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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아공 인권운동의 상징, 투투 대주교 별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권 운동의 상징으로 추앙받던 투투 대주교가 타계했습니다.

     

    26일(현재시간),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 재단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의 철폐에 앞장섰던 데스몬드 투투 성공회 대주교가 케이프타운의 요양소에서 향년 90세를 일기로 선종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분리, 격리'를 뜻하는 아파르트헤이트는 냉전시대부터 1990년대까지 있었던 백인과 유색인종에 대한 신분제도였습니다. 이 정책으로 인해 유색인종은 대도시 중심가에 사는 것 자체가 불법이었으며, 거주지를 옮기는 것도,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갖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주권마저 박탈당한 것과 마찬가지였으며, 각종 공공시설도 제대로 이용할 수 없었고, 유색인종과 백인 간의 결혼 또한 금지되었습니다. 백인들 또한 언론, 문화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이유로 검열과 통제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투투 대주교는 이런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를 없애기 위해 일생을 바쳤습니다. 1958년 세인트피터스 신학대에 입학해 성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1975년 44세의 나이로 요하네스버그 대성당의 주임 사제에 올랐습니다. 이는 당시에 유색인종으로써 가장 높은 성직에 오른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흑인 빈민가에 살면서 흑인들을 위해 살았고, 그런 그의 모습을 본 백인들 중 일부가 그를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운동은 단순히 유색인종 집회에 참석해 철폐운동을 독려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백인들도 인종차별의 종식에 동참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인종차별정책이 흑인 뿐만 아니라 백인에게도 인간성에 큰 손상을 입히고, 각종 검열을 정당화하는 등 다양한 악영향을 준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당시 대통령이었던 존 보스터에게 <교인이 다른 교인에게>라는 공개서한을 보내, 아파르트헤이트의 문제점과 그로 인해 벌어질 유혈사태를 경고했으며, 일반 백인들에게 유색인종의 열악한 삶을 알리고 그들 또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방문해 남아공의 실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등, 전세계의 도움을 받기 위해 수없이 노력했습니다.

     

    당시 백인 정권은 그의 활동을 보고 그를 요주의 인물 리스트에 올렸습니다. 1979년에는 그의 여권을 압수했으며, 다음 해에는 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그를 체포하고 벌금형을 선고하기도 했습니다. 1981년 그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방문해 인종차별 철폐에 대해 논의하자, 정부는 다시 그의 여권을 압수했습니다. 투투 대주교의 요청으로 서방국가가 약간의 경제제재를 취하자, 그에 대해 잘 모르던 백인들, 그리고 그를 따르던 흑인들도 그를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기회로 삼아 정부는 그가 소속된 남아프리카 교회협의회를 표적조사해 투투 대주교를 압박했습니다.

     

    그러던 1984년 투투 대주교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면서 투투 대주교의 노력은 빛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노벨 위원회는 투투 대주교를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인간의 존엄과 우애,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남아프리카의 모든 개인과 단체에게 보내는 세계의 격려"라고 밝히면서 그의 운동을 지지했습니다. 또한,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비롯해 수많은 유명인사들로부터 축하가 쇄도했습니다. 그의 노벨 평화상 수상은 남아공의 흑인들에게 힘을 실어줬으며, 나아가 아파르트헤이트가 세계적인 문제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1986년, 그가 케이프타운의 대주교로 선출되면서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운동은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습니다. 1988년 유엔(UN)에서 그는 "아파르트헤이트는 나치즘 만큼 부도덕하고 사악한 것"이라고 하면서 아파르트헤이트의 부당함을 세계에 더더욱 알리고자 했습니다. 1994년 넬슨 만델라가 첫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되자, 투투 대주교는 남아공 국가와 국민 통합을 위한 '무지개 국가(Rainbow Nation)' 운동을 제안했으며, 1995년에는 아파르트헤이트로 인해 벌어졌던 인권침해를 조사히기 위한 '진실화해위원회(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약칭 TRC)'의 위원장으로 임명됐습니다.

