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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불을 쪼개 땔감으로 쓴 쓰님

    이미지 : 유튜브 캡쳐

    

    단하천연(丹霞天然)은 당나라 때의 고승입니다. 저녁노을을 뜻하는 단하라는 멋들어진 이름을 가진 선사이지요.

     

    단하 선사와 관련해서는 유명한 일화가 <전등록>에 실려 있습니다. 단하소불, 다시 말하면 단하선사가 목불을 태웠다는 뜻입니다.

     

    단하 선사가 만행을 하며 각지를 돌아다니다가 추운 겨울날 낙양에 있는 한 절에서 묵게 되었다고 합니다.

     

    객실이 너무 추워서 잠을 자기 힘들자 단하 선사는 대웅전에 올라가서 목불을 가져다 도끼로 쪼개 불을 지폈습니다.

     

    불이 활활 타오를 때 그 절을 지키던 스님이 깜짝 놀라 달려 나와 소리쳤습니다. “불상을 쪼개서 불을 피우다니 당신 미쳤소?

     

    단하 선사는 태연하게 막대기로 재를 뒤지면서 “목불을 다비(화장)해서 사리를 얻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그 절의 스님은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스님은 고함을 쳤습니다. “목불에 어떻게 사리가 나온단 말이요?”

     

    그러자 단하 선사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사리 없는 부처라면 나무토막이지 어찌 부처이겠습니까?”

     

    단하 선사의 이런 기행은 부처님의 가르침 대신 불상을 모시는 행태, 나아가 부처님 가르침 대로 살지 않는 세태에 각성의 죽비를 내리친 게 아닐까 합니다. 그 죽비소리는 오늘날 더 유용해 보이기도 합니다.

  • 진표율사 (3) - 소에게 절을 받다

    이미지 : Pixabay.com

    진표율사가 가르침을 베푸는 금산사는 1백 년 전에 멸망하여 소외받는 백제인들의 귀의처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널리 퍼져나가는 미륵신앙이 자칫 현실도피나 허무주의로 빠지는 것을 경계하며 ‘실천 없이 미륵불의 내려오심만 기다리지 말라’고 엄하게 가르쳤습니다. 죄를 참회하면서 선업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진표율사는 퇴락해가는 절을 다시 새롭게 고치고 미륵장륙상(彌勒丈六像)을 조성하고 속리산으로 향하였습니다.

     

    속리산에 거의 이를 무렵 소달구지를 탄 사람을 만났는데 소들이 갑자기 스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었습니다.

     

    “아니, 이 소들이 왜 스님 앞에 무릎을 꿇고 웁니까? 스님께선 어디서 오십니까?”

     

    “나는 진표라는 사람으로 금산사에서 오는 길입니다. 저는 훌륭한 도량 터를 찾아 속리산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들은 내가 미륵부처님한테서 계법을 받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들도 불법을 중히 여기는 까닭에 꿇어앉아 우는 것입니다.”

     

    “짐승도 이렇게 신심이 깊은데 사람인 제가 어찌 무심할 수 있겠습니까?”

     

    달구지에 탔던 사람이 낫으로 자기의 머리칼을 잘랐습니다. 진표율사는 그를 갸륵하게 여겨 다시 머리를 깎아주고 계를 받게 하였습니다.

     

    진표율사가 속리산으로 들어가니 길상초가 무성하게 우거진 곳이 있었습니다. 과연 성스러운 수행도량이 될 만하다고 생각하여 그곳에다 표시를 해두고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하루는 속리산에서 세 스님이 찾아왔습니다. 스님들은 자신들을 영심, 융종, 불타라 소개하며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진표율사는 묵묵부답,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세 스님은 자신들의 죄업이 깊다고 생각하고 뜨락에 있는 복숭아나무 위에 올라가 떨어지며 참회하였습니다.

     

    진표율사는 그제서야 스님들을 부르고 자기의 가르침을 모두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미륵부처님한테서 받은 간자 두 개를 건넨 뒤에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너희는 이 간자들을 가지고 속리산으로 돌아가거라. 속리산에 길상초가 무성하게 우거진 곳에 표식이 있다. 거기에다 절을 세우고 미륵부처님의 교법을 널리 전하라.”

     

    세 스님은 속리산으로 돌아와서 진표율사가 당부한 대로 길상초가 우거진 곳에다 절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길상사(법주사)’라고 지었습니다.

  • 진묵조사 (6) - 저것이 바로 부처님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초의 선사가 편찬한 <진묵대사유적고>에 진묵스님이 입적할 무렵의 일을 전하고 있습니다.

     

    진묵조사가 나이 72세 되는 해 10월이었습니다, 조사는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시자를 데리고 시냇물로 갔습니다. 그리고 물에 비친 스님의 그림자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것이 바로 석가부처님이다.”

     

    물에 비친 그림자를 들여다본 시자가 말했습니다.

     

    “그것은 스님의 그림자입니다.”

     

    “너는 나의 거짓 모습은 알면서 그 안에 부처님의 참모습은 모르는구나.”

    조사는 방으로 들어가 가부좌를 하고 나서 대중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나는 오늘 세상을 떠나려고 한다. 부지런히 닦고 잘 깨우치거라.”

    “스님이 가시면 누가 법맥을 이어갑니까?”

    “수행자가 공부나 참되게 하면 되지, 그런 것은 왜 따지느냐?”

    그래도 제자들이 스님을 붙잡으며 재삼 청하자 조사는 마지못해 입을 떼었습니다.

    “명리승(名利僧)이기는 하나 서산스님이 정통을 이은 분이니 그쪽으로 해라.”

     

    말을 마친 진묵조사는 가부좌한 채 고요히 입적하였습니다. 대둔산에 있는 태고사에는 진묵조사의 풍모를 짐작하게 하는 시가 남아 전합니다.

     

    하늘을 이불 삼고 땅으로 자리하고 산은 베개 하며

    달을 촛불 삼고 구름으로 병풍치고 바다는 술통 삼네.

    크게 취해 거연히 일어나 신나게 춤추니

    긴 소매가 곤륜산에 걸릴까 저어할 뿐이라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