 말 대신, 방탄소년단이 해낸 것처럼, 항상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지키고, 여러분이 함께 돕고 의지하며 (나아가고자 하는 길로) 갈 수 있게 격려하겠다" 라며 청년들을 응원했습니다. 

     

    아래는 방탄소년단의 대표연설 전문입니다.

     

    ▶RM 

     

    안녕하세요.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입니다.

     

    오늘 ‘제1회 청년의 날’을 맞아 이 자리에 섰습니다. 초대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탄생한 청년의 날이, 19년 후 진짜 청년이 되는 날, 문득 그날을 한 번 떠올려봅니다.

     

    저희는 오늘, 미래의 주인공이 되어있을, 그 날의 청년 분들께 메시지를 전해보려고 합니다.

     

    미래의 청년 여러분, 잘 지내고 계십니까.

     

    먼저, 전 세계 어딘가에서 지금도 도전을 멈추지 않고, 용기 있게 삶을 이끌고 계실 대한민국의 모든 청년분들께 응원의 말씀을 전합니다.

     

    지금부터는, 스물일곱. 많지 않은 나이지만, 롤러코스터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어느 일곱 청년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만약 미래의 삶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면, 2020년 저희의 이야기가 작은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이홉 

     

    빌보드 1위 가수. 글로벌 슈퍼스타.

     

    저희는 요즘, 이런 멋진 표현들을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너무 비현실적인 기분입니다.

     

    사실 시대와 관계없이, 아이돌, 아티스트라는 직업은 이정표가 없는 길과 같습니다.

     

    음악이란 큰 꿈 하나 메고 떠나지만, 내가 걷는 길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이제부터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 한참 가다가 너무 힘들어 멈췄을 때 조금만 더 가면 코앞이 낙원일 지, 낭떠러지인지 알 수 없습니다.

     

    저희의 시작은 그랬습니다.

     

     

    ▶슈가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데뷔 초, 방탄소년단은 오기와 패기, 열정과 독기를 무기삼아 감히 예측도 할 수 없는, 그런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보다 더, 성공하고 싶었습니다.

     

    작은 회사에서 데뷔해 많은 어려움, 걱정과 맞서가며, 어쩌면 무모하고, 어쩌면 바보 같을 만큼 앞뒤 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몰랐지만, 먼 훗날 다 추억이 될 것이고, 지금 힘든 것들은 다 지나갈 것이다, 그렇게 절실하게 주문을 외웠던 것 같습니다.

     

     

    ▶지민 

     

    쉬지 않고 달린 것 같은데, 분명 우리는 열심히 하고 있는데, 참 오랜 시간 동안 제자리였습니다.

     

    서로 예민해지고 다투고, 지쳐갈 때쯤, 일곱 명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저희의 일을 도와주시던 형들이 해 주시던 말씀, “너희를 다 이해할 순 없지만 마음이 많이 아프다. 함께 힘을 내 보자”.

     

    어쩌면 너무나 평범한 그 한 마디, 따뜻한 그 말이 저희에게는 큰 힘이 됐습니다.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청년들에게, 큰 불빛이 됐습니다.

     

     

    ▶진

     

    그 시절, 스무 살이 갓 지났던 저는 또 다른 현실과 싸워야 했습니다.

     

    데뷔하기 전엔, 노력만 하면 뭐든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데뷔를 하고 보니 노력보다는 재능이 필요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친구들을 따라가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의 자신감, 자존감은 크게 아파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문득 깨닫게 됐죠.

     

    진짜 내 모습은 뭘까? 지금 내 모습에 더 당당해져도 되지 않을까? 자신을 믿어보자.

     

     

    ▶제이홉 

     

    어느 새 방탄소년단이 걷던 길은 조금씩 넓어지고, 밝아졌습니다.

     

    팬들의 행복한 얼굴도 보이고, 그렇게 마냥,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큰 사랑과 관심만큼, 저희의 그림자도 점점 크고 무거워졌습니다.

     

    음악을 사랑했던 우리의 마음까지, 짓누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누구인가? 어떤 사랑을 받고 있는가?

     

    치열하게 자신을 다그치며, 되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뷔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쳤던 것 같습니다.

     

    이젠 내가 어디로 가는 건지, 좋아 보이는 이 길도, 내가 원치 않는 길은 아니었을지,

     

    목표를 잃어버린 듯 했습니다. 행복하지 않았고, 공허함이 밀려왔습니다.

     

    감정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스스로에게 솔직해지자. 감정 하나 하나까지 느끼고, 쏟아내자.

