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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벨상 수상자를 만든 강의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Alanmak (https://en.wikipedia.org/wiki/File:CNYang.jpg), CC BY-SA 3.0 라이센스

    모든 존재가 위대합니다. 모든 순간이 귀하고요. 

     

    어느 순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걸 정성을 기울인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들인 정성이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떤 꽃을 피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미국의 천체 물리학자 첸드리스카 박사가 그랬습니다. 위스콘신 주의 천체연구소에서 일하던 첸드리스카 박사는 어느 날 시카고 대학교에서 겨울 방학 동안에 강의를 요청받았습니다. 그러겠다고 했지요. 

     

    그런데 얼마 뒤 대학으로부터 강의를 취소해야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수강 신청한 학생이 두 명밖에 없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첸드리스카 박사는 학생 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다만 수강 신청을 한 학생들에 대해 물었습니다. 학교 쪽에서는 두 학생이 매우 열정적이고 향학열이 불타는 젊은이들이라고 했습니다. 

     

    첸드리스카 박사는 그 말을 듣고 강의를 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시카고의 겨울은 매우 춥습니다. 눈보라가 치는 한겨울 날씨에도 첸드리스카 박사는 연구소에서 두 시간이나 걸리는 길을 오가며 한 번도 빠트리지 않고 열정적인 강의를 했습니다.  

     

    그로부터 십 년 뒤 첸드리스카 박사의 강의를 들었던 두 학생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합니다. 

     

    첸드리스카 박사에게 강의를 들었던 두 학생이 놀랍게도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한 사람은 첸닝 프랭클린 양 박사이고 다른 한 사람은 충다오 리 박사였습니다. 두 사람은 중국계 미국 과학자들이지요. 

     

    두 사람은 노벨상 수상과 관련해 10년 전 두 사람을 앞에 두고 강의에 열과 성의를 다한 첸드리스카 박사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하는 일 가운데 하찮은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일이 어떤 형태로든 세상에 영향을 미칩니다.

  • '스며듦의 삶, 스며듦의 교육'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변화는 더딥니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 법이죠. 

    그것이 근원적이고 긍정적인 것이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자극과 충격이 당장은 그럴듯해 보여도 그건 잠시뿐입니다. 

     

    하여 우리는 

    우리 이웃을, 우리 아이들을 오랫동안 지켜보아야 합니다. 

    '스며듦'은 그래서 기다림입니다. 

    가장 자비롭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표정으로, 말씨로, 눈빛으로, 손길로, 숨결로 

    오래도록 우리의 그들을 바라보며 기다려야 합니다. 

     

    달라이 라마의 말씀대로 

    '내 존재의 가장자리를 부드럽게' 하여 

    우리의 평화와 사랑이, 너그러움과 충만함이 

    서서히 스며들도록 

    오래 기다려야 할 일입니다. 

     

    긴 호흡으로, 먼 시선으로……..

  • ‘괜찮아’는 미래의 언어입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괜찮아’는 미래의 언어입니다.

     

    ‘왜 그랬니?’

    ‘이거 어떻게 할 거야?’가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추궁과 질책을 담고 있는

    과거의 언어라면

     

    ‘괜찮아’는

    그 존재에 대한 신뢰와 기대의 언어이며,

    기다림의 언어입니다.

     

    제가 한 잘못된 일에 잔뜩 주눅 들어있는 아이에게, 자녀에게, 친구에게

    가장 다정한 말투로, 표정으로, 눈길로 말해줍니다.


    “얘야, 괜찮아.”

    “야, 괜찮아, 임마!”

    “아빠, 괜찮아요.”

    “여보, 괜찮아.”

     

    그리고

     

    눈을 맞춥니다.

    꼬옥 안아줍니다.

    따뜻하게 손을 잡아줍니다.

                     .

                     .

                     .

    자주 쓸수록 참 괜찮은 말

    ‘괜 ․ 찮 ․ 아’

  • 아이들의 좋은 심성을 기르는 법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미국의 작가이자 육아상담가로 활동했던 도로시 로 놀테는 시와 글, 강연 등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자녀를 기르는 데 영감을 줬습니다.

