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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몬드라곤을 생각한다

    청년 실업률이 높다고 합니다. 

    바늘구멍만 한 취업의 문을 통과한다고 해도 평탄한 삶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년의 직장인들 가운데 일부는 기업 경영이 어려워지면 정리해고됩니다. 

    노인들 가운데 적지 않은 분들이 정부의 보조금 없이는 생존이 어려운 세상이 됐습니다. 

     

    모두가 생존의 두려움을 느끼는 시대라서 그런지 협동조합의 ‘롤모델’로 여겨지는 몬드라곤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한 신부님이 가난한 이들의 자립을 위해 시작한 몬드라곤은 지금 스페인의 10대 기업 집단에 속할 정도로 큰 조직으로 성장했습니다. 

    100개가 훨씬 넘는 협동조합 120개가 넘는 자회사 등 260여 개의 사업체를 거느리고 있는 곳이지요. 3만 5천여 명의 노동자 조합원의 평균 연봉도 우리 돈으로 7000만 원이 넘습니다. 해마다 출자금을 쌓아 퇴직할 때 거액의 ‘퇴직금 ‘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기업을 운영하지만 몬드라곤에는 해고가 없습니다. 몬드라곤이 설립된 1956년 이래로 단 한 명의 해고자도 없습니다.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로 수많은 은행과 기업이 파산하고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었지만 몬드라곤은 급여의 80%를 지급하며 노동자를 재교육해 다시 취직시켰습니다. 그때 몬드라곤은 오히려 1만 4938명을 새로 채용해 고용을 늘렸습니다. 

     

    왜 그럴까요? 몬드라곤의 기업 목표가 고용 확대이기 때문입니다. 

     

    몬드라곤을 설립한 이는 돈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 아리에타 신부입니다. 그가 1941년 주임신부로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시골마을에 왔을 때 전쟁으로 마을은 폐허 상태였습니다. 사람들도 다 떠나고 없었습니다. 

     

    돈 호세 신부는 지역민들의 가난 극복을 위해 기술학교를 설립하고 졸업생과 지역민이 중심이 되어 석유난로 공장을 만들었습니다. 몬드라곤의 첫 협동조합 울고(ULGOR)의 탄생이었습니다. 

     

    그로부터 하나씩 회사를 만들어 지금 몬드라곤에서 운영하는 회사는 금융, 제조업, 유통, 지식 등 4개 부문에서 260개가 넘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변함없는 단 하나의 원칙은 바로 고용 확대입니다. 

     

    몬드라곤 협동조합도 기업이므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또한 실패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어려울 때 함께 나누고 실패한 이들에게도 또 다른 기회를 주며 공동운명체로 살아갑니다. 

     

    창립자인 돈 호세 신부는 몬드라곤에 대해 다름과 같이 말했습니다. 

     

    "인간의 정직성을 제도화하는 것, 나아가 인간의 위대성을 제도화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사상입니다.” 

      

    몬드라곤의 성공은 이런 가치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 숲에 들어 하는 명상

    자주 숲으로 가십시오. 

    바람결과 햇볕, 숲의 향기, 새소리, 바람 소리, 물소리, 

    맨발에 전해져 오는 대지의 생생한 감촉, 눈 푸른 숲의 질감. 

     

    숲은 화들짝 그대의 오감을 자극하여 몸과 마음이 춤을 추게 합니다. 

    숲은 그대의 전 존재를 깨우고, 그대의 의식을 고양시키고, 그대의 감정을 정화해 줍니다. 

     

    숲에 드세요. 

    오랜 나무들이 있는.... 

     

    함께 숲으로 가실까요? 

     

    - 따갑지 않으면 햇볕 속에 앉는 것이 더 좋지요. 나무 그늘에 자릴 잡아도 됩니다. 

     

    - 그대의 몸 상태, 주변 환경을 고려해 가장 편한 자세를 가지셔요. 