     

     

    ▶정국

     

    마치 거짓말처럼, 멤버들과 팬들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힘내 보기로 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길에서 시작했는데, 이젠 서로가 서로의 이정표가 된 것 같았습니다.

     

    함께 하는 것이 고맙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우리의 할 일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알게 해줬습니다.

     

    혼자 걸었다면, 이렇게 멀리 오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즐겁게 춤추며 달려가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RM

     

    2018년 무렵, 과분한 성공을 얻고, 일곱 멤버가 모두 방황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걷고 있는 길에 꽃밭이 펼쳐지고, 탐스런 열매가 떨어져도, 저희는 그 길이 늘 그럴 것이다, 믿지 못합니다.

     

    언제 다시 내리막이 시작되고, 또 폭우가 쏟아질지 모르기 때문이죠.

     

    그런 불안과 우울의 끝에서 저희 일곱은 다시 소년이 된 듯, 서로에게 꿈과 믿음을 불어넣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20년 8월이 됐습니다.

     

    빌보드 1위. 그리고 또 한 번 빌보드 1위.

     

    우리가 다시 일어섰을 때 주신 이 상들, 우리 일곱 명 모두, 눈물을 흘리며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더욱 감사한 건, 지난 십 년 동안, 포기와 낙오의 순간에 서로 단단히 붙잡고 의지가 되어 준 우리 멤버들과 팬들입니다.

     

     

    ▶진

     

    미래의 청년 여러분, 미래가 되어, 우리가 서로 청년과 어른으로 마주하게 되어도, 이쪽이 맞는 길이다. 방법은 이게 좋다. 이런 삶이 훌륭하다. 이것이 정답이다, 말하지 않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늘 강하고, 대단했습니다.

     

    대신, 순간의 행복과 불행이 인생 전체를 좌우하지 않도록, 2020년의 방탄소년단이 해낸 것처럼, 항상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지켜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함께 돕고 의지하며 갈 수 있게, 격려해드리겠습니다.

     

    어제의 청년들처럼, 오늘의 청년들처럼,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멈추지 않고 계속 씩씩하게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훌륭한 생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그보다 더 미래의 청년을 위해, 앞장서 시대의 불빛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방탄소년단이 대한민국의 모든 청년 분들을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방탄소년단 '다이너마이트', 기네스 세계 기록 3개 갱신

    방탄소년단(BTS)이 신곡 '다이너마이트(Dynamite)'로 기네스 세계 기록을 갱신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 1일(현지시간),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 뮤직 비디오가 '24시간 동안 가장 많이 본 유튜브 영상'으로 공인받았습니다.

     

    기네스 월드 레코드에 따르면, '다이너마이트' 뮤직비디오는 공개된 지 24시간 만에 유튜브에서 1억 110만 뷰를 달성해, '24시간 동안 가장 많이 본 유튜브 영상'으로 공인받았다고 합니다.


    이어, 기네스 월드 레코드 측은 '다이너마이트' 뮤직 비디오가 '24시간 동안 가장 많이 본 유튜브 뮤직 비디오', '24시간 동안 가장 많이 본 K팝 유튜브 뮤직 비디오'로도 등재됐다고 밝혔습니다.

     

    이번에 갱신된 3개 부문의 기네스 세계기록은 지난 6월 발표된 블랙핑크(BLACKPINK)의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이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21일 발매된 '다이너마이트'는 "환하게 불을 밝힐 거야!"라는 방탄소년단의 희망 메시지가 담긴 곡입니다. 방탄소년단 멤버인 RM에 의하면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기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이 곡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방탄소년단의 마음이 담긴 이 곡은 발표된 지 첫 주에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1위를 달성했으며, 9월 첫째주에는 아티스트 100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로써 방탄소년단은 '아시아 아티스트 중 21세기 최초로 핫 100 차트 1위 달성', '한국 아티스트 중 최초로 빌보드 양대 차트 석권', '비영어권 가수 최초로 핫 100, 아티스트 100, 빌보드 200차트 1위 석권' 등의 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 스포티파이, 반려동물 전용 플레이리스트 제공

    스포티파이가 반려동물 전용 음악을 서비스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1월 15일 세계 최대 스트리밍서비스 업체 스포티파이는 반려동물을 위한 플레이리스트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이 서비스의 고객은 개, 고양이, 햄스터, 이구아나, 새 등입니다.

     

    플레이리스트에는 동물의 정서를 안정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음악들이 들어 있고 동물 정서를 안정시키는 메시지와 개를 칭찬하는 소리 등이 담겼습니다.

     

    스포티파이는 활달하다,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 등 동물의 성격에 따라 음악의 종류가 정해지는 알고리즘도 적용했습니다.

