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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릎호소’ 엄마들이 만든 서진학교, 건축상 대상 타다

    2020년 3월 문을 연 발달장애 학생들을 위한 서진학교가 지난 8월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받았어요. 

     

    이게 왜 화제냐고요? 대학교가 아닌 학교 건물이 이 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고요. 적은 공사비와 제한된 조건들 속에서도 이런 훌륭한 건축물이 탄생한 건 ‘기적’이라고 심사위원장이 강조하였대요. 

     

    또한 학교의 설계를 맡은 유종수, 김빈 건축가는 학생들을 위해 세심한 배려를 하기위해 노력했다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어요. 

     

    “특수학교를 특별하게 생각하기 보다는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평범한 교육 공간으로 대하려고 애썼어요. 서울서진학교가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가며 반대했던 주민들의 목소리가 줄어들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나아지면 좋겠습니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한 서진학교는 2013년 학교를 짓겠다는 계획이 나오자 지역주민들의 엄청난 반대에 직면해야 했어요. 

     

    거듭된 주민들의 반대로 학교를 못 짓자 2017년 열린 주민토론회에서 장애 학생 부모들은 무릎을 꿇고 제발 짓게 해달라고 호소했어요. 

     

    이 ‘무릎호소’ 영상이 언론과 소셜미디어에 퍼지며 학교를 짓자는 쪽으로 여론이 기울었지요. 

     

    보통 학교 하나를 세우는 데 3년이 걸리는데 서울서진학교는 6년이나 기다려야 했지요. 하지만 엄마의 눈물과 정성이 하늘을 감동시켰는지 이렇게 좋은 결과를 낳았네요.

  • 방호복 입은 간호사가 화투장을 든 이유

    중증 치매 환자인 93세의 박모 할머니는 지난해 8월1일 코로나19에 감염돼 삼육서울병원 음압병상에 입원했습니다. 

     

    간호사들은 할머니가 떨어질까봐 침대를 두려워하자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지낼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치매 치료 경험이 있던 양소연 간호사가 할머니를 위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화투를 이용한 꽃 그림 맞추기와 그림 도안 색칠하기였습니다. 

     

    이 사진은 방호복을 입은 이수련 간호사가 할머니의 치매치료를 위해 화투를 치는 장면입니다. 올해 대한간호협회가 공모한 간호사 현장 수기·사진전’ 출품되며 알려져 감동을 줬습니다. 

  • 추신수가 메이저리그 안팎에서 존경받는 이유

    추추 트레인으로 불리는 추신수 선수는 올해 1월 뜻 깊은 상을 받았습니다. 헤럴드 맥키니 굿가이 어워드인데요.

     

    텍사스 레인저스 출입기자들이 투표로 수상자를 뽑는데 ‘클럽하우스 리더’에게 이 상을 줍니다. 야구 실력은 물론 다른 선수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라는 말이지요.

     

    동양인 선수가 클럽하우스에서 리더가 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추신수는 클럽하우스 뿐만 아니라 그라운드 안팎에서 존경받는 선수입니다. 

     

    추신수가 존경받는 이유는 뛰어난 실력 때문만은 아닙니다. 성실함과 겸손함, 다른 선수들을 돕고 배려하는 마음이 추신수를 존경하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최근 그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선행이 알려져 다시 한번 미국 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줬습니다.

     

    그 사연을 공개한 사람은 텍사스 레인저스 소속 마이너리거 엘리 화이트 선수입니다. 그는 코로나19로 훈련이 중단 되자 주급이 끊겨 생활고를 겪고 있었습니다. 월급이 끊기자 아내와 함께 살아갈 일이 막막했습니다. 훈련을 계속해야 했지만 생활비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 추신수 선수가 그를 조용히 불렀다고 합니다. 혹시 네가 기분나빠할까봐 걱정되기는 하지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화이트는 실질적인 도움보다 존경하는 선수가 자신을 돕겠다고 하니까 그 말 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추신수 선수는 화이트를 포함해 마이너리그에 있는 190명의 선수들에게 1인당 1000달러(123만원)씩을 개인적으로 기부했습니다. 그리고 화이트에게는 자신에게 지급되던 식대를 모두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야구와 가족에게 집중하라는 조언과 함께 말입니다. 화이트의 아내는 통장에 추신수가 보낸 식대를 받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화이트는 추신수가 캠프 때마다 마이너리그 선수들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한다고 전했습니다. 추신수는 클럽하우스에서 코치, 물리치료사, 트레이너, 마사지사, 매니저 등의 복지를 위해 가장 앞서는 선수라는 말도 전했습니다. 