     

    다음에 소개하는 ‘아이들은 생활 속에서 배운다(Children learn what they live)’는 시는 특히 유명합니다.

     

     

     

    If children live with criticism, they learn to condemn.

    야단맞으며 자라는 아이는 비난하는 것을 배웁니다.

     

    If children live with hostility, they learn to fight.

    적대적인 분위기에서 자라는 아이는 싸움을 배웁니다.

     

    If children live with fear, they learn to be apprehensive.

    두려움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불안감을 갖게 됩니다.

     

    If children live with pity, they learn to feel sorry for themselves.

    동정을 받으며 자라는 아이들은 자기 연민을 갖게 됩니다.

     

    If children live with ridicule, they learn to feel shy.

    놀림을 받으며 자라는 아이는 수치심을 갖게 됩니다.

     

    If children live with jealousy, they learn to feel envy.

    질투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시기심을 갖게 됩니다.

     

    If children live with shame, they learn to feel guilty.

    부끄러움을 느끼며 자라는 아이들은 죄책감을 갖게 됩니다.

     

     

     

    If children live with encouragement, they learn confidence.

    격려를 받으며 자라는 아이들은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If children live with tolerance, they learn patience.

    관대함 속에서 자라는 아이는 인내심을 갖게 됩니다.

     

    If children live with praise, they learn appreciation.

    칭찬을 받으며 자라는 아이는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If children live with acceptance, they learn to love.

    포용하는 분위기에서 자라는 아이는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If children live with approval, they learn to like themselves.

    무엇이든 허용되는 분위기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If children live with recognition, they learn it is good to have a goal.

    인정받으면서 자라는 아이들은 목표를 갖는 것이 좋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If children live with sharing, they learn generosity.

    나눔을 보며 자라는 아이들은 관대함을 배우게 됩니다.

     

    If children live with honesty, they learn truthfulness.

    정직함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은 진실을 배우게 됩니다.

     

    If children live with fairness, they learn justice.

    공정함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은 정의를 배우게 됩니다.

     

    If children live with kindness and consideration, they learn respect.

    친절과 배려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다른 이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If children live with security, they learn to have faith in themselves and in those about them.

    안정감을 느끼며 자라는 아이들은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믿음을 배우게 됩니다.

     

    If children live with friendliness, they learn the world is a nice place in which to live.

    친밀한 분위기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이 세상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 실리콘벨리의 컴퓨터 없는 학교

    이미지 출처 : Greenwood School 홈페이지

    미국 실리콘밸리에는 컴퓨터와 아이패드가 없는 학교가 있습니다. 그린우드 학교가 그곳입니다. 

     

    이 학교 학부모 가운데는 구글이나 애플과 같은 세계 최고의 IT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부모들이 컴퓨터와 IT 관련 도구가 차단된 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셈이지요. 

     

    그린우드의 교육 목표는 여느 학교와 조금 다릅니다. 

     

    “상상력, 자연에 대한 사랑, 탐구심을 길러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사고와 조화로운 태도로 세상에 기여하는 사람을 기르는 것”이 이 학교의 교육 목표입니다. 

     

    이 학교가 추구하는 가치도 다른 학교와 많이 다릅니다. 물론 배우는 즐거움과 성취는 당연히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학교의 특별함은 다양한 영적, 문화적 전통의 경험, 다른 이를 존중하고 공감, 자연과 지구에 대한 경외심, 한교 안팎의 공동체에 대한 봉사 등에 높은 가치를 두는 데 있습니다. 

     

    아이들을 지적, 감성적, 사회적, 육체적, 영적으로 성장시키는 데 모든 교과가 맞춰져 있습니다.  

     

    그린우드는 아이들에게 특히 부, 명성, 지위와 같은 가치가 아니라 연결, 공감, 정직, 봉사 등을 강조합니다.  

     

    그린우드 학교는 특히 아이들이 컴퓨터, 아이패드, 휴대폰 등에 접근하는 것을 매우 조심스럽게 생각합니다. 