     

    이용자는 반려동물의 종류를 선택하고 자신의 반려동물의 특징을 설명하고 이름과 사진을 올리면 됩니다.

     

    스포티파이가 이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 것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신의 반려동물이 음악에 반응한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부터였습니다.

     

    스포티파이는 반려동물 주인의 71%가 동물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10명 가운데 8명의 반려동물 주인이 자신이 키우는 동물이 음악을 좋아한다는 조사 결과를 근거로 들었습니다.

     

    밥 말리, 엘비스, 프레드 머큐리, 보위, 오지 등 반려동물 이름의 20%가 주인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땄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고 합니다.

    

  • 눈밭에 발로 그린 놀라운 그림

    사이먼이 눈 위에 그린 기하학적 그림. [이미지 : 사이먼 벡 인스타그램]

    사이먼 백은 스노우 아티스트로 불립니다. 눈 위에 발자국으로 만든 거대한 기하학적 문양이 그의 작품입니다.

     

    영국 출신인 사이먼은 2004년 크리스마스 때부터 이 같은 활동을 시작해 해마다 겨울이면 눈밭에 화려한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사이먼의 작품은 자연 그 자체입니다. 거대하고 화려한 기하학적 무늬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스노우 슈즈와 그 자신의 노동력 뿐입니다.

     

    [[IMAGE|687|center|사이먼이 스노우 슈즈를 통해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 [이미지 : 사이먼 벡 인스타그램] ]]

     

    모든 작품은 자신이 눈밭 위를 걸어가며 만든 ‘발로 그린 그림’입니다. 크기는 축구장 크기의 5배 이상이 될 정도로 큽니다. 작업에 걸리는 시간도 최소 일주일 이상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기온이 올라가면 흔적조차 없이 녹아 없어집니다. 티벳 스님들이 수행을 위해 물들은 돌가루로 만다라를 그린 뒤 무심하게 없애버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IMAGE|685|center|사이먼이 눈 위에 그린 기하학적 그림. [이미지 : 사이먼 벡 인스타그램] ]]

     

    사이먼은 작품 아이디어를 자연에서 얻습니다. 눈송이, 선인장 가시, 대마초 잎 등에서 얻은 기하학적 영감을 바탕으로 ‘설계도’를 그린 뒤 일일이 발자국을 찍어 눈 위에 아름다운 기하학적 무늬를 만듭니다.

     

    그는 지금까지 세계 각지를 다니며 300여 개의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사이먼의 올해 작업장은 콜로라도 실버스론입니다. 2일부터 시작한 작업은 16일에 완성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 이영표 전 국가대표 선수가 양말 사업을 하는 이유

     스타트업 기업인 '삭스 업(Socks up)'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이영표 전 국가대표 선수 [이미지 : 꿈 스페인 유튜브 캡쳐]

    이영표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가운데 한 명입니다. ‘헛다리짚기’ 드리블로 전 국민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요.

     

    그 뒤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독일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 사우디아라비아 알 힐랄, 캐나다 밴쿠버 화이트캡스 등 세계 유명 축구 클럽에서 활약했습니다.

     

    은퇴한 뒤에는 KBS 축구 해설위원으로 경기 결과를 족집게처럼 맞히는 ‘예언’으로 시청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축구가 삶 그 자체였던 이영표 씨는 지금 전혀 낯선 분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그의 일터는 하는 곳은 사회적 기업들의 성지인 서울 성수동 소셜 벤처 빌딩입니다. 스타트업인 ‘삭스 업(Socks up)’의 대표가 그의 직함입니다. 삭스 업은 양말이나 풋 크림과 같은 풋 웨어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회사입니다.

     

    ‘삭스 업’은 축구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넘어졌다 일어날 때 혹은 프리 킥이나 코너킥을 차기 전에 무의식적으로 양말을 끌어올리는 행위를 일컫는 말입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마음을 다잡는다는 뜻을 담고 있지요.

     

    이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른 이들을 돕고 ‘삭스 업’ 시키고 싶었는데 기부를 받아서 하는 것은 지속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삭스 업은 홈페이지에 자신들이 하는 일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양말을 끌어올리게 되는 인생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저희는 이 순간들을 ‘SOCKSUP MOMENT’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SOCKSUP MOMENT는 당신의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순간일 수도 있고, 위기를 극복하게 해준 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묻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의 삭스 업 모멘트는 언제인가요? 누군가의 SOCKSUP MOMENT를 한 켤레의 양말로 구현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것이 단순한 양말 한 켤레를 넘어, 여러분의 일상 속 크고 작은 ‘순간’들을 일깨워주는 작은 상징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홈페이지의 글처럼 삭스 업은 누군가의 스토리를 한 켤레의 양말로 만들어 그 양말을 신는 사람에게 힘과 위안을 주고 한 사람의 SOCKSUP MOMENT가 다른 사람의 SOCKSUP MOMENT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탄생한 상품이 유명 힙합 아티스트 코드쿤스트의 편지로 디자인한 양말입니다.

