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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 마음가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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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자들의 시대15-임독이 열리다

    "됐다. 이제     중단전의 옥로를 하단전으로 내려보내라."

    석주는 스승이 시키는 대로 했다.

     

    "그것을 다시 몸통 왼쪽으로 올려보냈다가 오른쪽으로 내려보내라.

    그런 다음 또 선정에 들어라. 정신을 오로지 중단선에 붙들어내라."

     

    석주는 스승의 인도에 따라 깊은 선정에 잠겼다.

    석주의 정신은 중단전에 자리잡은 단만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마음은 죽은 고목나무처럼 일체 번뇌에 물들지 않았다.

    밝고 밝은 정신만이 성성하게 께어서 단을 비췄다.

     

    며칠이 지났다. 석주의 중단전에서 단이 견고하게 응결됐다.

    벽운 선생이 그제서야 석주를 깨웠다.

    단이 맺어지자 몸 속이 텅 비어 버린 것 같았다. 몸 전체가 혀공으로 변한 느낌이었다.

    그 허공 속에서 바람이 쏴아쏴아 불어댔다. 그것은 우주의 진기였다.

    진기가 크게 움직이며 황홀한 쾌감으로 몸이 떨렸다.

     

    또, 여러 가지 이상한 현상이 생겼다. 등뒤의 독맥이 거대한 빛기둥으로 보였다.

    임맥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로 보였다. 하단전.중단전은 광막한 하늘로 화했다.

    그 하늘 곳곳에 별천지가 펼쳐졌다.

    은빛 찬란한 새들이 날아다니고 오묘한 음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입 안에서는 단침이 샘솟듯 솟아나왔다. 마셔도 마셔도 마르지 않았다.

    진기가 온몸에 충만해서 뭘 먹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았다.

    잠도 줄어 자는 듯 마는 듯했다.

     

    필섭인 석주보다 열흘 늦게 단을 이뤘다.

    보화로 인해 번뇌에 빠져 공력을 많이 잃었기 때문에 그만큼 늦어진 것이었다.

    벽운 선생은 필섭이 단을 얻은 뒤, 지금까지 해온 공부와 앞으로 할 공부에 대해 자세히 말해 줬다.

     

    "사람에겐 정, 기, 신이란 게 있다.

    정은 몸이 되고, 기는 몸을 움직이는 힘이며, 신은 정신이 되어 기를 다스린다.

    사람은 하늘에서 나올 때 신 하나를 지니고 왔다.

    하늘에서부터 받아온 신을 원신이라고 한다.

    원신은 기.정과 합쳐져 사람으로 잉태된다.

    잉태할 때 원신과 합쳐진 기를 원기라한다. 정은 원정이라고 부른다.

    사람은 태어나 자라면서 온갖 번뇌에 빠져 허덕인다.

     번뇌로 인해 원정, 원기, 원신이 자꾸 소모된다.

    애욕 때문에 정을 배출하여 원정이 줄어들고, 무리하게 힘을 써서 원기가 소진된다.

    그리고 번다한 생각으로 원신이 허약해진다. 그러다가 늙고 병들어 죽음에 이른다.

    너희는 그동안 번뇌를 씻어내고 원정을 보양했다. 이원정이 기로 화하여 원기도 충만해졌다.

    잡다한 생각을 떨치고 마음을 일으키지 않아 원신도 기력을 되찾았다.

    단은 충만한 원정이 원기로 변한 것이다.

    원정으로 원기를 만드는 공부를 선가에선 연정화기라 일컫는다.

    또, 단이 맺히면 임독맥이 열린다. 임독맥이 열려 그리로 기가 돌아가는 것을 임독유통이라 한다.

    소주천이라 부르기도 한다. 단은 원신이 머무는 집이다.

    단이 생기면 그 안에서 원신이 자란다. 단이 처음 생겼을 때, 원신은 아직 갓 잉태된 태아와 마찬가지다.

    잉태된 아기는 어머니의 탯속에서 열 달간 자란다.

    열 달이 지나야 비로소 사람의 형체를 온전하게 갖춘다.

    원신도 그렇다. 단 속에 머물며 잘 길러야 온전한 모습을 얻는다.

    그러니까 단은 원신의 태다. 선가에선 단을 성태라 부른다.

     

    성인은 하늘 사람이다. 하늘과 한몸이 된 이다. 선인도 그렇다.