     

    - 먼저 주변을 둘러보세요. 나무, 바위, 풀, 꽃, 새, 흙 등과 눈 맞추며 반갑게 인사하셔요. 

      명랑하게 소리를 내서 하시면 더 좋지요. 

    - 이제 지그시 눈을 감고, 숲의 신선한 공기로 몸과 마음을 정화한다 생각하시며 

      큰 숨 여러 번 쉬셔요. 

     

    - 자, 고요해지셨나요? 그러면 들리는 것, 맡아지는 것, 느껴지는 것들을 아무런 판단을 하지 마시고 

      한동안 그저 가만히 듣고 맡고 느끼며 내 몸의 감각을 활짝 깨워 보셔요. 

     

    - 그런 뒤, 이번엔 내 피부의 모든 세포들이 활짝 열린다 생각하셔요. 

      그 세포들이 환호하며 그 소리, 냄새, 느낌들을 내 몸으로 다 받아들인다고 상상하며 실감해 보셔요. 

     

    - 숲의 초록의 생명 에너지가 피부의 열린 세포를 통해 내 몸에 들어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내 몸을 가득 채운다 생각하시며 그 충만감에 젖어 보셔요. 

     

    - 내 몸 전체가 푸르고 눈부신 생명력으로 되살아나 빛이 나고 풀어져 숲 전체로 퍼져나간다 생각하시며 실감해 보셔요.  

     

    - 숲의 빛나고 푸른 기운과 하나 된 그 느낌 속에서 오래 머물러 행복하십시오.

  • 숨, 참 쉼의 도구

    숨과 관련한 우리 표현 가운데 쉰다는 게 있습니다. 내쉰다고도 합니다.

    왜 숨이라는 단어에 쉰다는 표현이 들어가 있을까요? 숨이 우리가 쉬는 데 가장 요긴한 수단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숨은 생명을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음식은 먹지 않아도 50일 이상 살 수 있지만 숨은 몇 분만 쉬지 않아도 생명을 잃게 됩니다.

    하지만 숨의 중요성을 나타내기에 쉰다는 표현은 적합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숨을 쉰다는 표현은 말 그대로 숨을 통해 우리의 몸과 마음이 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숨을 풍부하게 들이마시고 내쉬면 몸에 긴장을 풀 수 있습니다. 몸에 에너지도 찹니다.

     

    무엇보다 숨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쉴 수 있도록 해줍니다. 숨에 마음을 모으면 생각이 줄어듭니다. 생각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숨이 생각을 쉬는 도구가 되는 것이지요.

  • 떼제, 청년들의 영혼의 쉼터

    떼제공동체에서 기도 중인 청년들. 이미지 출처 : 플리커 (TaizéBirmingham), 퍼블릭 도메인

    “우리가 지금 온 대륙의 젊은이들과 함께 신뢰의 순례를 해 나가는 것은 평화가 얼마나 시급히 필요한지를 자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음의 물음에 답하려고 노력할 때 평화를 이룩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사는 곳에서 신뢰를 간직하고 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다른 사람들을 더 많이 이해하려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떼제공동체 창설자 로제 수사) 

     

    교회나 성당에 다니는 분들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하늘색 십자가를 본 적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비둘기가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상징한 이 십자가가 공동체의 상징 떼제 십자가입니다. 

     

    [[IMAGE|198|center|떼제공동체를 상징하는 푸른 십자가. 출처 : 위키미디어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roix_de_Taiz%C3%A9.jpg), CC BY-SA 라이센스]]

     

    1940년 8월 한 청년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동부 프랑스 부르고뉴 남부 지방의 작은 마을 떼제(Taize)를 찾았습니다. 그 해 6월 14일 프랑스 파리가 함락된 지 두 달쯤 되는 때였습니다.  

     

    스물다섯 살의 청년 로제는 전쟁이라는, 사람이 벌인 가장 잔인한 행위를 보면서 하루하루를 화해와 일치로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꿨습니다. 분열과 갈등을 치유해 전쟁을 막고 인류가 한 가족처럼 지내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떼제를 찾은 이유는 그런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고통받는 바로 그곳에 그런 공동체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그가 한 일은 도망자를 숨겨주는 일이었습니다.  