     

    코드쿤스트는 무명 시절 자신을 알리고 싶어 미국의 유명 래퍼인 조이 베데스에게 메일을 보냈다고 합니다. 당연히 답장이 없었지요.

     

    그는 실망하지 않고 베데스의 매니저, 스타일리스트 등 주변 인물들에게 계속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우연히 편지를 읽은 매니저가 그의 음악을 베데스에게 들려줬고 그는 코드쿤스트를 당장 로스앤젤레스로 초청했습니다. 그렇게 코드쿤스트는 유명 아티스트가 될 수 있었습니다.

     

    삭스 업은 코드쿤스트가 베데스에게 보낸 편지로 디자인 한 양말을 만들었습니다.

     

    [[IMAGE|638|center|삭스업에서 제작한 코드쿤스트가 베데스에게 보낸 편지로 디자인한 양말 [이미지 : 삭스업 홈페이지] ]]

     

    홈페이지에 동영상으로 올라 있는 ‘SOCKSUP MOMENT - Footprint Project VOL1’은 누군가에게 SOCKSUP MOMENT를 주기 위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주인공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사는 17세 소년 사킬레 미콴다입니다. 그는 축구가 자신의 인생이라고 할 정도로 축구를 좋아하고 프로 선수가 되고 싶어 하는 소년입니다.

     

    그가 사는 우스터는 케이프타운에서 동쪽으로 130km 떨어진 작고 가난한 마을입니다. 우스터는 꿈도 희망도 없이 깡패가 되거나 마약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에서 프로 입단 테스트를 받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삭스 업에 100통 가까운 편지를 보냈습니다.

     

    2018년 5월 삭스 업은 그를 초청해 테스트 기회를 줬습니다. 안타깝게도 불합격했습니다. 하지만 미콴다의 표정은 밝았다고 합니다. 아프리카에 태어났기 때문에 기회가 없는 게 아니라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는 억울함이 사라졌다는 겁니다. 미콴다는 자신도 남에게 기회를 주는 삶을 살고 싶다는 다짐을 남기고 고향으로 돌아 갔다고 합니다.

     

    이 대표는 독실한 기독교 인으로 다른 이들을 돕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그는 국제 어린이 양육기구인 컴패션의 한국 홍보대사도 맡고 있습니다. 컴패션은 1952년 에버렛 스완슨 목사가 한국의 전쟁고아를 돌보기 위해 만든 국제기구입니다. 그 자신도 여섯 가정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그는 <빛과 소금>이라는 잡지에 삭스 업을 시작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건 여러 가지가 있어요. 먹고, 자고, 입는 것이 기본이겠지만 사람은 그것만으로는 살 수 없어요. 사람은 영적 존재니까 희망이 있어야 해요. 먹는 것은 사람을 존재하게 하지만,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희망이에요. 저는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절망에 빠진 누군가, 기회를 간절히 기다리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잡아주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삭스업 무브먼트’의 기본 취지예요."

    

  • 토마스 담보, 숲 속 나무거인의 창조자

    토마스 담보가 목재로 만든 나무거인. [이미지 : 토마스 담보 페이스북]

    토마스 담보는 버려지는 물건으로 예술작품을 만드는 업사이클링 아티스트입니다.

     

    그가 만드는 작품은 버려지는 목재로 만든 나무 거인입니다. 미국, 호주, 덴마크, 벨기에 등 세계 10여 개 나라의 숲에는 그가 만든 30여 개의 나무 거인들이 자신을 보러 찾아오는 이들을 맞고 있습니다.

     

    아시아 최초로 우리나라에도 나무 거인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토마스 담보는 지난해 2월 경기도 포천 평강식물원에 5~7미터 크기의 나무 거인 5명을 ‘창조’했습니다. 밝고 큰 영 아저씨, 칠드런 리, 똑똑한 우 할아버지, 엄마 옥, 행복한 김치 등이 나무 거인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가 만든 나무 거인은 핀란드 전통 동화에 나오는 숲속 요정 트롤(troll)을 모델로 한 것입니다. 지역에 따라 트롤은 동물과 곤충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호주에는 대형 나무캥거루를 만들었고 미국 플로리다에는 초대형 나무 거미를 만들었습니다. 

