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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종교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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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맨홀로 뛰어든 추기경 “절박한 행동”

    이미지 : Maskacjusz 유튜브 캡처

    바티칸 교황청에서 일하는 추기경이 맨홀에 뛰어들었습니다.

     

    콘라트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은 현지 시각으로 11일 이탈리아 로마 중심가에 자리한 한 걸물 부근의 맨홀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성직자의 힘일까요? 추기경이 맨홀로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밤이면 암흑 속에 있던 근처의 한 건물이 빛을 뿜기 시작했습니다. 전기가 들어온 것이지요.

     

    이 건물에는 어린이 100여 명을 비롯해 집 없는 홈리스 450여 명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지난 6일부터 전기 공급이 끊겨 물도 나오지 않게 됐다고 합니다.

     

    이들을 돌보는 한 수녀가 추기경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이날 추기경이 행동에 나선 것입니다.

     

    추기경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술이 취해 한 것이 아니라 절박한 행동”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건물은 홈리스의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벌이는 스핀 타임(Spin Tome)의 활동가들이 2013년부터 점거하고 있는 곳입니다. 지금까지 전기료가 약 30만 유료(약 4억 원)이 밀려 있다고 합니다.

     

    추기경이 계량기 봉인을 풀고 전기를 공급했다는 얘기를 듣고 관련 업체 직원들이 다음날 출동했지만 주민들의 반발과 추기경이 남긴 메모를 보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한 2013년 교황청의 자선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총괄하는 자리에 올랐고 지난해 추기경이 됐습니다.

     

    그는 세계 각지의 난민들을 직접 만나며 구호 방법을 찾는 추기경으로 이름나 있습니다. 추기경의 고향인 폴란드의 한 언론은 그를 “교황의 로빈 후드”라고 칭송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의 ‘행동’에 대해 이탈리아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는 밀린 전기료를 추기경이 대신 내라고 요구했습니다. 내무부 장관이기도 한 그는 로마 시내 난민촌의 철거를 주도해 온 인물입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 남수단 지도자 발에 입맞춤

    이미지 : 픽사베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랜 내전으로 참상을 빚은 남수단의 지도자들의 구두에 입을 맞췄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1일 교황청의 초청으로 바티칸을 찾은 남수단 지도자들에게 평화를 향해 앞으로 나아갈 것을 간곡히 호소했습니다.

     

    교황은 이날 남수단의 정부와 반군 지도자를 초청해 진행한 피정 행사를 마무리하는 연설에서 “평화를 계속 유지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형제로서 간청한다"라며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지만 이겨내고 문제를 해결해 달라"라고 간청했습니다.

     

    교황은 “여러분 사이의 의견 충돌은 사무실 안에만 가둬두고 사람들 앞에서는 손을 잡으라"라며 “그러면 여러분들은 남수단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교황은 말을 마친 뒤 남수단 지도자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살바 키르 남수단 대통령과 야권 지도자인 리크 마차르 전 부통령 등 5명의 지도자의 발에 차례로 입을 맞췄습니다.

     

    평화를 향한 간절한 마음을 담은 교황의 이런 파격적 행동에 남수단 지도자들은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수단 지도자들의 발에 차례로 입맞춤하고 있다.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은 남수단의 지도자들을 교황청에 초청해 평화를 유지하고 나아가기를 촉구했다. [이미지 : 바티칸 미디어]

     

    인구 대부분이 기독교를 믿는 남수단은 2011년 이슬람 국가인 수단에서 독립한 나라로 고 이태석 신부의 봉사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곳입니다.

     

    하지만 남수단은 2013년 말 키르 대통령 지지자와 마차르 전 부통령을 추종하는 세력 사이에 교전이 시작돼 5년 동안 약 40만 명이 숨졌습니다.

     

    다행히 키르 대통령과 마차르 전 부통령은 지난해 9월 평화협정에 서명하고 다음 달에 연립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해 평화로 가는 길에 한걸음 다가섰습니다.

  • 2300시간 동안 쉼없이 예배를 올린 교회

    이미지 출처 : TRT World 유튜브

    네덜란드에서 난민 추방을 막기 위해 진행된 교회판 필리버스터가 성공을 거뒀습니다.