    하늘 사람이 되려면 하늘에서 처음 나올 때의 본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본모습이 바로 원신이다.

    마음과 정신과 몸이 모두 원신으로 화할 때 비로소 참하늘 사람이 된다.

    원신이 자라면 자랄수록 하늘 사람에 그만큼 가까워지는 것이다.

    단을 얻은 사람을 선가에선 인선(人仙)이라 부른다. 인선만 돼도 큰 도력이 생긴다.

    기이한 신통력도 얻으며 엄청난 기운이 용솟음친다. 또, 병에 안 걸리고 무변장수를 누린다.

    그래서 인선 중에는 자기가 크게 득도한 줄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도를 모두 이룬 줄 안다.

    자기가 성인, 신선이 된 양 방자해져서 더 이상 공부를 하지 않는다.

    하나, 도를 완성하려면 앞으로 창창하다.

    이제 겨우 도로 들어가는 문턱 근처에 이른 것이다.

     

    인선(人仙) 위에 지선(地仙)이 있고, 지선 위에 천선(天仙)이 있다.

    또 천선 위에는 금선(金仙)이 있다. 금선이 돼야 비로소 도를 다 이룬다.

    그러니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참 멀고 멀다.

    이제부터 너희는 단에 갓 잉태된 원신을 잘 양육해야 한다. 원신은 원기를 먹고 자란다.

    원기가 원신으로 화하는 것을 연기화신(煉氣化神)이라 일컫는다.

    태아를 기르는 일과 마찬가지라서 중성 양태(中性養胎)라고도 한다.

    임신한 여자들은 몸가짐 마음가짐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유산하기 십상이다. 몸이나 마음이 온전치 못한 아기가 태어날 수도 있다.

    원신도 마찬가지다. 수행을 잘못하면 태아가 유산되듯 사라지고 만다.

    마음과 정신을 더욱 깨끗이 닦고 원신을 잘 보양하거라.

     

    이제부터는 너희 심신을 중단전의 단에 꼭꼭 붙들어매라.

    너희 맑은 정신에서 뿜어 나오는 광채로 오로지 단만을 비춰 주거라.

    정신을 단에 집중시키고, 고요하고 고요한 가운데 성성히 깨어 있어야 한다.

    가만히 선정에 들어 있으면 하단전에서 불덩이가 생길 게다.

    이 불덩이를 독맥을 통해 머리로 올려보내라.

    그러면 입천장에서 또 옥로(玉露)가 방울방울 내려온다.

    이것을 단이 머무는 중잔전에 보내라. 이 옥로는 원신을 기르는 자양분이다.

    어느 날 갑자기 하단전에서 천둥치는 소리도 들릴 게다.

    그리고 아랫배가 끊어지는 듯 아프다가

    뜨거운 불덩이가 생겨나 저절로 머리에 치솟아 오를 것이다.

    그런 다음 정수리에서 폭풍이 일며 눈앞에 둥근 광채가 보인다.

    이 광채가 싸아하고 시원한 기운으로 변하여 입으로 들어온다.

    그 기운을 삼켜 중단전으로 보내라. 선가에선 그것을 금액(金液)이라 부른다.

    금액 역시 옥로처럼 원신을 기르는 양분이다. "

     

    단이 생긱고 임독맥이 열리자, 석주와 필섭의 기력은 이전보다 몇 배 강해졌다.

    식사량과 잠이 반으로 줄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며칠 후, 벽운 선생의 말대로 하단전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두 사람은 이 열기를 마음으로 이끌어 정수리까지 올려보냈다.

    그러자 청량한 기운이 방울방울 입 안으로 떨어져 내렸다.

    옥액(玉液)이었다. 이것을 삼켜 중단전으로 보냈다.

    옥액은 며칠 동안 계속 생겨났다. 두 사람은 한 방울도 남김없이 모두 삼켰다.

    그런 다음에 옥액을 온몸으로 두루 돌렸다. 그러고 나서 단 속으로 거둬들였다.

    또, 얼마가 지났다. 하루는 하단전에서 갑자기 굉음이 울렸다.

    단전 주위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더니 또 엄청나게 뜨거운 열기가 생겨나 독맥을 타고 정수리로 올라갔다.

     

    그와 동시에 서늘한 바람이 정수리 속에서 거세게 일었다. 인당(양 눈썹 사이) 주위에 둥그런

    광채가 솟아올랐다. 입 안으로는 싸아하고 시원한 기운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며칠 동안 그 기운을 받아 마셨다.  