     

    로제에게 가장 먼저 눈에 뜨인 사람들은 나치 독일의 점령지에서 목숨의 위협을 느껴 도망 나온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반대의 처지에 놓인 독일군 포로들을 맞았습니다. 젊은이들의 영성 공동체 떼제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떼제가 공동체의 틀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49년입니다. 로제와 뜻을 함께 하는 일곱 명의 청년들이 찾아와 독신 생활과 물질적 영적 재산의 공유 등을 지킬 것을 약속하는 종신서원을 하면서 공동체 식구들이 생겼고 1952년에는 떼제의 규칙이 만들어집니다. 어떤 기부나 헌금도 받지 않고, 가족의 상속도 받지 않으며, 스스로 일해서 번 돈으로 생활하고 나눔을 실천한다는 등의 내용입니다.  

     

    평생 단순 소박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차츰 그들의 뜻에 공감하는 이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 공동체에는 지금 공동체에는 20여 개 나라에서 온 1백 명가량의 수사들이 살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 출신도 있고, 개신교회 출신도 있습니다. 

     

    떼제에는 1950년대 말부터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로제 수사를 비롯한 공동체 식구들은 이곳을 찾는 젊은이들이 머물면서 화해와 일치의 공동체 정신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때부터 손님맞이는 떼제의 주요한 부분이 됐습니다.  

     

    지금은 1년 내내 유럽은 물론 다른 대륙에서 찾아온 젊은이들이 떼제를 찾습니다. 한 주에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합니다. 그들은 일요일에서 다음 일요일까지 1주일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떼제의 정신을 경험합니다.  

     

    이들은 1962년 세워진 ‘화해의 교회’에서 하루 세 차례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기도를 하고 소그룹으로 나눠 대화하는 시간도 갖습니다. 젊은이들이 많아지자 몇 해 전부터 가톨릭 국제공동체인 성 안드레아 수녀회와 폴란드의 우술라 수녀회에서 ‘젊은 순례자’들을 맞는 일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젊은이들과의 모임은 떼제공동체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수사들은 유럽은 물론 다른 대륙을 찾아다니며 크고 작은 모임을 이끕니다. 이는 지구촌에 믿음에 바탕한 화해와 일치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신뢰의 순례’입니다. 이들 모임에서 떼제공동체 수사들은 젊은이들이 자기가 사는 바로 그곳에서 인류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열심히 활동하도록 돕고 격려합니다. 

     

    가장 큰 모임은 떼제공동체가 매년 말 유럽에서 여는 ‘테제 유럽 젊은이 모임’(Taize European Youth Meeting)입니다. 하지만 이 행사에는 유럽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온 수만 명의 젊은이들 참여합니다. 2004년 말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행사에는 8만 명의 젊은이들이 참가했다고 합니다. 올해 행사는 12월 28일부터 2006년 1월 1일까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립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찾아오지만 떼제는 자신을 중심에 두는 법이 없습니다. 떼제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조직은 하나도 없습니다. 대신 동네, 마을, 도시, 교회, 성당 등 젊은이들에게 자신이 속한 곳에서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이끌어 줍니다. 떼제공동체가 세계 곳곳을 찾아가며 벌이고 있는 ‘신뢰의 순례’는 그런 젊은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 기획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김수환 추기경의 요청으로 1979년 다섯 분의 수사들이 파견되어 서울 화곡동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분들은 26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한국의 교회와 젊은이들을 돕고 있습니다. 화해와 일치의 지구촌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떼제공동체. 이들의 꿈이 자랄수록 지구촌에는 사랑과 평화의 기운이 더욱 커질 것입니다.

  • 17년째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의 눈이 되주는 사람

    안기형씨는 두 개의 직함을 갖고 있습니다. 공식 직함은 현대모비스 모듈품질보증팀 차장이고, 비공식 직함은 시각장애인 마라톤 코치입니다. 

