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명상 : 명상수필

Contents List 3

  • 겨울산을 품을 걸으며

    이미지 : 이병철

    맨몸으로 우뚝 서 있는 겨울산 품을 걷습니다.

     

    발소리를 내기도

    뒤척이기도 조심스러운 저,

    깊은 고요.

     

    나무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제 본래의 겸손한 모습이고

    계곡의 물도 더 이상 크게 소리 내지 않습니다.

    제 속살을 드러내 더 장엄해진 진면목을 대합니다.

    꽁꽁 감싸고 있는 제 모습이 문득 누추해집니다.

     

    참 이상도 하지요?

    이즈음 산에 오는 이들도 대체로 혼자입니다.

    여럿이 떼를 지어 왁자한 일이 드무니

    산과 '나'가 적나라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

    서로의 몸과 속을 다 드러내고 마주하는 이 통쾌함.

     

    살면서 더러는 겨울의 산과 나무처럼 침묵할 일임을 깨닫습니다.

    말도 여의고 노래도 여의고 나 스스로를 여의면

    저 깊이를 알 길 없는 고요에 머물 수도 있음을 배웁니다.

     

    오늘,

    갑사 계룡의 깊은 침묵과 서늘한 평화를 전합니다.

     

    잠시 머물러

    깊어지소서.

  • 평화는 어디서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먼저 건네는 인사에서

    고맙다는 말 한 마디 말에서

    살풋한 미소 한 자락에서

    고요한 들숨 날숨에서

    품어 안는 가슴에서

    비켜서는 발걸음에서

    내려놓는 그 마음에서

     

    온다, 마음의 평화

    피어난다, 세상의 평화

  • 가서 쉬어라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성서에 보면 전교 여행을 마치고 온 제자들이 스승님께 그간의 일들을 말씀드리자 스승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외딴곳에 가서 좀 쉬어라." 

     

    '쉼'은 '비움'입니다. 

    비워야 부드러워집니다. 

    모든 생명은 이 부드러움에서 싹 틉니다. 

    부드럽지 않은, 비어있지 않은 곳에서는 아무 생명도 창조되지 않습니다. 

    창조의 힘과 완성은 '쉼'입니다. 

    신께서도 천지를 창조하시곤 이레째 되는 날 쉬십니다. 

     

    어느 광고도 있지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우리도 쉬어야 합니다. 

    온전한 '쉼'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어떻게 쉴 것인가 

    하루에 적어도 이, 삼십 분 

    고요히 앉아 내 안의 진정한 참모습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즐기는 일 

    일 년에 적어도 보름 정도 

    익숙한 내 자리를 떠나 낯선 곳에서 전혀 타인처럼 훨훨 살아 보는 일  

     

    그대가 본시 대자유하고 완전한 존재이기에 

    가끔은 이곳을 떠나 

    고요한 그대의 자리로 돌아가 머무는 그것 

     

    "너희는 가서 좀 쉬어라."

  • 진짜 재산이란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동물은 배가 부르면 아무리 맛난 게 눈앞에 있어도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지구상의 생명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만이 먹을 게 썩어들어갈 정도로 많아도  더 쌓아두려고 합니다. 

     

    재산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진 게 차고 넘쳐도 더 가지려고 합니다. 

    자신의 재산을 세고 관리하기 위해 사람을 채용해야 할 정도로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이 조금 더 가지려고 다른 이의 재산을 탐냅니다. 

     

    하지만 그렇게 쌓은 재산은 자신이 죽은 뒤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쌀 한 톨도, 단 돈 십 원도갖고 가지 못합니다. 

     

    진짜 재산은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 작은 친절, 부드러운 말 한마디, 조건 없는 베풂, 다른 존재를 위한 기도, 어려운 이를 돕는 봉사, 핍박받는 이를 위한 지원 등.