     

    너무 일찍 컴퓨터 기기를 접하는 것이 아이들의 성장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린우드 교사들은 태블릿이나 휴대폰을 갖고 노는 것보다 보디페인팅이나 그림 그리기, 무용 등과 같은 예술 활동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배우는 게 아이들의 성장에 훨씬 많은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린우드 학교에 가보면 아이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며, 수공예품을 만들고, 시와 소설을 쓰는 등의 활동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IT 기기의 사용을 무조건 막는 것은 아닙니다. 적절한 나이에 맞게 아이들이 그런 도구를 접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는 미국의 IT 산업을 이끌고 있는 많은 리더들의 생각과도 비슷합니다. 페이스북을 만든 마이크 저커버그도 자신의 딸에게는 13살까지 페이스북을 접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린우드 학교는 8학년제입니다. 우리로 치면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합쳐진 곳이지요. 

     

    이 학교는 발도르프 교육을 하는 학교입니다. 발도르프 교육이 어떤 것이냐고요? 

     

    청계자유발도르프학교의 홈페이지에는 발도르프 교육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919년 오스트리아 철학자이자 교육자인 루돌프 슈타이너에 의해 시작된 발도르프 학교 혹은 슈타이너 학교는 어린이들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조화롭게 발달하도록 돕는 것을 교육 이념으로 삼고 있으며, 이와 같은 교육 이념 위에 현재 전 세계 800여 개 학교가 설립 운영되고 있습니다. 

     

    발도르프 교육은 어린이들의 몸과 마음이 일정한 주기를 거쳐 성장함을 믿으며, 어린이들이 천성적으로 부여받은 모든 능력을 고르게 발달시킬 수 있도록 모든 감각들을 자극하는 총체적이고 예술적인 경험들을 어린이들에게 주려고 합니다.” 

     

    발도르프 교육은 성과도 좋습니다. 

     

    북미발도르프협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발도르프식 수업을 받은 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94%나 됩니다. 북미지역 전체 평균(65%)에 비해 30% 가까이 높습니다.

  • 티베트의 탁월한 자녀 교육법 3가지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나라마다 아이들을 올바로 키울 수 있는 훌륭한 교육 전통이 있습니다.

     

    그 전통은 출세를 목표로 하는 현대 교육과는 아주 다릅니다.

     

    티베트의 자녀교육법이 그렇다고 합니다. 대한 불교조계종 대원사 현장 스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전하고자 합니다. 

     

    티베트에서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기를 세 단계로 나눈다고 합니다. 7세까지가 1단계, 14세까지가 2단계, 21세까지가 3단계입니다.

     

    처음 7세까지는 암탉이 알을 품듯이 키우라고 합니다. 그저 사랑하고 보살피기만 하라는 것이지요. 

     

    아이는 이때 부모로부터 받은 조건 없는 사랑을 통해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자존감이 높아지는 게 아닐까 합니다. 

     

    다음으로 14세 까지는 원수처럼 키우라고 합니다. 선악을 구분할 줄 알고 다른 이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살아가도록 엄격히 교육한다는 것이지요. 

     

    마지막 단계인 21세까지는 친구처럼 키우라고 합니다. 

     

    부모와 자녀, 돌보고 의지하고, 주고받는 그런 사이가 아니라 동등한 인격체로서 서로를 존중하며 지낸다는 것이지요. 부모가 자녀를 독립적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다면 세상 어느 누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 “엄마, 친구가 하늘나라 갔대”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 코너에 12월10일에 실린 글입니다 필자의 허락을 받아 전재합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금요일 오후였다. 다른 것이라고는 늘 비가 오는 이곳 캐나다 밴쿠버의 겨울답지 않게 무척이나 화창하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모처럼 비가 갠 주말을 어떻게 즐길까 고민하며 아들을 맞으러 학교에 갔다. 학교 놀이터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 삼삼오오 모여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학부모들. 멀찍이 바라봤을 땐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때 학교 현관문을 나서는 아들과 눈이 마주쳤다. 활짝 웃으며 다가가는데 이상하게도 아이의 표정이 어두웠다. 평소 금요일이라면 주말에 놀 생각에 더 활짝 웃으며 나오던 아이가 아니었던가. 아들은 나를 보자마자 반쯤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진짜 슬픈 소식이었어. 진짜, 진짜, 진짜 슬픈 소식이야. 그 친구가 하늘 나라에 갔대."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느닷없는 비보

     

     

    그 친구라 함은, 지난 학년부터 아들과 한 반이었던, 9월에 시작된 새로운 학년에 첫 짝궁이었던 그 친구를 말하는 것이었다. 근무력증을 앓고 있어 휠체어에서 생활했고, 옆에는 장애학생 지원 선생님이 늘 함께 했지만, 아들의 그 친구는 학교생활에 대부분 참여했었다.