     

    화이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추, 고맙다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합니다. 당신이 돈 뿐이 아니라 마음도 함께 보내줘서 우리 가족들에 더 뜻깊게 다가왔습니다. 당신의 도움을 받은 마이너리그 선수들 몫까지 포함해 감사드립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이 보인 마음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텍사스 산하 싱글A구단인 다운 이스트우드 덕스의 웨이드 하웰 단장은 “추신수가 정말 대단한 일을 했다”고 칭찬했습니다. 

    추신수 선수는 얼마전 한국의 코로나19 극복을 돕기 위해 2억 원을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추신수 선수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안타까운 마음을 담은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서거 소식을 듣고 잠을 못이뤘다는 얘기, 구단을 찾아가 검은색 리본을 달겠다고 했다가 메이저리그 규약 때문에 거부당했다는 얘기를 적었습니다. 

     

    추신수 선수는 한국의 모든 국민들이 비통함에 잠겨 있는데 혼자서 방망이를 휘두르며 경기에 출장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고도 했습니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추신수 선수는 화이트 선수를 비롯해 많은 마이너리그 선수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줬음에 틀림없습니다.

     

    그가 끼친 선한 영향력은 나중에 다른 곳에서 또 다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세상에 퍼져나갈 것입니다. 

     

    올해 38세인 추신수 선수에게 메이저리그 생활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선수 생활을 은퇴한 뒤 그가 꾸려갈 제2의 인생이 더욱 궁금해집니다.

  • 록의 살아있는 전설 본 조비의 특별한 레스토랑

    존 본 조비는 평소 사회공헌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1년에는 자선식당 '소울 키친(The Soul Kitchen)'을 오픈하기도 했다. [이미지 : JBJ Soul Kitchen SNS]

    존 본 조비는 1980년대를 풍미한, 록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본 조비의 리더입니다. 하지만 그가 다른 이들을 돕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는 2006년에 본 조비 소울 재단(JBJ Soul Foundation)를 설립해 가난한 이들과 무주택자들을 돕고 있습니다.

     

    이 재단이 하는 대표적인 일은 가난한 이들이 공짜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무료 식당 ‘소울 키친(Soul Kitchen)’의 운영입니다. 이 재단은 2011년 10월에 뉴저지주 레드뱅크에 첫 번째 식당을 열었고 두 번째 식당은 2016년 톰스 강 근처에 열었습니다. 이 지역은 2012년 허리케인으로 큰 피해를 입은 곳입니다.

     

    본 조비는 이 식당을 찾는 이들이 자존심을 잃지 않도록 배려하는 데 신경을 많이 씁니다. 돈을 내고 사 먹는 손님이나 공짜 밥을 먹는 손님이나 모두 이 식당에서는 환대를 받습니다. 밥값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값을 치르고 싶은 사람은 대신 20달러를 기부하면 됩니다.

     

    메뉴는 3가지 종류로 단출하지만 맛이 좋고 영양가도 풍부합니다. 소울 키친에서 쓰는 식재료는 직접 재배한 유기농산물을 쓰기 때문입니다.

     

    11월 기준으로 소울 키친은 10만 5천 끼를 제공했습니다. 이 레스토랑 웹사이트에 따르면 식사를 마련하는 데 들어간 비용의 54%는 기부금으로 마련했고 나머지 46%는 자원봉사자들이 벌어서 댔다고 합니다.

     

    ‘본 조비 재단’은 식당 운영 외에 필라델피아에서 집 없는 노숙인들을 위해 집을 짓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이 주택은 가난한 젊은이와 퇴역군인에게도 제공됩니다.

  •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삶, 신독(愼獨)

    지난 14일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향년 9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이미지 : LG 공식 홈페이지]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14일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족은 ‘허례허식’을 삼가라는 고인의 뜻에 따라 장례도 비공개 가족장으로 조촐하게 치렀습니다.
     
    빈소를 공개하지 않고 조문은 물론이고 조화까지 사양했지만 인연 있는 정재계 인사 수십 명이 굳이 빈소를 찾을 정도로 고인이 남긴 족적은 큰 것 같습니다.
     
