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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캐나다 10달러 신권에 새겨진 첫 여성흑인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퍼블릭 도메인)

    캐나다가 여성 흑인 인권운동가를 새긴 10달러 새 지폐를 만들었습니다. 

     

    캐나다 중앙은행인 캐나다은행은 19일 스티븐 폴로즈 총재가 참석한 가운데 위니펙에 있는 캐나다 인권 박물관에서 10달러 신권 발매 기념행사를 열었습니다. 

     

    지폐에 새겨진 인물은 캐나다 흑인 인권운동의 선구자인 고 비올라 데스몬드 여사입니다. 그는 1946년 11월 8일 한 극장에서 백인 전용 좌석에 앉은 채 자리를 옮겨달라는 요구를 거부하면서 흑인 인권운동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습니다.

     

    데스몬드 여사는 화장품을 만들어 방문판매했는데 하룻밤 머물게 된 노바스코샤주 헬리팩스에서 극장을 찾았다가 백인 전용석에 앉게 됐습니다. 

     

    직원이 흑인석으로 자리를 옮길 것을 요구했으나 그는 이를 거부했고 결국 출동한 경찰에 체포돼 12시간 구류와 함께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데스몬드 여사의 행동은 노바스코샤주에 만연하던 인종차별에 정면으로 맞선 불복종 운동으로 평가받았습니다. 데스몬드 여사가 살던 노바스코샤주 정부는 데스몬드 여사를 탈세 혐의로 기소하면서 보복을 했습니다. 극장에서 흑인들이 앉는 발코니석과 백인 전용 좌석의 가격차이 1센트에 대한 세금포탈을 시도했다는 게 죄명이었습니다. 1센트 비싼 좌석에 앉았으니 1센트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게 기소 이유였습니다.  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여 데스몬드 여사에게 26달러의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2010년 노바스코샤주 정부와 법원은 그녀의 1센트 탈세에 대해 사후 무죄를 판결했고 공식 사과했습니다. 캐나다 정부는 2012년 데스몬드 여사를 기념하는 우표를 발행했습니다. 

     

    데스몬드 여사는 캐나다은행이 지폐에 새길 여성을 선정하기 위해 실시한 공모와 여론조사를 거쳐 지난 3월 선정됐습니다.  데스몬드가 새겨진 10달러 신권은 캐나다 지폐 가운데 처음으로 세로 디자인으로 만들어졌으며 뒷면에는 그의 고향인 핼리팩스 북부의 흑인 밀집 지역 지도가 담겼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이날 열린 행사에 참석한 데스몬드 여사의 여동생 완다 롭슨(91)은 "인권과 평등을 위한 위대한 전진의 날"이라며 감격해 했습니다. 

     

    데스몬드의 얼굴이 새겨진 10달러 지폐는 11월 26일부터 시중에 유통됩니다.  

  • 피터 노먼, 올림픽보다 더 위대한 선수

    이미지 출처 : 피터 노먼 페이스북

    이미지 출처 : 올림픽 유튜브 캡쳐

     

    1968년 멕시코에서 열린 올림픽을 전설로 만든 것은 단 한 장의 사진이었습니다.

     

    육상 200m 시상식 사진입니다. 1등과 3등을 차지한 흑인 선수는 시상대에서 고개를 숙인 채 검은 장갑을 낀 손을 치켜 올렸습니다.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에 항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두 사람이 올림픽 정신을 훼손했다며 곧바로 선수촌에서 쫓아냈습니다.

    시상대에 섰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는 그 때부터 흑인 인권운동의 상징이 됐습니다.

     

    하지만 두 선수 옆에 얌전하게 서 있던 백인 선수를 기억하는 사람은없습니다.

    은메달을 받았던 호주 출신의 백인 선수 피터 노먼이 그의 이름입니다. 

     

    시상식 전에 두 사람이 퍼포먼스를 준비한다는 사실을 한 노먼은 자신도 동참하겠다고 밝히고 두 선수에게 까만 장갑을 구해다 주기까지 했습니다.

    함께 팔을 들지 않았지만 노먼은 정의를 상징하는 올림픽 배지를 착용했습니다.

     

    호주는 백인 우월주의의 또 다른 이름인 백호주의(White Australia policy)가 득세하던 곳이었습니다. 백인이 아닌 사람의 이민을 제한하는 정책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런 나라를 조국으로 둔 피터 노먼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지만 칭찬 대신 혹독한 ‘응징’을 당했습니다. 호주는 그에게 상을 주는 대신 차기 올림픽 출전권 박탈이라는 징계를 했습니다.

    노먼은 백호주의를 저버린 ‘배신자’로 낙인찍혀 일자리도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간신히 학교 체육 교사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꾸준히 인종 차별을 반대하는 흑인 인권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노먼은 함께 시상대에 섰던 두 흑인을 비판하면 복권시켜주겠다는 제안도 받았지만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대신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인권운동에 삶을 바쳤습니다.

     

    노먼은 2006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도 호주 정부는 그를 외면했습니다.

    스미스와 카를로스는 장례식에 참석해 관을 들고 애통해했습니다.

    카를로스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두 사람은 약간의 좌절을 맛봤지만 노먼은 자신의 조국인 한 나라와 맞서 고독한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라고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피터 노먼(가운데)이 토미 스미스, 존 카를로스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이미지 출처 : 피터 노만 페이스북

     

    노먼이 세상을 떠난 지 6년이 지난 2012년 호주 올림픽 위원회는 드디어 그에게 정식으로 사과했고 그의 인권운동에 대한 공헌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노먼의 이런 삶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흑인인권운동을 상징하는 대표적 사진인 멕시코 올림픽 시상식 사진에서 그저 “위대한 흑인 선수 옆에 있는 백인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노먼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는 시상식 사진이 조형물로 만들어질 때 자신이 서 있던 자리를 비워두라는 의견을 냈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섰던 자리에서 “위대한 흑인 선수들”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두 흑인 선수 못지 않게 노먼도 위대한 선수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1968 멕시코 올림픽 당시의 시상식을 본떠 만든 조형물. 노먼의 의사를 존중해 2등 자리는 공석으로 남아있다. 이미지 출처 : San Jose State University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