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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성자들의 시대12 -명천의 개안

작성자 : 피스우즈

그는 힘이 용솟음쳤다. 거대한 분수처럼 솟구치는 힘을 어디엔가 써보고 싶었다.

마음 같아선 하늘 높이 뛰어오르고 산봉우리를 번쩍 들어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스승께서 옆에 계시니 함부로 힘자랑을 하지 못했다.

"명천아, 폭포물이 못 떨어지게 한번 막아 보거라."

명천의 마음을 헤아리고 벽운 선생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예, 스승님."

명천은 못을 사이에 두고 폭포와 정면으로 마주섰다. 그리고 단전으 진기를 손으로 보낸 다음

서서히 팔을 앞으로 뻗었다. 명천의 손에서 강한 공력이 뿜어 나와 폭포수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자 물줄기가 반으로 끊겼다. 아랫부분은 못으로 떨어져 내리고 윗부분은 얼어붙은 듯이

그대로 있었다.

명천은 또 손을 천천히 위로 올렸다. 그와 동시에 물줄기도 거꾸로 올라갔다.

손을 내리자 자석에 끌려가는 쇠붙이처럼 물줄기가 도로 내려왔다.

"됐다. 잘했다. 공력이 크게 좋아졌구나."

명천이 손을 거둬들였다. 물줄기가 아래로 떨어져 내리며 굉음이 울렸다.

 

'초막으로 돌아가자."

두 사람은 초막으로 올라왔다. 백령자는 초막의 지붕 위에 앉아 선정에 들어 있었다.

백령자의 몸에서 은은한 광채가 뿜어 나왔다.

그 광채는 한 줄기로 모아져서 명천이한테로 뻗쳐 갔다. 명천의 마음은 더욱 아늑해졌다.

자신이 우주 삼라만상과 하나가 된 기분이었다. 자기가 우주의 품안에 안겨 있으면서

동시에 온 우주를 품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때였다. 벽운 선생의 눈에 보덕봉의 맑은 정기가 활짝 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거대한 빛기둥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보덕봉의 왼쪽에 솟아오른 선인봉과 오른쪽의 옥녀봉에서도 빛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세 빛기둥에서 눈부신 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중에서 가장 많은 양이 초막으로 쏟아져 내려왔다.

초막의 앞쪾에는 수많은 산봉우리들이 가물가물 펼쳐져 있었다.

정남쪽으로 아득히 먼 곳에 지리산이 희미하게 보였다.

이 지리산에서도 찬란한 빛이 뿜어 나와 초막으로 뻗쳐 왔다.

초막 일대는 사방에서 밀려온 맑디맑은 정기에 휩싸였다.

 

두 사람은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도 진기가 충만해 있었다.

지극히 청정한 기운이 명천의 몸 속으로 쏴아쏴아 쏟아져 들어왔다.

그것이 명천의 마음 깊은 데 깃들인 번뇌의 찌꺼기들을 말끔하게 닦아 냈다.

벽운 선생과 명천이 서로 마주보고 앉았다.

"명천아, 너 다시 눈을 뜨고 싶지 않느냐?"

벽운 선생이 다정하게 물었다.

"예?'

명천이 매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눈먹기 전처럼 삼라만상을 보고 싶지 않느냐?"

"그럴 수 있으면 오죽 좋겠습니까?"

명천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 될 수 있다. 오늘부터 그 공부를 하자."

"스승님, 정말 제 눈이 다시 떠질 수 있습니까?"

"아무렴, 되고말고."

"어떻게 하면 그리 되는지요?"

 

"삼라만상은 하늘에서 나왔다. 하늘은 형체가 없는 세계다.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진공이다.

네 마음과 정신이 진공으로 돌아가면 곧 하늘과 하나가 된다. 하늘은 우주 삼라만상을 낳았으니,

만물 안에 하늘이 깃들여 있다. 하늘의 빛은 만물중생을 환히 비춰 준다.

하늘 마음을 길러라. 네 마음이 진공으로 화할 때, 너는 다시 눈을 뜨게 된다.

천리 만리 밖, 우주 저쪽까지 모두 볼 수 있다."

"천안통을 얻는다는 말씀이신지요?"

"그렇다. 이제 그때가 되었느니라. 오늘부터는 오로지 몸과 마음을 진공으로 만드는 공부에

전념해라. 외공은 그만해도 되겠다. 자, 지금 시작해 보자."

명천이 벽운 선생 앞에서 선정에 들었다. 불쑥불쑥 떠오르는 상념들을 떨쳐내고

가슴의 중단전에 의식을 모았다.

"살갗으로 숨을 쉬면서 네 몸과 마음이 서서히 흩어져 진공으로 화한다고 생각해라.

먼지처럼 흩어져 완전히 사라졌다가 다시 모여 형체를 갖춘다고 상상하거라. 이것을 되풀이해라."

명천인 밖으로 향했던 감각 기관의 문을 닫고 자신의 내면 속으로 깊이깊이 잠겨들었다.

어느결에 코로 쉬던 숨이 끊겼다. 피부의 기공들이 활짝 열리며 그리로 공기가 드나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이 조금씩 희미해져 허공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상상했다.

처음엔 구름이나 안개로 뭉쳐 놓은 것처럼 보였다가, 작은 입자들이 풀어지면서 형체가 없어졌다.

나중엔 몸이 있던 자리가 푸르른 하늘의 일부로 변해 버렸다.

그런 뒤에 또 몸이 나타나는 광경을 상상했다. 먼저 푸르른 허공에서 먼지 같은 입자들이

생겨났다. 그들이 한데 엉기어 사람의 형체를 갖췄다. 형체가 살과 뼈로 이뤄진 몸이 되었다.