  • 성자들의 시대11- 명천의 수행

    계룡산 보덕봉

    운학산을 떠난 백령자와 벽운 선생이 이리로 왔다. 보덕봉에도 그의 제자가 하나 있었다.

    홍명천이란 젊은이다.

    명천인 앞을 못 보는  맹인으로 나이는 서른넷이었다.

    어려서 백내장을 앓는 바람에 눈이 멀었다.

    혜원과 함께 지내다가 혜원이 운학산으로 간 뒤에는 줄곧 혼자 살아왔다.

    가끔 벽운 선생과 백령자가 다녀갈 뿐 찾아오는 이가 전혀 없었다.

    그가 머무는 초막은 보덕봉 정상에서 남쪽으로 백 미터쯤 아래쪽에 있었다.

    벽운 선생은 보덕봉 정상에 앉아 초막을 내려다보았다.

     

    명천인 마당에서 외공을 수련하고 있었다.권법을 연습하는 중이었다.

    팔다리를 이리저리 쭉쭉 내뻗고 휘두르며 가끔 기합 소리를 터뜨렸다.

    기합 소리가 호랑이의 포효보다 더욱 우렁찼다. 대단한 공력이 실려 있어

    온 산이 쩌렁쩌렁 울렸다.

    움직임은 전광석화처럼 빨랐다. 손발을 내뻗을 때에도 강한 기운이 뿜어 나갔다.

    단전에 가득 쌓인 진기가 경락을 타고서 손끝발끝으로 뻗쳐  가는 것이었다.

    명천인 권법 수련을 끝낸 다음, 커다란 돌을 집어 들었다.돌의 두께가 두어 자,

    길이가 석 자쯤 되었다. 이것을 공중에 집어 던졌다.

    돌은 포물선을 그리면서 높이 솟구쳤다가 10미터쯤 앞쪽으로 떨어졌다.

    명천은 한 길 이상 몸을 날려 내려오는 돌을 향해 손을 뻗었다.

    명천의 손끝이 돌에 채 닿기도 전에 단전에서 뿜어 나온 공력이 돌을 쳤다.

    돌은 굉음을 울리며 산산조각났다. 파편 조각들이 돌을 쳤다.돌은 굉음을 울리며 산산조각났다.

    파편 조각들이 총알처럼 앞으로 날아갔다.

    그러고 나서 명천인 땅바닥에 놓여 있던 목검을 집어 들었다. 검과 명천인 한몸이 되어 움직였다. 번개같이 움직이며 전후 좌우 상하로 검을 뻗었다.

    검을 내뻗을 때마다 단전에 충만한 진기가 손을 지나서 검 끝으로 뿜어 나갔다.

    잠시 후, 동작을 멈추고 심호흡을 하더니 땅바닥에서 왼손으로 나무 막대기들을 주워 들었다.

    길이가 30센티쯤 되고 지름이 1센티쯤 되는 막대기들이었다.

    명천은 이것들을 자기의 머리 위에 던졌다.

    나무들이 위로 올라갔다가 막 내려오기 시작하자, 명천의 몸이 두 길 가까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는 공중에 뜬 채로 칼을 휘둘렀다.

    칼이 막대기들한테 닿기 직전에 칼끝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뻗쳐 나와 나무들을 반쪽으로 갈랐다. 

    막대기들이 모두 두 쪽으로 갈라져서 우수수 땅바닥에 떨어졌다.

    명천인 막대기들이 다 떨어진 다음에야 사뿐히 밑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또 먼저 것보다 조금 더 큰 돌을 집어 올렸다. 이것을 높이 던졌다.

    돌이 무게 때문에 먼저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내려왔다.

    명천이 위로 솟구치며 칼을 상하 좌우로 휘둘렀다. 돌은 칼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을 맞고

    네 조각으로 갈라졌다. 

    명천인 맹인이라 앞이 안 보였다. 그러나 물체의 움직임을 기운으로 감지했다.

    눈으로 보는 거와 다름없이 물체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아냈다.  검술 수련이 끝났다.

     명천인 이어서 경신술 공부를 했다.

     

    초막 마당 한켠에 바위 두 개가 있었다. 높이가 한 길 가까이 되는 바위였다.

    두 바위의 간격은 4,5 미터쯤 되었다.

    명천인 가늘고 기다란 대나무 막대를 이 두 바위 위에다 걸쳐 놓았다.