     

    그가 나무 거인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쓰레기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버려지면 쓰레기이지만 다시 쓰면 아름다운 작품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담보는 SBS와의 인터뷰에서 “쓰레기는 섹시하고 행복한 것이며 재미있는 것”이라며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 쓰레기는 정말 가치 있는 것이니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실제 그의 작품에 쓰이는 소재는 길가에 버려진 폐목자재, 플라스틱, 병 등 폐기처분될 운명의 쓰레기들입니다. 하지만 그 모두는 담보의 손을 거치면 설치미술 작품의 구성요소로 재탄생합니다.

     

    그는 쓰레기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자신의 프로젝트에 항상 자원봉사자를 참여시킵니다.

     

    토마스 담보는 아이들이 자신의 작품 위에 올라가 뛰어노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자신의 작품은 자연 그 자체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올라가 뛰어노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 방탄소년단 만든 방시혁 대표의 서울대 졸업식 축사

    지난 26일,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서울대학교 졸업식에서 동문 자격으로 축사를 하고 있다. 방 대표는 이 축사에서 자신의 행복론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미지 출처 : 서울대학교]

    방탄소년단을 키워낸 방시혁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대표의 졸업 축사가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방 대표는 26일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동문 자격으로 축사를 했습니다. 방 대표는 이 학교 미학과 출신입니다.

     

    많은 언론에서 방 대표의 축사 내용을 부조리에 대한 분노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실제 그는 이날 축사에서 부조리에 분노하고 맞서 싸워 사회를 변화시키기를 바란다고 졸업생에게 당부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방 대표의 행복론입니다. 방 대표는 남들이 만들어 놓은 행복을 추구하려고 애쓰지 말고 자신이 행복이라고 정의한 소소한 일상의 한순간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고 합니다.

     

    다음은 방 대표가 후배들에게 주는 행복해지는 비결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끼려면 여러분 스스로가 어떨 때 행복한지 먼저 정의를 내려보고, 그러한 상황과 상태에 여러분을 놓을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셔야 합니다.”

     

    “자신이 정의하지 않은, 남이 만들어 놓은 행복을 추구하려고 정진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시간에 소소한 일상의 한순간 한순간들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노력하십시오. 무엇이 진짜로 여러분을 행복하게 하는지 고민하십시오.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남이 정해준 여러 가지 기준들을 좇지 않고, 일관된 본인의 기준에 따라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십시오. 본인이 행복한 상황을 정의하고, 이를 방해하는 것들을 제거하고, 끊임없이 이를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행복이 찾아올 겁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반복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소명이 되어 여러분의 앞길을 끌어주리라 생각합니다.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여러분의 행복이 상식에 기반하길 바랍니다. 공공의 선에 해를 끼치고 본인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는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욕망을 이루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 바깥세상에 대해 끊임없는 관심을 유지하고, 자신과 주변에 대해 애정과 관용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관심 속에서 여러분의 삶에 제기되는 문제들, 여러분의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것들을 해결하고 본인이 생각하는 상식을 구현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노력들은 궁극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이 자신의 행복을 좇는 것은 세상의 행복을 증대시키는 일이 될 것이며, 이것이 우리 학교의 졸업생에게 주어진 의무이기도 합니다.”

     

    다음은 방시혁 대표의 서울대 졸업식 축사 전문입니다. 

     

    존경하는 오세정 총장님, 여러 교수님,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이신 졸업생 여러분들과 가족, 친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대표 방시혁입니다.

     

    오늘은 날씨조차 여러분들의 졸업을 축하하듯 화창한 것 같습니다.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모교의 졸업식에서 축사를 한다는 건 무한한 영광이기에 총장님의 축사 제안을 덜컥 수락해 버렸지만 사실 이 자리에 서기까지 굉장히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저는 부정할 수 없는 기성세대입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꼰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닐까, 또 무엇보다,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첫걸음을 내딛는 여러분께 해드릴 유의미한 이야기가 제게 있는지 우려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졸업 축사란 것은 결국 연사가 졸업생에게, 혹은 선배가 후배에게, 자신이 인생에서 배운 것을 이야기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꼰대’스러움에 대한 걱정은 내려놓고, 오늘은 최대한 솔직한 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아마 제 자랑도 좀 하게 될 것 같고, 제 삶의 여정 중 여러분과 맞닿는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1980년대 말에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때는 공부를 조금 한다고 하면 법대를 가는 게 당연히 여겨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1지망도 법대였습니다. 법학에 대한 열망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실 그때의 저는, 어떤 열정도 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목표와 성공의 요건에, 별 자의식 없이 흔들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학력고사는 다가오고, 점수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재수를 각오하고 법대를 쓰느냐, 법대를 포기하고 안전하게 서울대를 가느냐의 갈림길에 놓이게 됐습니다. 저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조금 전 말씀드렸듯 법학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재수는 하기 싫었거든요. 그런데, 법대 다음으로 커트라인이 높은 과를 가려니까, 뭔가 되게 없어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과들을 뒤지다가 미학과를 발견했습니다. 법대를 기대하셨던 어른들의 반대는 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떨어지면 재수는 없다’라고 반 협박조로 (대응해) 무사히 미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미학과가 저와 너무 잘 맞았다는 것입니다. 미학이 뭘 하는 학문인지도 모르고 들어왔는데 수업들이 너무 재미있는 겁니다. 원래 예술도 좋아했었고 탁상공론을 좋아해서였는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렵다고 하는 미학과 수업이 너무 재미있어서 중학교 때부터 해왔던 음악은 뒷전으로 밀렸고 음악을 직업으로 하겠다는 생각은 완전히 잊게 됐습니다.