     

    통합교육이 원칙인 이곳 캐나다에서 아이들은 조금 더 몸이 불편한 학생들과 생활하는 것을 당연히 여겼고, 이 친구도 학급 활동에 늘 함께 했다. 지난해 그 친구의 생일 땐 반 전체에서 작은 축하파티도 열었었다. 반에서는 혼자 책을 읽기 힘든 이 친구에게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책을 읽어주곤 했는데 두어 달 전 아들은 자신이 책 읽어줄 차례라며 영어발음을 연습해 갔었다. 몇 주 전 자원봉사로 따라간 현장학습 때도 장애학생 지원 선생님과 함께 참가했던 아이였다.

     

    내게도 충격이었다. 순간 눈물이 쏟아졌고, 먹먹한 마음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평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마주친 선생님들의 눈빛에는 슬픔이 가득했고, 아들과 같은 반 친구들 중 몇몇도 눈가가 촉촉했다. 아이를 픽업하러 온 부모들 중 몇 명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마음이 조금 추스러지자, 아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들에게는 처음 겪는 상실. 그것도 2년 동안 같은 반을 했던 친구가 10살의 나이에 하늘나라에 간 것을 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어 아들에게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담임선생님이 건넨 종이

     

     

    아들이 비보를 접한 것은 등교하자마자였다. 교실에 들어온 담임선생님은 침통한 표정으로 아이들에게 소식을 전했고, 몇몇 친구들은 곧바로 눈물을 터뜨렸다고 한다. 이어 담임선생님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종이를 꺼내며 아이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여기에 종이를 둘게요. 수업 도중에라도 마음이 힘들고 슬픈 기분이 들면 언제든지 가져다가 쓰고 싶은 것을 아무 거나 쓰세요. 그림을 그려도 되고, 하늘나라에 간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도 되고, 너무 슬퍼서 화가 나면, 화나는 마음을 표현해도 돼요. 그리고 수업 중에 갑자기 눈물이 나거나, 도저히 수업에 집중이 안 될 땐 도서관에 가서 혼자 시간을 보내거나 울고 와도 돼요."

     

    아들이 전한 바에 따르면, 이날 그 어떤 선생님도 아이들에게 수업에 집중하라거나, 이럴 때일수록 더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고도, 그 친구를 위해서 우리가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느꼈을 심리적 충격을 이해해주고 그 슬픔을 충분히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하고 함께 울어줄 뿐이었다. 선생님들 역시 슬픔을 숨기지 않았다. 아들의 담임선생님은 "오늘은 마음이 너무 슬퍼서 수업하기가 힘들다"고 아이들에게 털어 놓았고, 지원 나온 대체교사가 이날 수업시간에 함께 했다.

     

    상실은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심리적으로 깊은 충격과 슬픔을 남기는 경험이다. 특히, 어린 시절 생애 처음으로 겪는 상실은 성인이 되었을 때 여러 차례 맞닥뜨리게 될 또 다른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형성해 준다.

     

    상실을 맞닥뜨릴 때 정서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슬픔을 충분히 표현해내야 한다는 점이다. 마음 안에서 밀려오는 슬픔을 힘들다고 해서 부인하거나 '괜찮다'고 포장해 버리면, 그 슬픔은 마음 더 깊은 곳으로 꽁꽁 숨어들어간다. 숨어든 슬픔은 예고도 없이 불쑥불쑥 찾아와 오랫동안 일상을 방해하곤 한다.