     

    이런 것들이야말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늘에 쌓는 부입니다.
    죽은 뒤에도 지니고 있게 되는 참된 재산입니다. 

  • 숨, 참 쉼의 도구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Pexels)

    숨과 관련한 우리 표현 가운데 쉰다는 게 있습니다. 내쉰다고도 합니다.

    왜 숨이라는 단어에 쉰다는 표현이 들어가 있을까요? 숨이 우리가 쉬는 데 가장 요긴한 수단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숨은 생명을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음식은 먹지 않아도 50일 이상 살 수 있지만 숨은 몇 분만 쉬지 않아도 생명을 잃게 됩니다.

    하지만 숨의 중요성을 나타내기에 쉰다는 표현은 적합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숨을 쉰다는 표현은 말 그대로 숨을 통해 우리의 몸과 마음이 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숨을 풍부하게 들이마시고 내쉬면 몸에 긴장을 풀 수 있습니다. 몸에 에너지도 찹니다.

     

    무엇보다 숨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쉴 수 있도록 해줍니다. 숨에 마음을 모으면 생각이 줄어듭니다. 생각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숨이 생각을 쉬는 도구가 되는 것이지요.

  • 명상은 나무 그늘 아래서 쉬는 것

  • 지혜로운 딸이 부자 아빠를 가르치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jill111)

    부와 가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영국 출신의 명상가인 제이 셰티가 올린 동영상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어느날 한 부자가 어린 딸을 자그마한 외딴 마을에 데리고 갔습니다. 

     

    딸이 가난을 겪어보고 무언가를 배울 수 있기를 바라서였습니다. 가난하지 않으려면 열심히 공부해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마음먹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겠지요.

     

    부자 아빠는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한 그 마을의 작은 농장에서 딸과 함께 며칠을 지냈습니다. 그들을 도우려 노력하면서 말이죠.

     

    돌아오는 길에 아빠가 딸에게 물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보거나 배운 게 있니?”

     

    딸은 “아주 굉장한 여행이었어. 나는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라고 답했습니다.

     

    아빠가 다시 딸에게 물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지 알았지?”

     

    그러자 딸은 “그럼”이라고 말했습니다. 

     

    부자 아빠는 자신이 기획한 여행이 딸에게 삶에 필요한 큰 교훈을 줬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그래서 딸에게 이번 여행을 통해 배운 게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개 한마리를 키우는데 그들은 네 마리를 키워. 

     

    우리는 마당 한가운데 풀장이 있는데 그 분들은 끝이 없어 보이는 호수를 갖고 있어. 

     

    우리는 정원을 밝히기 위해 조명을 설치했지만 그 가족은 별빛을 조명삼아 지내. 

     

    우리집 창문에서 보면 빌딩만 보이지만 그집에서는 멋진 일몰을 볼 수 있었지. 

     

    우리는 음식을 사먹지만 그분들은 자신들이 먹을 것을 직접 길러. 

     

    우리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담장을 세웠지만 그분들은 언제든지 자신들을 도울 친구와 마을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아.”

     

    부자 아빠는 할말이 없었습니다.

    딸이 아빠에게 다시 말했습니다. 

     

    “아빠, 우리가 얼마나 가난한 지를 알려줘서 정말 고마워.”
     

  • 할아버지가 말썽꾸러기 손자와 쇼핑하는 법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한 할아버지가 세 살바기 손자와 슈퍼마켓에 갔습니다.

     

    할아버지가 식료품 코너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을 때 세 살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사탕을 달라고 소리치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이 비스킷이 쌓여 있는 곳에 도착하자 손자는 이번에는 비스킷을 달라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또 다른 코너에 이르자 손자는 과일과 시리얼이 먹고 싶다고 다시 고함을 질러댔습니다.

     

    당황할 법도 하지만 할아버지는 내내 침착했습니다.

    “윌리엄, 오래 걸리지 않을거야. 진정해”

     

    손자의 고함과 떼쓰기는 계속됐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래도 평정심을 잃기 않았습니다.