    그랬던 제가 어쩌다 음악 프로듀서가 되었을까요? 사실 기억이 잘 안 납니다. 많은 분들께서 서울대생이 음악을 직업으로 삼기까지는 대단한 에피소드나 굉장한 결단이 있었을 거라고 추측하시는데, 사실 아무리 돌이켜봐도 그런 결정적인 순간은 없었습니다. 그냥 흘러가다 보니 어느새 음악을 하고 있었다는 게 가장 적절한 표현 같습니다. 정말 허무하죠?

    저는 그렇게 허무하게, 뭔가에 홀린 듯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1997년부터 직업 프로듀서의 길에 들어서 박진영 씨와 함께 JYP라는 회사를 창업하고, 그 후 독립해서 지금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자 프로듀서로 살고 있습니다. 우스운 게, 독립한 후에도 수많은 선택지가 있었는데 왜 회사를 차리겠다고 생각했는지 선택한 이유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서두부터 제 얘기를 이렇게 길게 한 이유는, 제 인생에 있었던 중요한 결정들, 훗날 보면 의미심장해 보이는 순간들이 사실은 별 의미가 없었다는 것. 때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유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저는 사실 큰 그림을 그리는 야망가도 아니고, 원대한 꿈을 꾸는 사람도 아닙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구체적인 꿈 자체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번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에 따라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요즘 저와 방탄소년단,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행보를 보면 이런 말이 믿기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방탄소년단은 빌보드에서 2년 연속 톱 소셜 아티스트상을 수상했고, 4만 석 규모의 뉴욕 시티필드 공연을 순식간에 매진시켰습니다. 얼마 전에는 그래미 어워드에 시상자로 초청받으면서 또 하나의 ‘최초’ 기록을 세웠습니다. 외신에서는 감히 ‘유튜브 시대의 비틀즈’라는 과찬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현재 전 세계 주요 지역 스타디움에서 월드투어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아티스트의 반열에까지 올라가게 됐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저는 영광스럽게도 빌보드가 뽑은 25인의 혁신가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고, 저희 회사 역시 엔터테인먼트 업계 혁신의 아이콘이자 유니콘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아마 뉴스를 통해 이런 이야기를 접하셨을 때 이런 성공 뒤에는 분명 원대한 꿈이 있었거나, 방시혁은 엄청난 야심가여서 큰 미래를 그려놓고 이를 차근차근 실현해가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야심은 둘째치고 꿈도 없는 사람이라고 하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으실 겁니다. 매번 하고 싶은 것들을 아무렇게나 하고 그렇게 선택하다 보니 어쩌다 이 자리까지 왔다? 물론 그런 말이 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이야기를 잠깐 바꿔 볼게요.

    여러분! 저는 꿈은 없지만 불만은 엄청 많은 사람입니다. 얼마 전에 이 표현을 찾아냈는데 이게 저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 같습니다. 오늘의 저와 빅히트가 있기까지, 제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분명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로, ‘불만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는 타협이 너무 많습니다. 분명 더 잘 할 방법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튀기 싫어서, 일 만드는 게 껄끄러우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폐 끼치는 게 싫어서, 혹은 원래 그렇게 했으니까, 갖가지 이유로 입을 다물고 현실에 안주하는데요. 전 태생적으로 그걸 못 하겠습니다. 제 일은 물론, 직접적으로 제 일이 아닌 경우에도 최선이 아닌 상황에 대해서 불만을 제기하게 되고 그럼에도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만이 분노로까지 변하게 됩니다.