    대나무의 굵기는 엄지손가락 두 개를 합쳐 놓은 것만 했다.

    명천이 바위 위로 훌쩍 뛰어올라가 두 손을 합장하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는 자신의 몸이 서서히 풀어져서 허공에 흩어져 버리는 모습을 상상했다.

    자신이 허공으로 변한다고 생각했다.

    상상 속에서 몸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뒤에는 장대를 떠올렸다.

    가느다란 장대가 쇠막대처럼 강해지고, 아름드리 통나무 만큼 굵어지는 모습을 상상했다. 

    명천인 장대가 거대한 통나무로 변하는 모습에 온 정신을 집중시켰다.

    그런 다음 대나무 뒤에 발을 올려놓았다.  한 발, 두 발, 천천히 앞으로 나갔다.

    명천이 가운데로 이르렸다. 그런데도 대나무는 앞으로 나갔다. 명천이 가운데로 이르렀다.

    그런데도 대나무는 전혀 휘어지지 않았다. 진짜 통나무인 것처럼 명천의 몸무게를 잘 감당했다.  명천이 사뿐사뿐 걸어서

    반대편 바위로 올라섰다.

    명천인 대나무를 바꿨다. 이 대나무는 먼저 것보다 더 가늘었다.

    명천인 앞서와 똑같이, 자신의 몸이 허공으로 변하고, 대나무가 통나무로 변하는

    상상을 한 뒤에 대나무 위로 올라섰다. 두 발이 모두 올라가자 대나무가 약간 휘어졌다.

    한발 한발 가운데로 갈수록 대나무는 점점 더 밑으로 내려왔다.

    명천이 대나무의 정중앙에 이르렀다. 대나무가 1미터 이상 휘어졌다. 다시 발을 옮기자

    조금씩 퍼졌다. 명천인 무사히 반대편 바위로 건너갔다.

     

    이때 벽운 선생의 모습이 정상에서 사라졌다. 그의 몸은 눈깜짝할 사이에 초막으로 옮겨졌다.

    명천인 스승이 온 것을 기운으로 알았다. 그의 뒤쪽에서 따스하고 평화로운 화기가 바람처럼

    밀려왔다.

    얼른 돌아서서 스승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그동안 평안히 지내셨는지요?"

    "별고 없었다. 부지런히 닦았느냐?"

    "예, 형님들과 누님도 무고들 한가요?"

    "잘 있다."

    "공부는 잘들 되는지요?"

    명천인 도반들의 수행이 얼마나 깊어졌는지 궁금했다.

    "열심히 닦는다. 혜원인 한 경계 더 높아졌고, 석주와 필섭인 머지않아 단을 이룰 게다."

    "아, 그래요 !"

    명천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는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너도 공부가 많이 됐구나. 살갗의 숨구멍이 꽤 열렸어, 공력이 예전 같지 않다."

    "아직은 완전치 못합니다. 피부의 숨이 자주 막힙니다."

    "네가 한을 품고 있어서 그렇다. 그게 없어져야 큰 도를 이루느니라."

    명천인 혜원이보다 조금 늦게 임독맥이 열렸다. 이제 피부 호흡 수련을 하는 중이었다.

    피부로 숨을 쉬노라면 온몸의 기공을 통해 우주의 진기가 쏴아쏴아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나 명천의 피부 호흡은 아직 불완전했다. 기공이 활짝 열렸다가도 곧 스르르 닫혔다.

    가슴에 응어리진 한 때문이었다.  그는 네 살 때 부모를 모두 잃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한날 한시에 죽었다. 그것도 처참하게  총을 맞고 목숨을 잃었다.

     

    명천의 고향은 지리산 기슭이다. 아버지는 사회주의자였다.

    그는 1950년 9월 북한군이 후퇴하자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되었다.

    그때 명천의 나이 겨우 한 살이었다.

    3년 후 어느 날 밤이었다. 명천인 잠을 자다가 가슴이 답답하여 잠깐 잠을 깼다.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그를 꼭 껴안고 있었다. 그는 명천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비비댔다.

     감촉이 꺼칠꺼칠했다. 무성한 수염 때문이었다. 명천인 깜짝 놀랐다.

    자기를 안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분명 아니었다. 명천인 엄마를 몇 번 부르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명천인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걸레쪽 같은 누더기 옷을 걸치고 있었다.