     

    안 차장은 토요일이면 서울 남산 산책로에서 2시간 동안 마라톤을 하는 시각장애인의 ‘눈’이 됩니다. 17년째 계속하고 있습니다. 

     

    마라톤 마니아로 2002년 4월 사하라사막 마라톤에 참가한 그는 특별한 모습의 참가자를 보게 됩니다. 

     

    서로의 팔에 줄을 묶고 함께 호흡을 맞춰 달리는 두 사람을 보게 된 것이지요. 그들은 한국에서 온 시각장애인과 도우미였습니다. 

     

    안 차장은 도우미로 온 분에게 물어봤다고 합니다. 

     

    “어렵지 않으세요? 

    “어려울 것 하나도 없어요. 오히려 더 보람되고 즐겁습니다.” 

     

    그분의 환한 얼굴을 보면서 존경심이 생겼다고 합니다. 

     

    레이스 마지막 날 시각 장애인이 뜻밖의 제안을 했습니다. 한국에 자신 외에도 마라톤을 하고 싶어 하는 장애인이 많으니 지도를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안 차장은 매주 토요일 남산을 찾아 시각장애인의 도우미 구실을 시작했습니다. 

     

    쉽지는 않았지요. 국가대표 출신이 마라톤 코치를 한다고 하니 첫날 11명의 시각장애인들이 왔다고 합니다. 안 씨는 준비체조부터 가르쳤는데 따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당연했습니다.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따라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일주일 동안 고민을 했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조각상을 만지면서 느낌을 얻는다는 데 착안해 시각장애인들에게 자신의 몸을 만지면서 스트레칭 자세를 배우도록 했습니다. 

     

    노하우도 쌓였습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스트레칭법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고, 시각장애인과 동반주자를 이어주는 끈의 길이를 1m 이하로 줄였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의 실력이 늘어가자 안 차장은 하프 마라톤에 도전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모두들 망신만 당할까 자신 없어 했습니다. 

     

    180개 동호회가 참여했는데 시각장애인임에도 19등을 했다고 합니다. 

     

    안 차장은 1977년 성남 성일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육상부를 뽑는다는 얘기를 듣고 2000m 달리기에 참가해 1위로 선발되면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습니다.  

     

    1985년 경부역전마라톤 대회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며 현대모비스 실업팀에 들어와 서울 올림픽 국가대표 상비군에 선발되기도 했지만 1987년 동아마라톤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이 나오지 않자 은퇴를 선택했습니다.  

     

    직장인이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 평범하게 살다 2002년 '나를 찾는 달리기'를 다시 시작해 이듬해 열린 '제18회 사하라 사막 마라톤 대회'에서 아시아 참가자 중 최고 기록을 내기도 했습니다. 2004년 <243㎞ 사하라를 달린다>는 책도 펴냈습니다. 

     

    요즘에도 가끔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는데 강연 또한 마라톤 자원봉사와 마찬가지로 돈을 받지 않고 합니다. 봉사를 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 하객들이 결혼식에서 검은 안대를 한 이유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이 검은 안대를 썼습니다. 

     

    지난달 25일 호주 퀸즐랜드에서 열린 스테파니와 로버트 캠벨 부부의 결혼식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호주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호주의 한 국립공원에서 열린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이 혼인서약이 시작되자 모두 준비해 온 검은 안대를 꼈습니다. 

     

    그들은 혼인서약이 끝날 때까지 안대를 쓴 채 두 사람이 평생 서로를 사랑하겠다는 다짐을 들었습니다.  

     

    검은 안대 착용은 아내 스테파니의 아이디어에 따른 이벤트였습니다. 

     

    스테파니는 19살 때 원뿔세포 이영양증 진단을 받았고 29살인 3년 전 시력을 잃었습니다. 원뿔세포 이영양증은 망막 세포 중에 색각과 시력을 맡고 있는 원뿔세포가 변성이 되어 볼 수 없게 되는 질병을 말합니다.  