     

    필리버스터는 약탈자를 뜻하는 스페인어에서 유래된 말로 다수당의 독주를 막기 위한 소수당의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행위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무제한 토론을 통해 표결 등을 막는 것이지요.

     

    네덜란드에서 벌어진 ‘교회판 필리버스터’는 아르메니아를 떠나 네덜란드에 온 한 가족의 추방을 막기 위해 교회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베델교회는 2018년 10월 26일부터 24시간 예배를 12월 30일까지 진행했습니다. 무려 96일 동안 일초도 쉬지 않고 예배를 이어온 이유는 아르메니아 출신의 탐라지안 가족 때문입니다.

     

    이 가족은 2010년 아르메니아를 떠나 네덜란드에 정착했습니다. 야당으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박해가 예상되자 해외로 도피한 것입니다.

     

    탐라지안 가족은 야당으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박해가 예상되자 아르메니아를 떠나 네덜란드에 정착했다. 네덜란드 정부가 이들을 추방하려 하자 교회에서 릴레이 예배가 96일 동안 진행되었다. [이미지 : TRT World 유튜브]
     

     

    네덜란드 정부는 두 번이나 이들을 추방하려 했지만 법원에서 제동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세 번째 추방 명령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자 탐라지안 가족은 교회로 피신했습니다

     

    베델교회는 이들이 교회 안으로 피신하자 릴레이 예배를 시작했습니다. 네덜란드 법률은 예배 중에 경찰이 교회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릴레이 예배 소식이 알려지자 네덜란드 교회뿐 아니라 가톨릭 성직자와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온 목회자 등 1000여 명이 예배를 이어갔습니다. 추방을 반대하는 서명운동도 시작돼 25만 명이 참여했습니다.

     

    96일째 예배가 이어지던 12월 20일 네덜란드 정부가 자국에서 자란 어린이들이 있는 700 가족에 대한 추방 절차를 중단하고 재심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습니다. 탐라지안 가족 5명도 재심사 대상에 올라 추방을 면했습니다.

     

    예배를 이끈 목사들 중 한 명인 데르크 스테헤만은 <뉴욕타임스>에 “이번 일을 계기로 교회가 약한 사람들을 지지하고 사회에 영향을 주는 새 길이 열리기를 바란다”라고 말했습니다.

  • 미드에 언급된 문재인 대통령과 기적의 배 메러디스호

    이미지 : 청와대 페이스북 / 위키피디아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드라마에서 언급돼 화제가 됐습니다.

     

    문 대통령의 얘기가 등장하는 드라마는 미국 NBC에서 방영된 타임리스(Timeless)입니다. 화제가 된 부분은 시간 여행을 하는 주인공들이 한국전쟁 때로 돌아가 북한 바닷가의 한 부두로 가면서 나눈 대화입니다. 한 등장인물이 “그 배에 탄 사람 가운데 중요한 사람이 있었냐"라고 묻자 다른 등장인물이 “미래의 한국 대통령 문재인의 부모”라고 답합니다.

     

    드라마에서 언급된 ‘그 배’는 중공군의 참전으로 수세에 몰린 국군과 미군이 함경남도 흥남에서 1만 명의 피난민을 실어 나른 메러디스 빅토리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때문에 화제가 되긴 했지만 메러디스 빅토리호와 선장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감동을 줍니다. 다음은 소설가 공지영 씨의 책 수도원기행2에 실려 있는 내용입니다. 

     

    흥남철수작전에 사용된 메러디스 빅토리 호. 1만 4천 명의 피난민을 구한, 단일 선박으로서 가장 큰 규모의 구조 작전을 수행한 배로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

     

    레너드 라루라는 이름의 선장은 미군의 군수품을 싣고 원산에 갔다 상부의 지시를 어기고 1만 4천 명의피난민을 구해 돌아왔습니다. 단 한 명도 죽거나 다치거나 아프지 않았다고 합니다. 