     

    이런 면에서 선생님의 대처를 듣자 안심이 되었다. 이날 아들과 반 친구들은 수시로 종이를 가져다가 슬픔을 표현했고, 도서관에서 멍하게 앉아 있거나 한바탕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교장선생님의 메일 한 통

     

     

    그리고 그날 오후, 교장선생님으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이 왔다. 교장선생님은 전체 학부모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다시 한 번 비보를 공식적으로 전했다. 그리고 당부했다. 슬픔에 빠진 유가족들이 다른 이들과 접촉하는 것을 꺼려하고 있으므로, 이들의 뜻을 존중해 달라고. 유가족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을 자제해 달라고 말이다. 

     

    이어 교장선생님은 학교는 신속히 밴쿠버 교육청의 위기지원팀(VSB Critical Support Team)의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교육청의 위기지원팀은 학교 공동체에서 재난이나 구성원의 죽음 등 정신적인 상처를 남기는 일이 발생했을 경우, 심리적 문제를 비롯한 각종 어려움들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한다.

     

    학생뿐 아니라 슬픔에 빠진 선생님들도 돕고, 때로는 대체 인력을 파견하기도 한다. 충격과 슬픔에 빠진 학교를 체계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언제든 아이들이 들를 수 있도록 상담센터를 열어 두었고, 학교와 교육청 소속의 상담사들이 도움을 제공할 채비를 마쳤다고 알렸다.

     

    또한 교장선생님은 강조했다. 이번 일로 인해 아이들이 죽음에 관해 이야기를 하거나 물을 때 주의 깊게 들어주고 정직하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라고. 나아가 학교에서도 언제든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 묻고 이야기 하며, 슬픔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며 집에서도 함께 해달라고 당부했다.

     

    교장 선생님이 보낸 메일을 보니 여전히 먹먹한 나의 마음이 조금은 따스해지는 듯 했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터부시하지 않고, 삶의 일부분으로 죽음을 이해하도록 도우려는 자세, 상실을 경험할 때 생기는 감정들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 유가족들을 존중하는 태도, 공동체 차원에서 상처를 극복해 가려는 노력. 아들의 학교는 가슴 아픈 상실을 경험할 때 반드시 해야 할, 그리고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차근차근 해내며 애도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모습들은 친구를 잃은 경험이 나와 내 아이를 비롯, 그 친구와 가까워 충격과 슬픔이 더 큰 몇몇만이 스스로 감당해내야 할 것이 아님을 알게 했다. 공동체 차원에서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은 시린 마음 한 켠에 훈훈함과 용기를 불어넣어 줬다.

     

    물론, 아무리 함께하고 서로 위로하더라도 상실을 경험해내는 것은 분명 힘들고 아픈 일일 것이다. 그 충격 또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안다. 하지만 가정과 학교, 그리고 교육청까지 나서 함께 슬픔을 나누고 도우려는 모습들을 보니 이를 통해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그리고 학부모들도 한 단계 성숙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애써 축소하거나 감추려 하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며 함께 나눌 때 우리는 분명 이 슬픔을 감당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친구가 하늘나라에서는 더 이상 아프지 않길, 유가족들에게도 평화가 함께 하길 기도드린다.
     

  • 진정한 교훈이나 급훈은 이런 것

    이미지 출처 : The Mind Awakened 페이스북

    한 초등학교 복도 벽에 쓰여진 글이 많은 사람의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어떤 친구들이 너보다 공부를 더 잘 할 수 있어.

    어떤 친구들이 너보다 멋진 옷을 입을 수도 있어.

    어떤 친구들이 너보다 운동을 더 잘 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런 건 결코 중요하지 않아.

    너 또한 너만의 무언가를 갖고 있거든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봐. 

    주위 사람에게 너그럽고 친절한 사람,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그런 사람,

    그리고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자고.

    그런 훌륭한 사람이 말야.

  • 수험생 울린 엄마의 ‘통장편지’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Bru-nO)

    한 어머니가 수험생 딸에게 쓴 ‘통장편지’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줬습니다. 

     

    최근 수능을 치른 한 학생은 자신의 트위터에 어머니로부터 선물로 받은 통장을 찍어 올렸습니다. 