     

    투투 대주교는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이후에도 다양한 차별을 언급하며 인권운동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는 새롭게 등장한 흑인 엘리트들에게 너무 큰 권력과 부가 집중됐다고 말하면서, 대다수 민중의 빈곤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그는 교단의 동성애 차별에 강하게 반대했으며, 1996년 남아공 헌법의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 금지 명문화에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등 동성애와 관련된 차별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러던 그는 1997년 전립선암 등으로 투병생활을 이어갔고, 지난 2019년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한 자선재단 행사에 참석해 해리 영국 왕손 가족을 만난 후 공개 석상에서 모습을 감췄습니다.

     

    투투 대주교의 선종 소식에 세계의 수많은 인사들이 애도를 표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주교의 선종 소식을 듣고 가슴이 무너졌다면서, "그의 유산은 국경을 초월하고 시대를 초월해 울려퍼질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또한 "투투 대주교는 많은 이들에게 멘토이자 친구이자 도덕적 나침반이었다"라면서, 그에 대한 그리움과 애도를 표했습니다. 마틴 루터 킹의 딸 버나스 킹 또한 그의 선종 소식을 듣고 "전 지구적인 현자이자, 인권 지도자이자, 이 땅의 강력한 순례자였던 이의 죽음에 슬픔에 잠겼다"라며 애도를 표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또한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과거사의 진실을 통해 용서와 화해를 이루고자 했던 그의 삶은 인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하면서, 그가 하느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길 기도한다고 밝혔습니다.

  • 교황 유리천장 또 깨다, 바티칸 행정 책임자에 첫 여성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시국 고위직에 사상 처음으로 여성을 임명했습니다. 

     

    교황청은 지난 5일 바티칸 행정부 사무총장에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 라파엘라 테트리니 수녀가 임명됐다고 밝혔습니다. 

     

    바티칸 조직 서열상 2인자에 해당하는 행정부 사무부총장은 명목상 수장인 행정원장을 보좌해 사실상 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중요한 자리입니다. 

     

    이 때문에 주교가 보직을 맡았는데 수녀가 임명된 것은 파격적인 인사로 여겨집니다.

     

    이탈리아 로마 태생인 페트리니 수녀는 로마 소재 루이스대학과 교황청립 성토마스 아퀴나스 대학에서 공부했고, 2005년부터 해외 선교 업무를 주관하는 인류복음화성에서 일했습니다.

     

    교황은 가톨릭교회 내 여성의 지위 향상에 관심을 기울여왔고 요직에 여성들을 등용해왔습니다. 

     

    대표적인 인사가 지난 2월 가톨릭 교회의 주요 현안을 논의하는 시노드(Synod:세계주교대의원회의) 사무국장에 나탈리 베라크 수녀를 임명한 것이었습니다. 

     

    현재 교황청 외무차관과 부대변인, 바티칸 박물관장도 여성이 맡고 있습니다. 

  • 박용만 전 대한상의 회장의 특별한 십자가 전시회

    비무장지대 철조망을 녹여서 만든 십자가 전시회가 열립니다.

     

    박용만 전 대한상의 회장은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무장지대(DMZ) 철조망을 녹여 만든 ‘평화의 십자가’ 전시회를 연다고 적었습니다.

     

    ‘평화의 십자가’는 문재인 대통령이 바티칸 교황청을 방문하는 오는 29일부터 11월7일까지 로마 산티냐시오 성당에서 전시됩니다. 전시회 제목은 ‘철조망, 평화가 되다’입니다.

     

    박 전 회장은 “남북 관련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늘 마음속에 묵직한 돌 같은 생각이 있었다”라며 ‘평화의 십자가’를 제작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평화의 십자가’는 모두 136개가 제작됐습니다.