    구 명예회장은 생전에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부자가 되기 위해 바르고 부끄러움 없는 생활 자세”를 강조했다고 합니다. 
     
    그를 위해 고인은 서울 여의도 LG 사옥 집무실에 신독(愼獨)이라고 쓴 휘호를 걸어 놓고 늘 마음에 새겼습니다.
     
    신독은 대학에 나오는 군자필신기독야(君子必愼其獨也)의 줄임말입니다. 군자는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늘 올바르게 처신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이는 LG가 내세우는 ‘정도경영’의 바탕이 됐을 것입니다. 
     
    고인은 신독을 바탕으로 기업 경영의 원칙도 세웠습니다. 
     
    “사사로운 이해를 떠나 공사를 엄정히 구분하면서 기업을 이끌어 나가고, 항상 정당한 기준으로 판단하면서 기업을 운영한다면 사회는 결코 색안경을 끼고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근검절약하고 절제된 생활을 영위하면서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부는 이 사회로부터 점차 존경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신독이라는 삶의 철학은 구 명예회장의 검소하고 소탈한 생활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그의 검소함은 가풍에서 나온 것이기도 합니다. 
     
    구 명예회장은 회고록 <오직 이 길밖에 없다>에 “나는 주로 구태회 숙부의 옷을 대물림해 입었다”라고 적었습니다. “조부께선 학용품도 하나 다 써야 새것 하나를 꺼내 주셨다”고도 했습니다.


    그렇게 배우고 자라서인지 구 명예회장은 재벌의 총수이지만 어느 동네에서나 만날 수 있는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검소한 삶을 살았습니다. 
     
    구 명예회장의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고동색 카디건과 검은 뿔테안경은 20년 쓴 물건들입니다. 은퇴한 뒤 사용할 컴퓨터도 계열사에서 쓰던 것을 가져다 쓸 정도로 근검절약했습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15일 자신의 트위터에 “회장님께서 1980년대 정부청사 인근 허름한 식당에서 일행과 수행원도 없이 혼자 비빔밥을 드시던 소박한 모습을 몇 차례나 봤다. 회장님의 그런 풍모가 국민의 사랑을 받는 기업을 키웠다"라고 회고했습니다.
     
    고인은 각지의 공장을 방문할 때도 불필요한 의전을 삼가도록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LG그룹에서는 오너 경영인이 방문했을 때 간부들과 직원들이 도열해서 맞는 일이 없습니다. 
     
    구 명예회장은 가족에게도 엄격했습니다. 힘 있고 돈 많은 이들의 대다수가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고 궁리할 때, 고인의 네 아들은 모두 육군에서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습니다.
     
    늘 자신을 돌아보는 신독의 삶을 살았기에 구 명예회장은 물러날 때도 알았습니다.  그는 1995년 LG를 장남 구본무 회장에게 넘겨주고 충남 천안으로 내려가 자연 속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여생을 보냈습니다. 충분히 활동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한 상태에서 자식에게 경영을 물려주는 것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구 며예회장은 낙향한 곳에서도 버섯 재배를 연구하고 된장, 청국장, 만두 등 전통음식의 맛을 재현하는 데 힘을 쏟았다고 합니다.
     
    자신에게는 엄격했지만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일에는 늘 마음을 썼습니다. 1991년 사재 2억 원을 출연해 LG복지재단을 만들어 소외계층을 지원하도록 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 상남이라는 호를 지은 것입니다.
     
    구 명예회장은 문중에서 항렬이 낮지만 나이가 많은 축에 들었습니다. 아저씨뻘 되는 이들이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 이들이 자신을 편하게 부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상남이라는 호를 지었습니다. 상남은 경남 진양군 지수면 고향집 앞에 있는 작은 다리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고인은 삶처럼 떠나는 길도 소탈했습니다. 
     
    유족은 빈소를 공개하지 않았고 화장 뒤 묻힐 장지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문상객도 200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화도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것만 받고 모두 돌려보냈습니다. 나라의 대표가 보낸 것이라 그마저 거절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 다큐 영화 21일 개봉

    프란치스코 교황을 다룬 다큐 영화가 11월 21인 오늘 개봉됐습니다.