     

    라루 선장은 어마어마한 숫자의 피난민을 싣고 며칠 동안 항해를 해 남쪽으로 내려와 그들을 무사히 육지에 내려놓았습니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그날이 바로 크리스마스이브였습니다. 라루 선장은 이 '사건'을 통해 하느님의 존재를 확신하고 가톨릭으로 출가해 마리너스 수사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더 감동적인 것은 그 배에 탄 사람들의 얘기입니다.

     

    피난민을 실은 메러디스 호는 남쪽으로 사흘간 항해를 했습니다. 거제도에 도착해 선실의 문을 열었을 때 선장과 선원들은 약탈, 아사와 동사, 전염병 혹은 살인 등 여러 가지 비극적 사건이 일어났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단 한 사람도, 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건 기적이었습니다. 피난민들이 하선하는 데만 다시 이틀이 걸렸습니다. 피난민들은 그 힘겨운 상황에서도 노약자들에게 먼저 하선을 양보했다고 합니다.

     

    "팔꿈치로 밀치는 사람 하나 없었어요. 그들은 난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품위를 간직한 사람들이었어요."

    라루 선장은 회고입니다. 

     

    전쟁 속에 죽음을 피해 필사의 탈출을 한 사람들, 배 화물칸에서 길게는 닷새 동안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지냈을 1만 4천 명의 사람들이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고 약자를 배려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배 안에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님이 타고 있었습니다.

  • 불교 강의하는 푸른 눈의 신부 교수님

    이미지 출처 : 경상북도 유튜브 채널 캡쳐

    25년 이상 불교 수행을 하는 푸른 눈의 외국인 신부가 있습니다. 예수회 소속으로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로 불교를 가르치는 서명원 베르나르도(64) 신부입니다. 

     

    개량 한복을 자주 입고 다니는 베르나르도 신부는 매일 1시간가량 참선을 합니다. “중심을 잃어버릴 수 있어서”라는 게 이유입니다. 

     

    그는 참선을 시작한 시기를 1996년 12월 말이라고 또렷이 기억할 정도로 참선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학자로서 20여 년간 성철 스님의 선사상을 연구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난 2015년 성철 스님 탄신 100주년과 열반 20주년을 맞아 <가야산 호랑이의 체취를 맡았다-퇴옹성철, 이 뭣고?>(서강대 출판부)라는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베르나르도 신부는 조계종 법사로서 2007년부터 북미와 유럽에서 간화선을 가르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계 캐나다 사람으로 귀화한 그는 불어를 주로 쓰는 캐나다 퀘벡주, 스위스, 벨기에, 프랑스 등에서 참선을 가르칩니다.

     

    베르나르도가 세례명이지만 그에게는 천달이라는 법명도 있습니다. 법명을 주신 분이 천주교 신자여서 하늘 천 자에 하늘의 이치를 통달하라는 점에서 통달할 달자를 합해지었다고 합니다. 

     

    불교 경전 구절 가운데 금강경의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 응당 머무르는 바 없이 마음을내라)을 가장 좋아한다는 베르나르도 신부는 법명대로 하늘의 이치를 통달하고 싶은 것이 희망사항이라고 합니다.

     

    종교와 종교 갈등에 대해 베르나르도 신부는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베르나르도 신부는 2018년 부처님 오신 날에 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종교라면 궁극적인 목적지가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죽음을 벗어난 생사에서 하나의 경지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그 목적지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종교는 상호 상생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그리고 가능한 서로를 비판할 때 조심스럽게, 아소카 황제가 기원전 3세기경에 인도를 다스리셨을 때 말씀하신 대로 남을 비판하기 전에 자기 종단을 그만큼 비판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어린이를 대하는 법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함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11월 28일 로마 바티칸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일반 알현에서 교황이 앉아 있는 단상에 6살짜리 어린이가 뛰어올라와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줬습니다. 

     

    소년은 사제들이 교리 문답서를 낭독할 때 단상에 올라 교황 옆에 선 근위병의 창과 손을 잡아당기고 교황이 앉아 있는 의자 주위를 돌아다녔습니다. 

     

    잠시 후 아이의 어머니가 단상에 올라와 교황에게 아이가 언어장애로 말을 못 한다고 설명하고 데리고 내려가려 하자 교황은 아이가 놀도록 그냥 내버려 두라고 만류했습니다. 