     

    박 전 회장은 “십자가의 숫자도 의미가 있어야 했다”며 “다른 두 나라로 살아온 남과 북의 분단 68년을 합해, 136개의 십자가를 만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십자가는 서울대 조각과 권대훈 교수가 제작을 맡았습니다.

     

    그는 십자가 제작 과정을 담은 11분짜리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는 사실도 전했습니다. 영상 프로젝트 기획과 총감독, 영상 내레이션도 직접 했습니다.

     

    다음은 박 전 회장이 페이스북에 쓴 글입니다.

     

    남북 관련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늘 마음속에 묵직한 돌 같은 생각이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다른 나라 다른 체제로 이미 68년을 살아왔는데 이제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평화 속에 지내면 왜 안 되는지 안타까웠다. 서로 총을 겨누고 긴장 속에 살아가는 게 과연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평화 속의 이웃이 된들 무슨 문제가 있을까 싶었다.

     

    그 생각에서 시작해 동해안 최북단과 김포 DMZ 등 군 경계철책 철거사업으로 확보된 폐철조망 일부를 평화의 십자가로 부활시킴으로써 갈등을 넘어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모으고자 했다. 프로젝트에 관한 생각이 구체화되면서, 십자가의 숫자도 의미가 있어야 했다. 다른 두 나라로 살아온 남과 북의 분단 68년을 합해, 136개의 십자가를 만들었다. 그 과정과 마음을 아래 영상에 담았다.

     

    서울대 조각과 권대훈 교수가 작품 제작을 맡았고 프로젝트 기획과 총감독, 내레이션을 내가 했다. 영상의 음악은 정재일의 음악을 썼고 촬영 및 영상 제작은 허브넷에서 맡았다. 이 십자가들과 영상은 앞으로 두 주간 로마의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성당’에서 일반에게 전시된다.

     

    이 십자가로부터 뿌리가 내려 이 땅에 평화가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도하며 이 영상이 평화의 마음을 일깨우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노동과 땀, 우리 사회의 소외와 그늘에 이어 세 번째로 만든 이 프로젝트의 키워드는 ‘갈등과 대립’ 그리고 동전의 양면처럼 그 이면에 있는 ‘평화’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이 영상을 보면서, 평화를 생각한다면, 그리고 기도한다면, 우리 사회에 선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기획자로서 더없이 행복하겠다.

  • 교황, 가톨릭 교리에 ‘생태에 대한 죄악’ 포함 검토

    프란치스코 교황 [이미지 : 바티칸 뉴스 유튜브 캡쳐]

    프란치스코 교황이 환경을 파괴하거나 보호하지 않는 행위를 ‘생태에 대한 죄악’으로 가톨릭 교리에 담는 것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바티칸뉴스, 라이프사이트뉴스 등에 따르면 교황은 15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국제형법학회(AIDP) 총회에서 “우리 모두의 집인 생태계가 위기에 처해있기 때문에 생태계의 보호에 반하는 행동을 ‘생태에 대한 죄악’으로 규정해 가톨릭교회의 교리에 도입해야 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지난달 열린 아마존 주교 시노드의 제안에 따른 것입니다. 시노드란 교회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모여 토론하고 결정하는 회의를 뜻합니다.

     

    아마존 시노드에서 발표한 문서에는 ‘생태에 대한 죄악’을 하느님과 미래 세대에 대한 죄로 정의했다고 교황은 전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연설에서 공기, 토양, 수질 등의 대규모 오염을 초래하거나 동식물 군의 대규모 파괴 등 생태적 재앙을 일으키거나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는 행동은 반드시 처벌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교황은 이날 행사에 참석한 형법 전문가들에게 전쟁이나 오염을 통한 의도적인 생태계 파괴 행위를 ‘평화에 반하는 범죄’로 규정하고 형법 전문가들에게 지구를 보호할 수 있는 적절한 법적 보호 방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 다큐 영화 21일 개봉

    프란치스코 교황을 다룬 다큐 영화가 11월 21인 오늘 개봉됐습니다.