    턱과 볼에는 기다란 수염이 무성했다. 어머닌 명천이더러 그가 먼데 사는 아저씨라고 했다.

     그는 명천일 무릎에 앉혀 놓고 이것저것 말을 시켰다. 또, 자꾸 머리를 쓰다듬고 꼬옥 껴안아

    주곤 했다.

    아침밥을 먹은 뒤 그는 다락으로 올라갔다.

    명천인 그가 왜 비좁고 컴컴한 다락에 숨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날, 명천인 방안 에만 있어야 했다. 어머니가 밖으로 못 나가게 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도 갑자기 아프다며 머리에 수건을 동여매고 누워 있었다.

    어머니는 명천에게 혹시 누가 오면 다락에 있는 아저씨 얘길 절대 하지 말라고 자꾸 다짐을

    주었다.

    아침나절이었다. 밖에서 갑자기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어머니는 질겁을 하며 명천일

    끌어안았다.

    "홍인규, 항복하라."

    총소리가 그치고 누군가 크게 외쳤다. 그 소리를 듣고 어머니는 부들부들 떨었다.

    "네가 숨어 있는 줄 알고 왔다. 나와서 항복하라."

    또 총소리가 들렸다.

    "빨리 나와라. 안 그러면 너희 집을 불태워 버리겠다."

    다락에 숨어 있던 아저씨가 방으로 내려왔다. 그의 손엔 총이 한 자루 들려 있었다.

    "나가 봐야겠소. 어차피 죽을 목숨, 싸우다 죽겠소."

    그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여보! 자수하세요."

    어머니가 명천일 내려놓고 그의 다리를 부여잡았다.

    "자수해도 결국 죽이고 말 게요."

    "명천이와 나는 어떻게 살라고요, 흐흑."

    어머니는 울음을 터뜨렸다. 사내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여보, 미안하오. 명천아, 내가 네 아버지다."

    사내는 어머니와 명천일 꼭 끌어안았다.

    "항복하라. 홍인규, 항복하라."

    사내들의 거센 외침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 왔다.

    "아버지."

    명천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그에게는 너무나 낯설고 그리운 낱말이었다.

    "여보, 명천아."

    아버지는 다시 한번 아내와 아들을 꼬옥 안았다가 놓았다.

    그리고 총을 집어든 다음 밖으로 뛰쳐나갔다. 밖에는 군복 입은 사내들이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뛰어나가자 사방에서 총알이 날아왔다.

    명천의 아버지는 열 걸음도 못 가서 총을 맞고 쓰러졌다.

    아버지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여보 !" 외치며 뛰어나갔다.

    군복 입은 사내들이 어머니를 향해 또 총을 쏘았다. 어머니는 아버니보다 조금 떨어져서 쓰러졌다.

    "엄마 !"

    명천이 어머니를 향해 달려갔다. 총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의 가슴에

    엎어져 울었다.

    "명천아, 명천아아."

    어머니는 명천일 부르며 숨을 거뒀다.

     

    고아가 된 명천인 고모 집에서 자랐다. 고모는 명천일 자기 자식처럼 위해 주었다.

    그런데 고모부는 명천일 박대했다. 그는 난폭하고 매정한 사람이었다.

    고모부는 걸핏하면 명천이더러 빨갱이 새끼라고 했다. 명천이 조금만 잘못해도 매를 댔다.

     손찌검도 예사로 했다. 고모는 명천이 때문에 숱한 눈물을 흘렸다.

    명천인 초등학교 3학년 때 백내장을 앓았다. 그는 병원 한번 못 가보고 눈이 멀었다.

    고모부는 눈까지 먼 명천일 더욱 미워했다.

    결국, 명천인 유일한 피붙이인 고모와 헤어져 장애인 복지 시설로 가야 했다.

    명천이 고모 집을 떠난 지 3년 후에 웬 스님이 명천일 찾아왔다. 지관이란 스님이었는데,

    그 스님이 후원하여 명천인 맹아 학교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 지관 스님은 자기가 아버지의 친구 되는 사람이라고 했다.

    명천인 그를 아버지의 친구로만 알았다.

    명천이와 벽운 선생이 처음 만난 곳은  지관 스님이 주지로 있던 문수사였다.

    맹아 학교를 졸업한 뒤, 명천인 지관 스님한테서 한문과 불경을 배웠다.

    그때, 벽운 선생은 일년에 두세 차례 문수사엘 들렀다. 지관 스님의 은사 스님이 벽운 선생의

    친구였다.