     

    영화계의 거장 빔 벤더스가 메가폰을 잡고 로마 교황청이 제작에 참여한 ‘프란치스코 교황 : 맨 오브 히스 워드’(Pope Francis: A Man of His Word)가 그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심층 인터뷰를 뼈대로 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됐습니다. 교황이 세계를 다니며 행한 빈곤 퇴치와 평화, 환경문제 등은 물론 우리 삶의 방향에 대한 다양한 질문에 답하는 장면을 담은 96분짜리 로드 무비입니다.

     

    빔 벤더스 감독은 성 프란치스코를 통해 교황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합니다.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쓴 교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감히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선택하는 용기를 낸 교황이 없어서 프란치스코라는 의미를 관객에게 알려주고 싶었다"라고 영화 제작 동기를 밝혔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돌아봤을 때 성 프란치스코는 정말 위대한 개혁가이자 혁명가였습니다. 지금까지 감히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선택하는 용기를 낸 교황이 없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를 어떤 식으로든 영화에 등장시켜서 ‘프란치스코’란 이름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를 관객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빔 벤더스 감독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영화에 교황의 영적 멘토인 성 프란치스코를 다룬 영상을 삽입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입니다.

    이를 위해 빔 벤더스 감독은 성 프란치스코의 고향인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2주일 동안 촬영을 했습니다. 1920년대에 생산된 데브리 카메라를 사용해 수동으로 찍어 마치 과거에서 보내온 것 같은 영상을 완성했습니다.

     

    빔 벤더스 감독은 이 영화를 “교황을 다룬 영화가 아닌 교황과 함께 만든 영화”라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교황청은 공식 기록보관소의 아카이브 영상을 제공함은 물론 바티칸의 내밀한 공간까지 영상에 담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빔 벤더스 감독은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파리 텍사스’ 등으로 프랑스 칸, 독일 베를린, 이탈리아 베니스 등 세계 3대 영화제를 석권한 명감독입니다.

     

    쿠바 음악과 관련한 다큐멘터리 ‘브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도 그가 만든 영화입니다.

    

  • 맛좋고 큰 배가 자라는 과수원의 비밀

    2대째 과수원을 하시는 분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아 온 과수원은 바닥 풀 한 포기 없이 깨끗하다고 합니다. 농부들은 퇴비도 과수 주위에만 동그랗게 뿌려주며 "너만 먹어라"라고 당부를 한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렇게 과수 농사를 지으면 늘 풀이나 곤충과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분의 과수원은 배밭인지 풀밭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풀이 무성합니다. 그럼에도 이 분의 과수원에서 나는 배의 크기는 다른 농가보다 두 배나 크고 수확량도 많습니다.

     

    비결은 과수원 안에 깃든 많은 생명을 존중하는 데 있어 보였습니다. 이 분은 배나무만을 위해 주위 자연을 모두 적으로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풀도 과수원의 일부로 여기시는 듯합니다. 풀이 나는 족족 베거나 뽑는 다른 과수원과 달리 이 분은 퇴비를 만들기 위해 1년에 두 차례만 풀을 벤다고 합니다.

     

    이 분이 풀을 대하는 것을 보면 풀 농사를 짓는 분 같기도 합니다. 봄에 나서 가을에 열매를 맺는 풀은 열매가 완전히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베고, 월동하는 풀은 6~7월에 씨가 다 떨어진 후에 베어낸다고 합니다. 다음 해에 건강하고 좋은 풀이 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키도 크고 억센 풀은 아예 자라게 그냥 둔다고 합니다.

     

    이 분은 풀을 벨 때 그 안에 깃든 작은 벌레들도 배려합니다. 풀을 한꺼번에 베는 게 아니라 듬성듬성 베어 놓으면 그 안에 사는 벌레들이 모두 안전하게 이사를 간다고 합니다.

     

    풀로 퇴비를 만드는 데는 3년 가까이 걸리는 데 퇴비 더미 안에는 온갖 벌레는 물론 작은 동물들도 깃들어 산다고 합니다.