     

    영화계의 거장 빔 벤더스가 메가폰을 잡고 로마 교황청이 제작에 참여한 ‘프란치스코 교황 : 맨 오브 히스 워드’(Pope Francis: A Man of His Word)가 그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심층 인터뷰를 뼈대로 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됐습니다. 교황이 세계를 다니며 행한 빈곤 퇴치와 평화, 환경문제 등은 물론 우리 삶의 방향에 대한 다양한 질문에 답하는 장면을 담은 96분짜리 로드 무비입니다.

     

    빔 벤더스 감독은 성 프란치스코를 통해 교황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합니다.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쓴 교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감히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선택하는 용기를 낸 교황이 없어서 프란치스코라는 의미를 관객에게 알려주고 싶었다"라고 영화 제작 동기를 밝혔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돌아봤을 때 성 프란치스코는 정말 위대한 개혁가이자 혁명가였습니다. 지금까지 감히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선택하는 용기를 낸 교황이 없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를 어떤 식으로든 영화에 등장시켜서 ‘프란치스코’란 이름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를 관객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빔 벤더스 감독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영화에 교황의 영적 멘토인 성 프란치스코를 다룬 영상을 삽입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입니다.

    이를 위해 빔 벤더스 감독은 성 프란치스코의 고향인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2주일 동안 촬영을 했습니다. 1920년대에 생산된 데브리 카메라를 사용해 수동으로 찍어 마치 과거에서 보내온 것 같은 영상을 완성했습니다.

     

    빔 벤더스 감독은 이 영화를 “교황을 다룬 영화가 아닌 교황과 함께 만든 영화”라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교황청은 공식 기록보관소의 아카이브 영상을 제공함은 물론 바티칸의 내밀한 공간까지 영상에 담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빔 벤더스 감독은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파리 텍사스’ 등으로 프랑스 칸, 독일 베를린, 이탈리아 베니스 등 세계 3대 영화제를 석권한 명감독입니다.

     

    쿠바 음악과 관련한 다큐멘터리 ‘브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도 그가 만든 영화입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 성소수자 인권보호 앞장선 예수회 사제 만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임스 마틴 예수회 신부와 만남을 가졌다. [이미지 : 제임스 마틴 예수회 신부 트위터]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소수자 인권 보호에 앞장서 온 예수회 사제를 만났습니다.

     

    미국 예수회 매체인 <아메리카>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달 30일 성소수자 인권 보호에 앞장서 온 제임스 마틴 예수회 신부를 만났습니다.

     

    마틴 신부는 자신의 트위터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30분 동안 배석자 없이 만남을 가졌고 그 자리에서 LGBT 가톨릭 신자와 전 세계 LGBT들의 희망, 슬픔, 불안 등을 전했다"라며 “이렇게 훌륭한 목자와 만나게 되어 너무 기뻤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만남을 “인생 최고의 순간 가운데 하나”라며 “교황님으로부터 격려와 위로와 영감을 받았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마틴 신부는 <아메리카>에 이번 알현에 대해 “교황께서 LGBT를 살피고 계시다는 하나의 징표로 봤다"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만남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최근 로마에서 열린 교황청 홍보처 행사에서 만난 마틴 신부를 바티칸에 정식으로 초대하면서 이뤄졌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마틴 신부를 만난 것을 두고 가톨릭교회가 성소수자를 적극적으로 포용해야 한다는 뜻을 담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소수자에 대해 줄곧 “차별 대신 존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교회가 목회자의 마음으로 그들과 함께 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2016년 6월 아르메니아 방문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기독교인들은 이들에게 반드시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즉위 뒤 “게이인 자가 하느님을 찾는 데 내가 누구를 정죄할 수 있겠는가?”라고 발언해 성소수자와 관련 단체로부터 찬사를 받았습니다.