     

    스테파니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자신과 똑같이 그 순간을 함께 하고 기억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친구와 가족들에게 자신과 로버트가 혼인서약을 할 때 안대를 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객들은 야외 식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소리를 통해 경험했고, 두 사람의 결혼 서약을 집중해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스테파니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사람이 완전히 현존을 경험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결혼식을 준비한 회사에서는 예식 진행되는 동안 10가지의 천과 10가지 향의 에센셜 오일을 써서 스테파니가 그 순간을 기억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 배우 이주실 씨의 암 투병과 이타심이라는 묘약

    지난 11월 27일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는 배우 이주실 씨의 암 투병기가 방영됐습니다.  

     

    마흔셋에 남편과 헤어지고 두 딸을 홀로 키워야 했던 그는 나이 쉰에 유방암 4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습니다. 

     

    수술로 한쪽 유방을 다 떼냈지만 병마는 더욱 기승을 부려 그의 생명을 갉아먹었습니다. 

     

    살 날이 15일밖에 남지 않았을 때 그는 서울을 떠나 전남의 한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죽음을 앞뒀을 때 후회하는 것이 하고 싶은 데 못한 것과 베풀지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주실 씨도 남은 생명을 다른 이를 위해 쓰고 싶었나 봅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봉사하는 삶을 시작하면서 건강이 조금씩 회복됐다고 합니다. 물론 그 뒤로도 13년 동안 암은 이따금씩 그를 찾아와 괴롭히곤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과 삶>에 출연한 이 씨는 무척 건강해 보였습니다. 

     

    암 투병 동안에도 그는 학생들에게 연극을 가르치고 암 환자를 돕는 일을 하는 등 자원봉사를 지속했습니다. 

     

    이주실 씨의 삶을 보면서 타인을 위한 봉사가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한의사로부터 들은 또 다른 사례가 있습니다. 간경화가 많이 진행돼 병원에서도 치료가 어렵다고 했다는 환자가 한의원을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 한의사는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으실 때 자원봉사라도 하면서 남은 삶을 가치있게 쓰시는 게 어떠냐고 권했습니다. 환자도 수긍했고요. 

     

    그로부터 몇 달 뒤 그 환자가 건강한 모습으로 한의원을 다시 찾아와 한의사를 놀라게 했다는 겁니다. 

     

    한의사는 다른 이를 돕고자 하는 마음, 이타심이 치유에 어떤 도움을 주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마음의 힘은 참 묘한 것 같습니다. 마음이 지닌 치유의 힘을 연구해봤으면 합니다. 

  • 수도사가 알려준 기도의 비밀

    도시의 삶에 힘들고 지칠 때면 수도원을 찾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저 고요히 쉴 수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그는 수도원에 갈 때마다 한 수도사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수도원에서 가장 바빠 보이는 수도사로 보였습니다. 

     

    잠시도 쉬지 않고 늘 부지런히 움직이는 수도사는 파리에 사는 여느 도시인처럼 분주했습니다. 

    이상한 것은 그 사람은 그렇게 정신없이 움직이면서도 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는 수도사에게 물었습니다. 

     

    “신부님은 언제 기도를 하세요?” 

    “늘 기도를 한다네" 

     

    “어떻게 기도를 하세요?” 

    “배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자고 그러지" 

     

    “그건 저도 하는데요" 

    “아니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밥을 먹으면서 딴 생각을 하고 자면서도 다음날 걱정을 해. 나는 밥을 먹을 때는 밥을 먹을 수 있다는 데 감사하고, 졸릴 때는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지.”

  • 옛 ‘국민 신발’ 고무신, 동티모르 아이들의 희망이 되다

    고무신은 한때 ‘국민 신발’이었습니다. 

     

    종류는 그리 다양하지 않았지요. 검정 고무신, 흰 고무신, 그리고 알록달록한 색동 고무신 정도가 종류의 전부였습니다.  