    아마도 ‘위대한 탄생’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의 멘토로 저를 기억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참가자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을 때 분노를 폭발시키는 제 모습을 기억하실 겁니다. 굉장히 많이 비호감이었죠? 그때 이후 그런 형태의 분노 표출이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됐고, 이제는 그렇게 분노를 폭발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지만 그 모습이 제가 ‘불만 많은 사람’이라는 걸 설명하기에 좋은 예인 거 같아서 잠깐 언급했습니다.

    그런 저의 성정은 제 작업과 제가 만든 회사의 일에도 똑같이 발휘됐습니다. 최고가 아닌 차선을 택하는 ‘무사안일’에 분노했고, 더 완벽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데 여러 상황을 핑계로 적당한 선에서 끝내려는 관습과 관행에 화를 냈습니다. 그중에서도 저를 가장 불행하게 한 것은 음악 산업이 처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산업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고, 불공정과 불합리가 팽배한 곳이었습니다. 음악을 직업으로 삼고, 이 세계를 알아가면서 점점 저의 분노는 더 커졌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음악이 세상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이용당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작곡가로 시작해 음악 산업에 종사한 지 21년째인데, 음악이 좋아서 이 업에 뛰어든 동료와 후배들은 여전히 현실에 좌절하고 힘들어합니다. 음악 산업이 안고 있는 악습들, 불공정 거래 관행, 그리고 사회적 저평가. 그로 인해, 업계 종사자들은 어디 가서 음악 산업에 종사한다고 이야기하길 부끄러워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여전히 음악 회사를 일은 많이 시키면서 보상은 적게 주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우리 고객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케이팝 콘텐츠를 사랑하고, 이를 세계화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팬들은 지금도 ‘빠순이’로 비하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아이돌 음악을 좋아한다고 떳떳하게 말하지도 못합니다. 업계와 사회가 나서서 찬양하고 최고의 예우를 해도 모자랄 판인데 왜 이런 대우를 하는지, 저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고 화가 납니다.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며 전 세계 음악팬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는 우리 아티스트들은 근거 없는 익명의 비난에 힘들어하고 상처받고 있습니다. 우리 피, 땀, 눈물의 결실인 콘텐츠 역시 부당하게 유통되거나 저평가되며 부도덕한 사람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수단이 되는 경우가 아직도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분노하게 되고 이런 문제들과 싸워 왔고 아직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저는 혁명가는 아닙니다. 다만, 음악 산업의 불합리, 부조리에 대해서 저는 간과할 수 없습니다. 외면하고 안주하고 타협하는 것은, 제가 살아가는 방식이 아닙니다. 원대한 꿈이 있거나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것이 지금 제 눈앞에 있고 저는 그것이 부당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그 분노가 제 소명이 됐다고 느낍니다. 음악 산업 종사자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고 온당한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화를 내는 것. 아티스트와 팬들에 대해 부당한 비난과 폄하에 분노하는 것. 제가 생각하는 상식이 구현되도록 싸우는 것. 그것은 평생을 사랑하고 함께 한 음악에 대한 저의 예의이기도 하고, 팬들과 아티스트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이기도 하면서 마지막으로 제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유일한 방법 같습니다.

     

    저는 행복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일 학업과 업무에 시달리던 고단한 몸을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뽀송뽀송한 이불 속에 들어갈 때 행복하지 않나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렇게 ‘감정적으로’ 행복한 것들도 있지만, ‘이성적으로’ 인식하는 행복한 상황도 있을 겁니다. 어떠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끼려면 여러분 스스로가 어떨 때 행복한지 먼저 정의를 내려보고, 그러한 상황과 상태에 여러분을 놓을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셔야 합니다

    저의 경우는, 두 번째 행복의 정의에 입각해서, 저의 행복을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회사가 하는 일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특히 우리의 고객인 젊은 친구들이 자신만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더 나아가 산업적으로는, “음악 산업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킴으로써 음악 산업을 발전시키고 종사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기여하는 것.” 그래서 그 변화를 저와 우리 빅히트가 이뤄내는 게 저의 행복입니다.

     

    자, 이제 돌아갑시다.

    제가 앞에서, 저는 구체적이거나, 커다란 꿈이 없다고 했죠? 맞습니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저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어떤 기업이 될지, 방탄소년단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심지어는 제가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지에 대해서도 그림 같은 건 없습니다.