     

    <아메리카>의 대기자이기도 한 제임스 마틴은 가톨릭교회가 성소수자들을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해 보수적인 미국 가톨릭 성직자와 신자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마틴 신부는 그런 비난에 개의치 않고 성소수자 사목을 도맡아 그들을 돕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성소수자와 가톨릭과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은 책 <가교를 만들자(Building a Bridge: How the Catholic Church and the LGBT Community Can Enter into a Relationship of Respect, Compassion, and Sensitivity>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 노벨 평화상 후보에 추천된 브라질 원주민 족장

    아마존 보호에 헌신한 원주민 족장이 2020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됐습니다.

     

    로이터통신은 14일 브라질 인류학자 및 환경운동가들이 속한 ‘다르시 히베이루’ 재단이 브라질 원주민 카야포족 지도자 라오니 메투크티레 족장(89)을 노벨위원회에 평화상 후보로 공식 추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라오니 족장은 1980년대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가수 스팅과 세계를 돌며 자연보호를 호소해 큰 관심을 받았던 분입니다. 지금은 사라진 부족의 전통을 지키고자 아랫입술에 나무 접시를 끼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다르시 히베이루 재단은 라오니 족장이 아마존의 자연과 원주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에서 살아 있는 상징”이라고 추천 이유를 밝혔습니다. 

     

    라오니 족장은 고령에도 올해 다시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산불 발생이 크게 늘어 열대우림 훼손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 아마존의 환경 파괴 문제를 논의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아마존에서는 2010년 이래 가장 많은 산불이 났습니다.  8월에만 축구장 420만 개에 달하는 29,444km2의 삼림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다음은 라오니 족장이 서구 미디어와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원주민들만이 살고 있을 때는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질병도 거의 없었습니다. 

     

    백인들이 오면서 많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질병이 돌아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댐 건설과 같은 자연 파괴는 원주민의 삶을 파괴합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홍수로 강 주변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저는 아직 외부 세계와 접촉하지 않은 원주민들의 삶이 걱정됩니다. 우리는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을 대변해줄 사람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 맨홀로 뛰어든 추기경 “절박한 행동”

    콘라트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이 현지 시각으로 11일 홈리스 어린이들을 위해 맨홀 속으로 들어가 계량기 봉인을 풀고 전기를 공급했다. [이미지 : Maskacjusz 유튜브]

    바티칸 교황청에서 일하는 추기경이 맨홀에 뛰어들었습니다.

     

    콘라트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은 현지 시각으로 11일 이탈리아 로마 중심가에 자리한 한 걸물 부근의 맨홀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성직자의 힘일까요? 추기경이 맨홀로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밤이면 암흑 속에 있던 근처의 한 건물이 빛을 뿜기 시작했습니다. 전기가 들어온 것이지요.

     

    이 건물에는 어린이 100여 명을 비롯해 집 없는 홈리스 450여 명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지난 6일부터 전기 공급이 끊겨 물도 나오지 않게 됐다고 합니다.

     

    이들을 돌보는 한 수녀가 추기경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이날 추기경이 행동에 나선 것입니다.

     

    추기경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술이 취해 한 것이 아니라 절박한 행동”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건물은 홈리스의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을 벌이는 스핀 타임(Spin Tome)의 활동가들이 2013년부터 점거하고 있는 곳입니다. 지금까지 전기료가 약 30만 유료(약 4억 원)이 밀려 있다고 합니다.

     

    추기경이 계량기 봉인을 풀고 전기를 공급했다는 얘기를 듣고 관련 업체 직원들이 다음날 출동했지만 주민들의 반발과 추기경이 남긴 메모를 보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한 2013년 교황청의 자선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총괄하는 자리에 올랐고 지난해 추기경이 됐습니다.