    “얘야 조금만 참으렴”

     

    손자는 마침내 카트에 담긴 물건을 내던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도 할아버지는 침착하게 타이르기만 하는 듯이 보였습니다.

     

    “윌리엄, 윌리엄 진정해. 화내지마. 어찌됐든 우리는 5분 안에 집에 갈 수 있을거야. 침착해 윌리엄”

     

    한 여성은 할아버지의 그런 모습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할아버지를 따라 주차장으로 가서 물었습니다.

     

    “손자가 그렇게 시끄럽게 굴어도 참 침착하게 모든 것이 괜찮을 거라고 말씀하시는 걸 보고 감동했습니다. 윌리엄은 이런 훌륭한 할아버지가 계셔서 참 좋을 것 같아요.”

     

    그러자 그 할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윌리엄은 손자가 아니라 제 이름입니다. 이 작은 꼬마의 이름은 케빈이지요”

  • 어느날 상추가 내게 말을 걸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다른 생명을 해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지구에 사는 동물은 다른 생명을 통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났습니다.

     

    다른 생명을 해치는 게 싫어 육식을 거부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교사로 살다 정년 퇴직을 한 한 여성도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텃밭을 가꾸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자란 식물을 가져다 먹을 때에도 늘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식물의 생명을 취해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게 늘 부담스러웠지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식물을 뜯으러 가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어느날 그가 밭에서 상추를 뜯을 때 갑자기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는 깜짝 놀라 주위에 누가 있는지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잠시 뒤 그는 상추가 자신에게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상추가 한 말에 너무나 감동했습니다.

     

    “나를 먹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지 마세요. 나는 당신을 너무 사랑합니다. 당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내 생명을, 내 몸을 당신에게 주는 것이 너무 기쁩니다. 다만, 한 가지만 기억해주세요. 당신이 저를 먹고 얻은 생명력으로 제가 당신을 사랑하듯이 다른 존재를 사랑하면서 살아가 주세요. 당신이 그렇게 살아간다면 저는 너무나 기쁠 것입니다.”

  • 수피 성자 루미의 시와 묘비글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alfcermed)

    이슬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메블라나 잘랄루딘 루미를 꼽습니다.

     

    루미는 이슬람 신비주의 수피의 성자이고 시인입니다. 서구의 젊은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이슬람의 성자이지요.

    유네스코는 2007년을 ‘세계 루미의 해’로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루미의 대표적인 시입니다.

     

     

    동정과 자비를위하여는

    태양과 같이 되어라

    남의 허물을 덮어주기에

    밤과 같이 되고

    노여움은 죽음처럼 그리고

    겸손하기 땅처럼 되어라

    당신의 모습대로 내보이고

    당신이 내보이는 바대로 되어라.

     

     

    그는 삼라만상에 깃든 본질, 사랑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하늘이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하늘은 그토록 청명하지 않을 것이다.

    태양이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그 어떤 빛도 내지 않을 것이다.

    강물이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강물은 소리도 내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을 것이다.

    산과 땅이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자라지 않을 것이다.

     

     

    터키 코니아에 있는 루미의 묘 앞 돌에는 많은 이들에게 위안이 되는 다음과 같은 시구가 적혀있다고 합니다. 번역문은 미국 유니온신학대 현경 교수님의 글에서 가져왔습니다.

     

     

    “오라, 그대가 누구든. 신을 버린 자, 이방인, 불을 경배하는 자, 누구든 오라. 우리들의 집은 절망의 집이 아니다. 그대가 비록 백번도 넘게 회개의 약속을 깨뜨렸다 할지라도. 오라….”

     

    "Come, come, whoever you are. Wanderer, worshiper, lover of leaving. It doesn't matter. Ours is not a caravan of despair. Come, even if you have broken your vows a thousand times. Come, yet again, come, c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