     

    운동화가 생산되면서 고무신은 한동안 가난의 상징이 되기도 했습니다.  

     

    형편이 넉넉한 집에서 아이들에 운동화를 사줄 때 가난한 집 아이들은 고무신을 신어야 했습니다.  

     

    그런 고무신이 동티모르 빈곤층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신발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동티모르는 산골마을로 갈수록 환경이 열악합니다. 고산지대의 아이들은 맨발로 산길을 다니며 커피콩을 줍고 두 시간을 걸어 등하교를 합니다. 발을 다치는 아이들이 많은 이유입니다.  

     

    이런 아이들을 돕기 위해 대구의 사회복지법인 가정복지회가 동티모르 어린이들에게 고무신을 보내는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착한고무신 보내기 프로젝트입니다. 

     

    도움을 주고 싶은 분은 월 1만 원씩 정기후원을 하거나 1켤레 당 3~5천 원 하는 고무신을 직접 사서 가정복지회로 보내주면 됩니다. 

     

    ‘착한고무신’은 동티모르 현지의 비영리 알롤라재단을 통해 어린이에게 전달됩니다.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이우영 작가는 착한 고무신을 손에 든 ‘기영이’를 캐릭터로 기부했고 대구에 본사를 둔 베트남 음식 프랜차이즈 ‘더포’는 계산서에 ‘기영이’ 스티커를 붙이면 1000원을 더 결재해 그렇게 모은 돈으로 ‘착한고무신’을 사서 보내고 있습니다. 

     

    고무신을 받은 아이들은 너무 좋아한다고 합니다. 가정복지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면 고무신을 신고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가정복지회는 착한고무신 프로젝트를 아이들의 교육사업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서입니다. 

     

    동티모르는 우리나라 강원도 크기의 작은 섬나라입니다. 인구 절반이 하루 0.88달러로 생활하고 5세 이하 어린이 절반이 체중미달을 겪고 있으며 초등학교에 다니는 비율도 56%에 불과한 곳입니다. 

  • 베를린의 포장지 없는 가게 오리기날 운페어팍트

    독일 베를린에는 포장지 없는 가게가 있습니다. 

     

    오리기날 운페어팍트(Original Unverpackt). 이곳에서 물건을 사려면 구입한 물품을 담을 수 있는 용기를 갖고 가야 합니다. 곡물을 사려는 고객들은 종이봉투를 가져와 곡물통의 버튼을 누르고 원하는 만큼 담은 뒤 무게를 달아 돈을 지불합니다. 액체 상품도 마찬가지입니다. 포도주나 샴푸, 세제 등을 사고 싶은 사람들은 유리병이나 항아리를 들고 옵니다.   

     

    [[IMAGE|206|center|아이가 자신이 가져온 유리병에 원하는 만큼 젤리를 담고 있다. 출처 : 오리기날 운페어팍트 페이스북]]

     

    이 가게는 베를린에 사는 두 명의 젊은이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사라 볼프와 릴레나 글림보프스키가 그들입니다. 두 사람은 어느 날 포장지가 제품 무게보다 더 무겁다는 것을 깨닫고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재활용보다는 ‘예방적 환경주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오리기날 운페어팍트는 2014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모은 돈으로 만든 세계 최초의 포장지 없는 슈퍼마켓입니다. 시민 4000여 명이 참여해 목표액 4만 5000유로를 훨씬 넘는 7만 유로를 모았다고 합니다.  

     

    오리기날 운페어팍트의 첫 번째 목표는 포장지를 없애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것입니다.  

     

    유엔환경계획에 따르면 1950년대 이후 전 세계에서 생산된 플라스틱은 83억 톤을 넘습니다. 문제는 플라스틱의 재활용 비율이 9%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땅속에 매립되거나 바다로 흘러갑니다. 이렇게 버려진 플라스틱은 미세 플라스틱으로 잘게 쪼개져 플랑크톤이나 해양생물의 몸속에 들어가고 먹이사슬에 따라 결국 사람 몸에도 쌓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