    명천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을 단 하루도 잊어 본 적이 없었다. 그들에게 총을 쏜 군복 입은

    사내들이 떠오르면 분노로 치가 떨렸다. 그들이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그런데 지관 스님으로부터 불법을 배우면서 증오심이 서서히 사라졌다.

    인간사가 모두 인과려니 생각하며 분노를 떨쳐내려 애썼다.

    지관 스님은 60이 못 돼서 입적했다. 열반에 들던 날, 그가 놀라운 사실을 밝혔다.

    숨이 끊어지기 전에, 지관 스님은 명천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명천아, 나는 오늘 간다. 업이 무거워 금세에는 도를 못이뤘다. 다음 세를 기약한다.

    너는 금세에 업을 다 벗고 성불하거라. 벽운 선생께서 앞으로 너를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실게다.

    또, 떠나기 전에 너한테 꼭 밝혀야 할 일이 있다.

    나는 네 아버지의 친구가 아니다.

     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던 날, 네 아버지를 잡으러 갔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때 나는 경찰이었다. 억울하게 비명횡사한 네 어머니와 너의 모습을 나는 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다. 그리고 너를 찾아 나섰다.

    명천아, 부디 속세의 원한을 떨치고 해탈의 기쁨을 누리거라."

    지관 스님은 이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명천인 큰 충격을 받았다.

    그토록 미워했던 사람들 중 하나가 지관 스님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그에게 지관 스님은 아버지나 마찬가지였다. 명천인 지관 스님을 생각하며

    가슴에 품은 원한을 없애려고 애썼다.

    지관 스님이 입적한 지 얼마 안 되어 벽운 선생이 그를 인도하기 시작했다.

    고모는 지관 스님보다 조금 뒤에 세상을 떴다.

    그녀는 죽기 전에 명천의 아버지를 누가 밀고했는지 알려 주었다. 밀고자는

    한동네에 살았던 김덕배라는 사람이라 했다.

    "김덕배란 놈이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게 만들었다.

    그놈은 면서기였는데 몹쓸 짓을 많이 했다. 명천아, 꿋꿋하게 살거라.

    장가를 가서 애들이라도 잘 길러라. 그놈보다 네가  잘살아야 한다.

    그놈 자손보다 네 자손이 더 잘되는 게 내 소원이다. 불구자라고 좌절해선 안 된다."

    고모의 말은 명천의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았던 분노와 증오심에 불을 질렀다.

    김덕배.

    그를 죽이고 싶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처절한 죽음이 생각날 때마다 그의 이름이 함께 떠올랐다.

    벽운 선생이 그 증오심과 분노를 다시 가라앉혀 주었다.

    격렬한 증오심은 사라졌으나 가슴속의 응어리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김덕배나 아버지, 어머니에게 총을 쏜 사내들을 만난다면 그 응어리가

    증오와 분노로 폭발할 것 같았다.

     

    벽운 선생은 이 한을 풀어 주기 위해 명천이한테 외공을 가르쳐 주었다.

    명천인 칼을 휘두르고, 공력으로 돌을 깨고, 공중에 날아오르면 가슴이 좀 후련해졌다.

    원수가 아니라, 그들을 향한 분노와 미움이의 뿌리를 향해 칼을 휘두르고 손발을 내뻗는 것이었다.

    그를 한스럽게 만드는 것은 부모의 비참한 죽음만이 아니었다.

    강한 자에게 짓밟히는 연약한 중생들의 고통이 가슴에 사무쳤다.

    부모형제가 없는 천애  고아로서, 앞을 못 보는 불구자로서 자신이 겪은 아픔 때문에

    동병상련의 정을 깊이깊이 느꼈다. 힘없는 중생들의 한이 곧 그의 한이었다.

    명천이가 기꺼이 벽운 선생을 좇아 수도인이 된 것도 연약한 중생들을 건져 주기 위해서였다.

    도를 이루어 그들을 돕고 싶었다. 자신의 한과 함께 그들의 한을 풀어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벽운 선생은 다른 어느 제자보다 명천이와 많은 얘길 나눴다.

     어려서 따뜻한 정을 많이 못 받은 명천의 가슴 깊은 데 자리한 외로움을 없애 주려는 뜻이었다.

    명천인 벽운 선생을 스스럼없이 대했다. 시시콜콜한 신변 얘기도 잘했고,

    이것저것 여쭤 보는 것도 많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자상한 아버지와 활달한 아들 사이 같았다.