     

    그는 세계 각지의 난민들을 직접 만나며 구호 방법을 찾는 추기경으로 이름나 있습니다. 추기경의 고향인 폴란드의 한 언론은 그를 “교황의 로빈 후드”라고 칭송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의 ‘행동’에 대해 이탈리아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는 밀린 전기료를 추기경이 대신 내라고 요구했습니다. 내무부 장관이기도 한 그는 로마 시내 난민촌의 철거를 주도해 온 인물입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 남수단 지도자 발에 입맞춤

    프란치스코 교황은 남수단의 지도자들을 교황청에 초청해 평화를 유지하고 나아가기를 촉구했다. [이미지는 본문과 관련이 없습니다. 이미지 : 픽사베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랜 내전으로 참상을 빚은 남수단의 지도자들의 구두에 입을 맞췄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1일 교황청의 초청으로 바티칸을 찾은 남수단 지도자들에게 평화를 향해 앞으로 나아갈 것을 간곡히 호소했습니다.

     

    교황은 이날 남수단의 정부와 반군 지도자를 초청해 진행한 피정 행사를 마무리하는 연설에서 “평화를 계속 유지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형제로서 간청한다"라며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지만 이겨내고 문제를 해결해 달라"라고 간청했습니다.

     

    교황은 “여러분 사이의 의견 충돌은 사무실 안에만 가둬두고 사람들 앞에서는 손을 잡으라"라며 “그러면 여러분들은 남수단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교황은 말을 마친 뒤 남수단 지도자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살바 키르 남수단 대통령과 야권 지도자인 리크 마차르 전 부통령 등 5명의 지도자의 발에 차례로 입을 맞췄습니다.

     

    평화를 향한 간절한 마음을 담은 교황의 이런 파격적 행동에 남수단 지도자들은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IMAGE|390|center|프란치스코 교황이 남수단 지도자들의 발에 차례로 입맞춤하고 있다.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은 남수단의 지도자들을 교황청에 초청해 평화를 유지하고 나아가기를 촉구했다. [이미지 : 바티칸 미디어] ]]

     

    인구 대부분이 기독교를 믿는 남수단은 2011년 이슬람 국가인 수단에서 독립한 나라로 고 이태석 신부의 봉사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곳입니다.

     

    하지만 남수단은 2013년 말 키르 대통령 지지자와 마차르 전 부통령을 추종하는 세력 사이에 교전이 시작돼 5년 동안 약 40만 명이 숨졌습니다.

     

    다행히 키르 대통령과 마차르 전 부통령은 지난해 9월 평화협정에 서명하고 다음 달에 연립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해 평화로 가는 길에 한걸음 다가섰습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어린이를 대하는 법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함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11월 28일 로마 바티칸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일반 알현에서 교황이 앉아 있는 단상에 6살짜리 어린이가 뛰어올라와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줬습니다. 

     

    소년은 사제들이 교리 문답서를 낭독할 때 단상에 올라 교황 옆에 선 근위병의 창과 손을 잡아당기고 교황이 앉아 있는 의자 주위를 돌아다녔습니다. 

     

    잠시 후 아이의 어머니가 단상에 올라와 교황에게 아이가 언어장애로 말을 못 한다고 설명하고 데리고 내려가려 하자 교황은 아이가 놀도록 그냥 내버려 두라고 만류했습니다. 

     

    어머니는 자리로 돌아갔고 그 어린이는 한동안 무대를 놀이터 삼아 마음 편히 뛰놀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참여한 행사에서 단상에 ‘난입’한 어린이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13년 10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설교하는 동안에 한 꼬마가 단상에 올라 교황의 의자에 앉았습니다. 교황은 설교를 마친 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듬해인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용 무개차를 타고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을 지나다 페루자에서 단체 여행 온 초등학생을 만났습니다. 

     

    학생들이 교황에게 다가가 학교 티셔츠를 선물로 주자 교황은 “나와 함께 광장을 돌아보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라고 묻고 두 아이를 차에 태워 광장을 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