     

    학생의 어머니는 수능 100일 전부터 1만 원씩 저축하면서 최대 7자까지 적을 수 있는 입금 메시지에 4~7자씩 글을 적어 ‘통장편지’를 완성했습니다.  

     

    선물을 받은 학생은 트위터에 “엄마가 수능 100일 때부터 1만 원씩 모아서 통장을 만들어 줬다”면서 “읽다가 눈물 펑펑 쏟았다”라고 적었습니다.  

     

     

     

    다음은 ‘통장편지’의 내용입니다. 

     

     

     

    수능 백일 파이팅. 수능 끝나고 놀아. 너는 빛나는 존재. 사랑스러운 우리 딸, 네가 선택하는 그 모든 것들이 너를 행복하게 해주기를. 그리고 행복한 너의 삶을 스스로 가꾸어 나가길 바란다.  

     

    그러니 수능이 끝난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를 꼭 안고 토닥거리며. 그동안 고생했다. 괜찮다. 모두 다 괜찮다. 애쓰고 애썼다. 그걸로 충분하다. 사랑하는 예쁜 우리 딸 삶의 시작은 지금부터니까 하고 싶은 거 모두 다 하렴. 

     

    바른 인생관, 바른 인간관, 바른 세계관, 중요한 삶의 가치관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싶고 삶의 무게나 삶의 의미 등 진지한 고민을 공유하고픈 나의 바람을 알아주길 바란다. 좀 더 성숙해진 이야기들을 나눈 후에 너를 독립시켜야 내 맘이 편할 듯싶구나. 미래는 그리하여 그 의미를 갖는다 하니 자신의 힘으로 멋진 인생을 이루길 바란다. 

     

    You're my present. 선물 같은 너를 만나서 엄마는 정말 행복해. 늘 건강해서 다행이었고 잘 자라줘서 참 고맙다. 더할 나위 없이 묵묵히 잘 커 준 예쁜 우리 딸아, 지금도 충분히 예쁘고 예쁘다. 어젯밤 앨범을 함께 보며 추억해보니 즐겁고 행복한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떠올라서 시간의 소중함, 추억의 소중함을 느꼈단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표현하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자. 

     

    누구나 각자의 인생이 있단다. 뒤돌아볼 때 후회 없는 선택은 별로 없단다. 그러니까 진정한 행복을 찾는 선택을 하길 바란다. 언제나 너의 뜻을 존중하고 이해하니, 너는 늘 당당하게 웃음 넘치는 00이가 되기를.

  • 가슴이 먹먹해지는 초등학생의 시

    이미지 출처 : 전라북도교육청 페이스북

    한 초등학생이 쓴 시가 읽을 때마다 큰 울림을 줍니다. 

    부안여중에 다니는 이슬(14)양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암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며 ‘가장 받고 싶은 상’이라는 제목의 시를 썼습니다.

    이 시는 2016년 전라북도 교육청 공모전에서 동시 부문 최우수상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가장 받고 싶은 상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짜증 섞인 투정에도

    어김없이 차려지는

    당연하게 생각되는

    그런 상

     

    하루에 세 번이나

    받을 수 있는 상

    아침상 점심상 저녁상

     

    받아도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안 해도

    되는 그런 상

    그때는 왜 몰랐을까?

    그때는 왜 못 보았을까?

    그 상을 내시던

    주름진 엄마의 손을

     

    그때는 왜 잡아주지 못했을까?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꺼내지 못했을까?

     

    그동안 숨겨놨던 말

    이제는 받지 못할 상

    앞에 앉아 홀로

    되뇌어 봅시다.

    "엄마, 사랑해..."

    "엄마, 고마웠어요"

    "엄마, 편히 쉬세요"

    세상에서 가장 받고 싶은

    엄마상

    이제 받을 수 없어요.

     

    이제 제가 엄마에게 

    상을 차려 드릴게.

    엄마가 좋아했던

    반찬들로만

    한가득 담을게요.

     

    하지만 아직도 그리운

    엄마의 밥상

    이제 다시 못 받을

    세상에서 가장 받고 싶은

    울 엄마 얼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