     

    어머니는 자리로 돌아갔고 그 어린이는 한동안 무대를 놀이터 삼아 마음 편히 뛰놀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참여한 행사에서 단상에 ‘난입’한 어린이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13년 10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설교하는 동안에 한 꼬마가 단상에 올라 교황의 의자에 앉았습니다. 교황은 설교를 마친 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듬해인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용 무개차를 타고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을 지나다 페루자에서 단체 여행 온 초등학생을 만났습니다. 

     

    학생들이 교황에게 다가가 학교 티셔츠를 선물로 주자 교황은 “나와 함께 광장을 돌아보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라고 묻고 두 아이를 차에 태워 광장을 돌았습니다.

  • 故 이태석 신부, 남수단 교과서에 실리다

    이미지 출처 : 유튜브 캡쳐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인술을 펼치다 세상을 떠난 고 이태석 신부님의 삶이 남수단의 국정교과서에 실렸습니다. 

     

    남수단 교육부는 지난 9월 이 신부님의 삶을 수록한 교과서를 펴냈는데 2019년 새 학기부터 일선 학교에 보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온 슈바이처’라고 불린 이 신부님의 삶은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3쪽, 중학교 시민권 과목에 교과서에 2쪽에 걸쳐 소개됐습니다. 

     

    교과서에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사제가 되어 남수단의 가난한 이웃들과 사랑을 나눈 감동적인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그는 남수단에서도 열악한 지역인 톤즈에 작은 병원을 세웠고, 하루 300명의 환자를 돌봤다. 학교를 지어 수학과 음악을 가르쳤고 80여 개의 마을에 백신을 공급하기도 했다”  

     

    “그의 병원은 가톨릭과 개신교, 무슬림을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는 마을을 파괴한 군인들도 치료를 받았다”  

     

    남수단 정부는 이 신부님을 기리기 위해 2015년부터 신부님의 삶을 교과서에 싣는 것을 추진했다고 합니다.  

     

    뎅뎅 호치 야이 남수단 교육부 장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태석 신부님의 이야기를 교과서에 실을 수 있어 큰 영광”이라며 “의사·음악가·선교사로서 10년 넘게 희생과 봉사를 몸소 실천하신 이 신부님의 삶이 많은 청소년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부산이 고향인 이 신부님은 어릴 적 집 근처의 성당을 놀이터로 삼아 자랐습니다. 집안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삯바느질로 10남매를 키우셨다고 합니다.  

     

    이 신부님은 성당에서 벨기에 출신 다미안 신부를 다룬 영화를 보고 사제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다미안 신부는 하와이 부근의 한 섬에서 한센인을 돌보다 자신도 같은 병에 걸려 49세에 세상을 떠난 분입니다. 

     

    인제대 의대에 진학한 이 신부님은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졸업 뒤 사제의 길을 가기로 결심합니다.  

     

    2001년 로마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이 신부님은 곧바로 남수단 톤즈로 떠났습니다.  

     

    이 신부님은 그곳에서 전쟁으로 인해 다치고 굶주리고 병에 걸린 이들을 치료하고 마음을 어루만졌습니다. 

  • ‘카페 교회’ 운영하는 목사님

    이미지 출처 : 양광모 목사 페이스북

    서울 상일동 주택가 골목에는 에클레시아라는 작은 카페가 있습니다.

     

    이 카페의 주인이자 바리스타이며 유일한 직원은 양광모 목사님(바로세움정립교회) 입니다.

     

    양 목사님은 일주일에 6일은 카페에서 일하고 일요일에는 미사리의 공장 건물 2층에 있는 15평 남짓한 예배당에서 20여 명의 교인들과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에클레시아는 그리스어로 ‘밖으로 불러 모으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이 말을 교회를 가리킬 때 씁니다.

     

    양 목사님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는 분입니다. 