     

    배나무에 생기는 균을 소독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이 분은 많은 생명에 위협이 되는 살충제 대신 유황을 이용해 4종의 유기 살균제를 만들어 씁니다. 그 노하우는 다른 농부들과 나누시고요. 다른 농부들과 지혜를 모아 새로운 유기 살균제를 만들어 쓰고 있다고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분의 밭에는 온갖 종류의 생명들이 삽니다. 땅에는 풀이 무성하고 풀벌레 소리가 끊이지 않으며 거미들도 많이 살고 있습니다. 청개구리도 ‘입양’했다고 합니다. 잘 지내는지 궁금했지만 알 길이 없었는데 3년쯤 지나 양동이에 물을 따르면 그 소리를 듣고 청개구리가 몰려든다는 것을 알고 그 방법으로 청개구리가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이 분은 식물들의 특성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밤의 힘으로 일하는 식물들도 있는데 요즘 불빛이 너무 많이 식물들이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사람 중심으로 사는 삶이 아닌 공존을 위한 삶을 실천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 행복지수 1위 덴마크의 비밀, 공감교육

    덴마크의 모든 학교에서는 매주 'Klassens tid'라 불리는 공감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이미지 : GAF NEWS 유튜브 캡쳐]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가 덴마크입니다. UN은 2102년부터 해마다 세계 155개 나라 거주자를 대상으로 행복도 조사를 하는 데 덴마크는 지금까지 3위권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습니다.

     

    덴마크 사람들이 행복한 비결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많은 이들이 공감 교육을 덴마크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주요한 이유로 꼽습니다.

     

    미국 언론인 록산느 셰프레비는 “공감능력이 덴마크를 가장 행복한 나라로 만들었다"라며 “높은 수준의 공감 능력이 사회적 관계를 더 원만하게 만들었고 이는 행복지수의 상승으로 이어졌다"라고 전했습니다.

     

    공감 능력은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상대 감정을 잘 읽고 배려하는 능력입니다.

     

    덴마크는 1993년부터 모든 학교에서 6세에서 16세에 이르는 아이들에게 공감 능력을 기르는 교육을 일주일에 한 시간씩 받도록 했습니다. ‘Klassens tid’라고 불리는 덴마크의 공감 교육은 그리 복잡한 게 아닙니다.

     

    교사들은 수업 시간에 다양한 감정을 표현한 감정 카드를 보여주며 아이들이 상대방의 표정을 보면서 그의 감정을 알아챌 수 있도록 합니다.

     

    고민 해결이라는 수업도 진행됩니다. 두 명씩 짝을 지어 서로 고민을 털어놓는 시간입니다. 해결책에 대해 함께 얘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친구의 말을 경청하고 그의 처지를 이해하는 데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IMAGE|635|center|고민해결 시간에 학생들이 둘씩 짝지어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고 있다. [이미지 : GAF NEWS 유튜브 캡쳐] ]]

     

    고민은 굳이 학교 문제가 아니어도 됩니다. 얘기할 고민이 없으면 대화를 나눠도 됩니다. 친구들과 마음을 터놓고 얘기를 나누는 일은 서로의 감정을 알아채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오늘은 내가 요리가’라는 수업도 공감 교육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이는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친구들에게 줄 케이크를 만들어 와 나눠주는 시간입니다. 친구들을 위해 자신이 몸소 무언가를 직접 만들면서 나눔의 기쁨을 느끼도록 하는 것입니다.

     

    공감 교육을 시작하면서 학생들이 친구를 괴롭히는 일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공감능력을 키운 아이들이 자라면서 덴마크에는 다른 이를 배려하는 마음을 지닌 성인들이 자연스럽게 늘어났고 그로 인해 사회 전체가 바뀌어 나갔습니다.

     

    물론 덴마크 학교에도 경쟁이 있습니다. 하지만 덴마크 학생들의 경쟁상대는 친구가 아닌 오로지 자신이라고 배웁니다. 어제의 자신과 오늘의 자신을 경쟁하도록 해 너 나은 능력을 기르도록 하는 거죠. 쓸 데 없는 경쟁을 부추기는 상장이나 트로피는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 부동산 중개하며 마음닦기

    부동산 중개업을 하시는 분의 말씀이 크게 와닿아 소개합니다.

     

    그분은 자신의 사무실이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하는 곳이라 생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를 가야 하는데 집이 제때 팔리지 않으면 계획이 어그러지고 여러 사람이 혼란이 올 것을 생각하면 그 사람의 고민이 자신의 고민이 된다고 하셨지요.