    벽운 선생과 함께 있으면 명천의 마음은 한없이 평화로워졌다.

    그토록 증오했던 사람들도 가슴을 활짝 열고 품어 안을 수 있었다.

    벽운 선생은 늘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라고 당부했다.

    "명천아, 땀을 뺐으니 폭포에 가서 목욕을 하거라. 나와 함께 가자."

    백령자를 초막에 남겨 두고 명천이와 벽운 선생은 계곡의 폭포로 갔다.

    높이가 두세 길쯤 되는 폭폭였다. 물줄기가 시원하게 쏟아져 내렸다.

    폭포 밑에는 깊은 못이 있었다. 깊이가 한 길쯤 되었다.

    물 떨어지는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렸다. 물이 바위에 부딪쳐 분수처럼 치솟았다.

    폭포 주위엔 잠자리와  나비들이 떼지어 날아다녔다. 명천이 옷을 걸친 채 물 속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명천아, 못에 들어가 살갗으로 숨을 쉬어 보거라. 들어가기전에 마음과 정신을 잘 가다듬어라.

     네 몸도 물 떨어지는 소리도 모두 잊거라."

    벽운 선생이 폭포 옆 바위에 걸터앉아 말했다.  명천인 천천히 못 가운데로 들어갔다.

    물이 가슴께까지 닿는 곳에 멈춰 서서 합장을 했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은 뒤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의 몸이 완전히 물 속에 잠겼다.

    코로 공기가 드나들 수 없으니 피부가 숨을 쉬었다. 물에 섞여 있던 공기가 기공을 통해

    몸 안으로 들어왔다. 반시간쯤 지났다. 가슴이 좀 답답했다. 명천이 그제서야 물밖으로 나왔다.

    밖에 나오자 시원한 공기와 함께 우주의 진기가 몸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마치 세찬 바람이

    살가죽을 뚫고 불어오는 것 같았다. 몸 안과 몸 밖의 경계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온 우주의 진기는 단전에 모였다가 온몸 구석구석으로 돌아다녔다.

    이 엄청난 진기에 밀려 몸 안에 조금 남아 있던 탁기가 밖으로 씻겨 나갔다.

    명천의 몸은 진기로 가득 채워졌다.   

  • 명상의 시작과 끝, 믿음

    이미지 : 픽사베이

    명상은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에 따라 효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은 믿음입니다.

     

    현대인들에게 명상의 목적은 다양합니다.

    가장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누구인지 아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어디에서 사는 누구가 아닌 진짜 ‘나’ 말입니다.

    물론 명상을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습니다. 믿음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불교에서는 우리 안에 불성이, 부처의 씨앗이 있다고 하지요.

    이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존재입니다.

    반야심경의 구절처럼 불생불멸, 부증불감, 불구 부정한 존재이지요.

    요가에서는 이를 진아라고 합니다.

    선도에서는 참나, 하늘사람, 진인, 금선 등으로 불렸구요.

    제가 아는 목사님 말씀으로는 기독교에서도 우리 안에 우리의 참모습이 있는데 이를 그리스도라 부른다고 합니다.

     

    종교나 수행 문파는 다르지만 우리 안에 ‘진짜 나’가 있다는 가르침은 똑같습니다.

    그리고 많은 성자들과 성현들이 이를 체험하고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불교에서는 불상을 금빛으로 단장합니다.

    금이 귀해서가 아니라 우리 안의 ‘참나’가 금빛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성화에도 성인들 주변에 황금빛 오라가 보입니다.

    요가에서는 이를 ‘황금의 몸’이라고 부릅니다.

     

    명상은 마음 근육을 단련시키는 훈련이라고 합니다.

    그 시작은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지구를 다녀간 성인들이 설마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셨겠습니까?

    매일 자고 일어나 거울을 보면서, 아니면 틈날 때마다 마음속으로 말씀해주세요.

     

    내 안에 ‘참나’가 있다. 나는 오늘 ‘참나’로 살 것이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있다. 나는 지금부터 그리스도의 삶을 살 것이다.

    내 안에 부처가 있다. 내가 부처다. 나는 오늘부터 부처로 살 것이다.

     

    이런 믿음으로 살 때 우리는 거듭나게 됩니다.

     

    명상의 시작은 이런 확고한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믿음이 확고하면 굳이 명상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믿음에 따라 그저 살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