     

    일반인의 눈으로 보면 양 목사님의 목회 생활은 순탄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서울 이문동 동안교회와 지구촌교회 수석 무목사를 거쳐 교인수 1000명이 넘는 정릉제일교회 담임목사를 맡았습니다. ‘잘 나가는 목사’라며 주위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양 목사님은 늘 괴로웠습니다. 한국 교회가 처한 현실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교회에 손가락질하고 등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자체가 불신받고 있었습니다.

     

    양 목사님은 2012년 부임 2년 만에 담임목사직을 내려놨습니다. 대안이 될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자신이 꿈꾸는 작지만 건강한 교회를 찾아가는 5년의 여정을 담은 책 ‘고백 에클라시아’(선율 펴냄)에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말이 떠오르는 행복의 시작이었지만 위기의 현실을 극복하고 어두운 미랠르 밝게 비출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몸부림이라도 쳐야 했다”

     

    올바른 목회자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면서 그들의 아픈 마음을 치유하고 영성을 고양시켰습니다.

     

    양 목사님은 “사람들의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아파하며 상처를 치유하는 건강한 교회”를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서점 겸 카페의 형태로 출발한 미국의 세이비어 교회를 모델로 삼아 카페 교회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2012년 카페 에클레시아의 문을 열었고 같은 해 바로세움정립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러 들른 사람 가운데 바리스타인 목회자의 말 한 마디가 필요한 이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카페 운영을 위해 바리스타 자격증과 커피 품질 평가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목회자 이기 전에 자영업자로 시장 조사와 매장 운영 방법에 대해서도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2012년 문을 연 카페의 운영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수입은 카페를 유지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해 결국 택시 운전대를 잡는 ‘투잡족’이 되어야 했습니다. 

     

    택시 운전을 하면서는 자신이 섬겼던 교회의 교인을 만날까 노심초사했을 겁니다. 사람들이 목사와 택시운전사를 대하는 것은 너무도 다름을 뼈저리게 느꼈겠지요.

     

    양 목사님은 택시 운전을 통해 모든 이를 하나님의 자녀로 섬기는 법을 배우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고 또 낮췄을 것입니다.

     

    2년 쯤 시간이 지나자 카페는 조금씩 자리를 잡아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카페운영을 하면서도 당연히 주일 예배는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예배당은 불교신자인 한 단골손님의 도움으로 2015년에 마련했습니다. 

    그 손님이 자신이 운영하는 미사리 식품공장 건물 2층에 15평 짜리 예배당을 마련해준 겁니다. 

     

    가수 노영심씨는 카페 에클레시아에 대해 이렇게 적었습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외면하고 있는 저에게 카페 에클레시아는 하나님을 다시 생각하게 해 주는 공간입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여전히 교회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을 주저하고 있는 제게 하나님과의 끈만은 놓지 않게 해 주시는 분들입니다.

    표현도 못하고 말도 예쁘게 하지 못하고 투정만 부리는 저지만, 마음속에 목사님과 사모님의 진심 어린 사랑을 항상 느끼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힘든 시간을 버티며 이겨 내고 있습니다. - 단톡방 에클레시아 멤버 노영심." (<고백 에클레시아>, 37쪽)

  • 영혼의 존재를 탐구하는 과학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Pexels)

    “영혼은 실재하는가?”
    이 논쟁은 수 세기 이상 지속된 난제 중 하나입니다. 

     

    과거부터 영혼의 존재를 믿어온 종교계와는 달리, 과학계에서는 영혼이나 의식을 인간 두뇌의 신경 네트워크 내에서 수행되는 단순한 계산에 의한 것으로 보고, 영혼의 존재를 부정해왔습니다. 

     

    그런데 일부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오래 전부터 영혼의 존재를 믿고 이를 규명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Orch-OR 이론”입니다.

     

    영국 옥스포드 대학(University of Oxford)의 로저 펜로즈 교수(Roger Penrose)와 미국 애리조나 대학(University of Arizona)의 스튜어트 해머로프 교수(Stuart Hameroff)는 2014년 3월 영혼의 존재를 뒷받침할 근거로 “조화로운 객관적 파동수축(Orch-OR 이론)”을 발표했습니다. 