     

    전세나 월세를 사는 분들이 맘 편하게 이사를 가려면 새로운 세입자가 제때 나타나야 하기에 중개업을 하지만 그분들의 입장이 되어 같이 고민을 하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 문제를 해결할까 생각하게 되어 여기저기 알아보기도 하고 이사를 잘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마음을 쓴다는 것입니다.

     

    부동산 중개를 하면서 다양한 경우를 많이 보셨다고 합니다.

     

    같은 조건의 집도 다른 거래 조건에 사고 팔리기도 하고 어떤 집은 이삿날 일주일을 남겨두고 거래가 성사가 된 경우도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집 주인은 성격이 고약한데 거래가 잘 되기도 하고 어떤 분은 사람이 굉장히 좋은데 거래가 잘 안돼 애를 먹기도 하는 것을 보면서 알 수 없는 하늘의 법칙 같은 게 있는 것 같다고 하십니다.

     

    부동산 중개 수수료와 관련해서도 정해진 가격이 있지만 마음을 열어놓고 꼭 깎고 싶어 하는 분이 있으면 그분이 하자는 대로 하기도 한답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부동산 중개인이 아닌 집을 사고팔거나 세를 놓고 드는 당사자의 마음을 갖게 됐다고 했습니다.

     

    그 마음이 점점 커져서 지금은 먹고살기 위해 중개업을 한다는 생각이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언젠가는 멀리 사는 분이 오랜만에 찾아오셨길래 다른 부동산도 많은 데 제 사무실까지 오게 되셨는지 물으니 “왠지 믿음이 가서 오게 됐다"라고 하셨답니다. 그분이 내놓은 상가는 목이 좋은 곳이지만 많은 걸림돌이 있어 매매가 어려웠는데 결국 돌고 돌아서 이 분께 와서 성사가 되었답니다.

     

    그분은 그 상가가 팔리는 것을 보고 하늘의 뜻은 잘 모르지만 ‘이렇게 이루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마음이 점점 커지자 지금은 근심 걱정 없이 일을 하게 되고 식구들 밥 먹고 사는 데도 지장이 없게 됐다고 하십니다.

     

    큰 부자는 아니지만 마음 편하고 즐겁게 살며 부모님 곁에서 아이들과 함께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귀하게 여기고 찾아오는 분들의 일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생각해 정성을 기울이며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는 마음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 제자 아기 등에 업고 강의한 교수

    미국 조지아주 귀넷 대학 라마타 시소코 시세 해부생리학과 교수가 학생의 아이를 업고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지 : Annadote 트위터]

    미국에서 제자를 위해 아이를 업고 수업한 교수가 참 스승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NPR에 따르면 미국 조지아주 귀넷 대학 라마타 시소코 시세 해부생리학과 교수는 한 학생으로부터 수업 전날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다 전화를 걸었다면서 아이를 수업에 데리고 갈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날 수업은 피부, 머리카락, 손톱, 분비선 등으로 이뤄진 외피 계통을 강의하는 날이어서 학생들로서는 수업에 집중해야 하는 날이었습니다. 수업 시간도 3시간으로 길었습니다. 

     

    시세 교수는 학생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곧바로 아이를 수업에 데리고 와도 좋다고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교수의 배려로 학생은 수업에 아이를 데려올 수 있었지만, 그 학생이 아이를 안고 수업을 받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울지 않도록 계속 얼러줘야 했기 때문입니다.

     

    시세 교수는 제자가 수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아이를 대신 돌봐주기로 하고 그 학생에게 다가가 아이를 업혀달라고 했습니다. 시세 교수가 다시 강단에 올라 수업을 시작하자 아이는 곧바로 잠이 들었습니다.

     

    아기에게 우유를 먹일 때가 되자 그는 ‘엄마 제자’에게 젖병을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유가 차갑게 식어 있는 것을 알고는 데울 수 있는 시간을 줬습니다. 아기가 찬 우유를 먹으면 소화를 위해 데우는 데 에너지를 써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강의실에 있던 학생들이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트위터에 올렸고 참 스승의 모습을 보여준 시세 교수를 향한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시세 교수는 “제자가 그저 다른 평범한 학생들처럼 아기에 대해 신경 쓰지 않고 수업을 듣기를 바랐다”라고 말했습니다.

     

    “강의실에 있었던 학생들이 우리가 그 엄마와 아이를 위해 그때 거기 있었음을 알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다른 이를 돕고, 먹이고, 인도하고, 사랑하고, 영감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