    그럼에도 현재 저의 모습을 외부에서 보면 커다란 꿈을 향해 끊임없이 정진하는 듯 보일 겁니다. 그렇게 개인적인 꿈을 이뤄가는 과정에서 저와 제 주변 사람들, 제가 봉사해야 하는 고객들의 행복까지 빚어낸 매우 이상적인 상황으로 보일 겁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렸듯, 이런 시선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저는 별다른 꿈 대신 분노가 있었습니다. 납득할 수 없는 현실, 저를 불행하게 하는 상황과 싸우고, 화를 내고, 분노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것이 저를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었고 제가 멈출 수 없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니 많은 분들께 위로와 행복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제 꿈이 아니라 제 불만이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꿈 없이 살 겁니다. 알지 못하는 미래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시간을 쓸 바에, 지금 주어진 납득할 수 없는 문제를 개선해 나가겠습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음악 산업이 처한 수많은 문제들을 개선하는 데 매진할 것이며, 방탄소년단은 아시아 밴드, 혹은 케이팝 밴드의 태생적 한계라고 여겨지는 벽을 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겁니다. 저 역시 이런 일을 수행하는 데 부끄럽지 않게 끊임없이 반성하고 제 자신을 갈고닦겠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지금 큰 꿈이 없다고 구체적인 미래의 모습을 그리지 못했다고 자괴감을 느끼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자신이 정의하지 않은, 남이 만들어 놓은 행복을 추구하려고 정진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시간에 소소한 일상의 한순간 한순간들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노력하십시오. 무엇이 진짜로 여러분을 행복하게 하는지 고민하십시오.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남이 정해준 여러 가지 기준들을 좇지 않고, 일관된 본인의 기준에 따라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십시오. 본인이 행복한 상황을 정의하고, 이를 방해하는 것들을 제거하고, 끊임없이 이를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행복이 찾아올 겁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반복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소명이 되어 여러분의 앞길을 끌어주리라 생각합니다.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여러분의 행복이 상식에 기반하길 바랍니다. 공공의 선에 해를 끼치고 본인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는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욕망을 이루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 바깥세상에 대해 끊임없는 관심을 유지하고, 자신과 주변에 대해 애정과 관용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관심 속에서 여러분의 삶에 제기되는 문제들, 여러분의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것들을 해결하고 본인이 생각하는 상식을 구현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노력들은 궁극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이 자신의 행복을 좇는 것은 세상의 행복을 증대시키는 일이 될 것이며, 이것이 우리 학교의 졸업생에게 주어진 의무이기도 합니다.

     

    이쯤에서 두서없는 저의 축사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대학이라는 일생에 매우 중요한 또 하나의 과정을 잘 마무리하신 여러분, 다시 한 번 격하게 축하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시작될 인생의 다음 단계들을 행복 속에 잘 살아내시고 10년 후, 20년 후에, “내가 제법 잘 살아왔구나”라고 자평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제 묘비에 “불만 많던 방시혁, 행복하게 살다 좋은 사람으로 축복받으며 눈 감음”이라고 적히면 좋겠습니다. 상식이 통하고 음악 콘텐츠와 그 소비자가 정당한 평가를 받는 그날까지, 저 또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갈 겁니다. 격하게 분노하고, 소소하게 행복을 느끼면서 말입니다.

  • 루시드 폴, 위로가 되는 따뜻한 음악

    루시드 폴의 음악은 따뜻합니다. 가사에 담긴 뜻을 몰라도 듣고 있으면 그저 위로가 됩니다.

     

    가수 데뷔 20년을 맞은 루시드 폴은 시인이라는 단어와 가장 가까운 한국의 가수입니다. 그의 노래는 따뜻한 선율과 함께 시적인 아름다운 가사로 유명하지요.

     

    그의 노래 가운데 5곡이 2014년 시인들이 뽑은 아름다운 노랫말을 가진 노래로 추천됐습니다. 5곡 이상 추천을 받은 노래를 가진 가수는 루시드 폴이 유일합니다. 그가 한 시인과 주고 받은 편지가 책으로 발간되기도 했습니다.

     

    루시드 폴은 농부이기도 합니다. 그는 2014년 한국의 남쪽에 있는 가장 큰 섬 제주도로 내려갔고 귤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음악도 꾸준히 계속했지요. 2015년 7집 앨범을 냈고 2017년에 8집 앨범을 냈습니다.

     

    특히 8집은 가수, 시인, 농부 등의 정체성을 함께 갖고 있는 그가 제주의 자연과 사람들 속에서 깨달은 내용을 담았습니다. 앨범 제목이 그의 삶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모든 삶은, 작고 크다.’

     

    그의 따뜻한 목소리가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모든 삶은 작고 큽니다. 그리고 모든 삶은 위대합니다. 여러분의 삶도 그러합니다.

     

    다음은 루시드 폴의 8집을 소개하는 짧은 동영상과 타이틀곡 안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