     

    그들은 “영혼은 뇌세포의 미소관(microtube)에 머문다”고 주장합니다. 미소관은 튜블린(tubulin)이라 불리는 단백질로 구성된 매우 가느다란 관입니다. 동식물 세포 내에 존재하는 기관으로, 세포의 골격유지, 세포의 이동, 세포 내 물질의 이동 등의 기능을 수행합니다. 

     

    Orch-OR 이론에 의하면, 사람의 뇌는 수많은 양자(quantum)로 이루어진 ‘생물학적 컴퓨터’이며, 사람의 의식은 영혼에 기인한 ‘계산이 불가능한 양자 프로세스’에 기반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양자 프로세스란, 두뇌 뉴런 속 미소관 내에서 일어나는 양자 진동을 말합니다. 

     

    미소관은 “튜블린”이라는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튜블린은 ‘확장상태’와 ‘수축상태’라는 두 가지 상이한 상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소관도 같은 상태를 보이는데 이를 통해 이웃한 단백질들의 양자상태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반응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뇌의 전 영역으로 영향이 확산된다고 합니다. 
    이 이론에서는 이러한 연쇄적인 과정을 인간의 정신활동으로 보고, 이 과정의 중심에 있는 미소관을 “인간의 의식이 있는 장소”라고 봅니다.

     

    두 교수는 이 이론에 대해 설명하면서, “Orch-OR 이론으로 20가지를 테스트 해본 결과 6가지가 확인되었으며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Orch-OR 이론은 가장 엄격하고, 포괄적이고, 성공적으로 검증된 이론”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사이언스 채널(Science Channel) 한 프로그램에서 해머로프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심장 박동이 멈추고, 혈액이 흐르는 것이 멈추는 상황을 가정해봅시다. 그런 상황에서 그 환자의 미소관들은 그들의 양자 상태를 잃게 됩니다. 미소관 내에 있는 양자정보는 파괴되지 않으며, 파괴될 수도 없습니다. 단지, 그것은 우주로 분배될 뿐입니다. (그 상황에서) 만약 환자가 소생되고 회복된다면, 이 양자정보는 다시 미소관으로 되돌아갈 수 있고, 그 환자는 "난 임사체험을 했었지요."라고 말하게 됩니다."

     

    물론 이 이론에는 의문점이 따라 다닙니다. 양자 단위로 인간의 정신활동을 설명하기에는 인간의 두뇌가 너무 크고, 보통 이 정도 크기에서는 양자적 효과는 거의 상쇄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과학계에서는 아직까지도 이 이론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이 이론은 학술지 생명의 물리학 리뷰(Physics of Life Review) 2014년 3월호에 발표되었습니다.

  • 한국의 천년 사찰, 세계의 천년 사찰로

    국보 제55호 법주사 팔상전. 이미지 출처 : Carl Mikoy (https://www.flickr.com/photos/carlmikoy/3042034537/)

    국내의 천년 사찰 7곳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됐습니다.

     

    세계문화유산위원회(WHC)는 6월30일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서 열린 제42차 회의에서 국내 7개 사찰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등재하기로 최종 결정했습니다.

     

    이번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사찰은 경남 양산 통도사, 경북 영주 부석사, 충북 보은 법주사, 전남 해남 대흥사, 경북 안동 봉정사, 충남 공주 마곡사, 전남 순천 선암사 등 총 7개 사찰입니다.

     

    모두 7~9세기 창건된 이후 현재까지 ‘종합승원’으로 기능하는, 유서 깊은 사찰입니다. 이 가운데 봉정사는 1999년 4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문해 세계적인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 불교의 깊은 역사성, 그리고 이들 사찰이 천년이 넘는 세월에도 종합승원으로서 계속 기능하고 있다는 점 등이 세계유산 등재조건인 ‘탁월한 보편적 기준(OUV)’을 충족한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세계문화유산 후보지를 사전 심사하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당초 역사적 중요성을 이유로 통도사, 법주사, 부석사, 대흥사 네 곳만 등재를 권고하고, 나머지 세 곳은 ‘보류’할 것을 제안했으나 결국 모든 사찰이 그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유산위원회에서 21개 위원국 만장일치로 세계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이번에 7개 사찰이 등재되면서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모두 13개로 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