명천인 상상 속에서 거듭거듭 자신의 몸을 없앴다가 다시 만들어 내곤 했다.

벽운 선생과 함께 있으니 한 점의 번뇌도 범접하지 않았다. 일체이 흐트러짐 없이 수행에 전념할 수 있었다.

 

닷새째 되는 날이었다. 명천이 상상으로 자신의 몸을 허공에 흩뿌린 다음이었다.

명천의 의식 속에는 티 하나 없이 푸르른 허공만 남아 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명천아, 눈을 떠라."

벽운 선생의 음성이 천둥 소리처럼 크게 들려 왔다. 

명천이 화들짝 놀라며 퍼뜩 눈을 떴다.

마주 앉은 벽운 선생의 모습이 보였다. 방바닥, 벽,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천안통을 얻은 것이었다. 벽운 선생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명천인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30년 가까이 암흑 속에서 살았는데, 갑자기 몰 수 있게 되다니

영 믿기지 않았다.

"뭐가 보이느냐?"

"스승님이 보입니다. 스승님께서 웃고 계십니다. 맞는지요?"

"그렇다."

"스승님 옷이 누더기로 보이네요. 맞는지요?"

"맞다."

"스승님!"

명천은 감격에 겨워 벌떡 일어나 벽운 선생한테 큰절을 올렸다.

'됐다. 그만 앉거라. 이제 너는 천안통이 열렸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볼 수 있다.

지금 해가 어디에 있는지 보거라."

명천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아니다. 그럴 것 없다. 여기 그냥 앉아서 보거라."

명청은 해를 생각했다. 옥녀봉 위로 막 해가 떠오르는 게 보였다.

"옥녀봉 위에 있습니다."

"옥녀봉은 어떻게 생겼느냐?"

"타원형의 꼭대기가 둥그렇습니다."

"선인봉은 어떻게 생겼느냐?"

옥녀봉과 똑같은데 그보다 약간 큰 봉우리가 보였다.

"옥녀봉하고 똑같습니다. 옥녀봉보다는 조금 더 높고 큽니다."

"보덕봉은?"

"네모 반듯합니다."

"보덕봉 맞은편에는 무엇이 있느냐?"

"아, 엄청나게 많은 산줄기가 줄줄이 늘어서 있습니다. 까마득하게 먼 곳까지 보입니다.

맨 뒤에 왼쪽으로 높은 산이 있고요."

"그 산이 지리산이다."

"예? 정말입니까?"

명천인 감개무량했다. 수백 리 떨어진 곳에 앉아서 자신의 고향 지리산을 보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자, 나가서 다시 보거라."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명천인 마당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방안에서 본 것과 똑같은 훙경이 펼쳐져 있었다. 지붕 위에 앉아 이쓴 백령자의 모습도 보였다.

백령자가 명천을 향해 날아왔다. 명천이 백령자를 품어 안났다.

백령자의 날개를 쓰다듬어 주면서 자신이 천안통을 얻은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명천아, 이제부턴 오로지 네 몸을 진공으로 변회시키는 공부만 하거라.

번뇌를 떨치고, 오로지 네 중단전만을 지켜봐라. 그만 하거라. 번뇌를 떨치고,

오로지 네 중단전만을 지켜봐라. 그리고 신통력은 꼭 필요할 때만 써야 한다.

함부로 쓰면 삿된 기운이 침범하여 사도에 빠진다.  명심해라."

벽운 선생은 이 말을 남기고 계룡산을 떠났다.

 

닷새 만에 운학산으로 돌아온 벽운 선생은 백학봉 초막에서 한동안 필섭이네와 함께 지냈다.

백령자도 초막을 떠나지 않았다.

청령자는 백령자의 가르침을 받으며 수련에 전념했다. 행공을 하거나 명상에 잠기는 게 일과였다.

사냥을 나가는 횟수는 반으로 줄었다. 이제 이틀에 한 번씩만 나갔다.

 

석주와 필섭이도 식욕이 점차 줄어들었다.

단전에 진기가 충만해져서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되었다.

두 사람은 심신의 변화를 많이 겪었다.

단전에서 후끈후끈한 열기가 생겨 뜨거운 기운이 온몸으로 돌아다녔다.

몸이 떨리기도 하고 전에 앓았던 곳이 무척 아프기도 했다. 한번 통증을 느끼고 나면,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여러 가지 환상도 보였다. 자기 몸 속이 환하게 들여다보일 때도 있었다.

어떤 날은 바깥 세상 모습이 영화처럼 눈앞에 스쳐갔다.

벽운 선생은 그런 현상들에게 마음을 주지 말라고 일렀다.

"수행을 하다 보면 별의별 이상한 일들이 다 생긴다. 마음, 정신, 몸의 변화가 기기묘묘하다.

신통한 능력도 많이 얻게 된다. 하나, 그런 것에 빠지면 안 된다.

정도는 오직 하나,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여의는 것이다.

어느 날, 벽운 선생은 아침 일찍 청령자와 백령자를 데리고 어디론가 출타했다.

초막에는 석주와

필섭이 둘만 있었다.

 

점심나절이었다. 행공을 마치고 잠시 쉬는 참인데 낯선 여자들 셋이 백학봉에서 내려왔다.

티셔츠에 운동복 바지를 입고 제법 큰 배낭을 하나씩 메고 있었다.

나이는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쯤으로 보였다.

여자들은 초막 마당으로 내려오자마자 손을 합장하고 사방을 향해 허리굽혀 절을 올렸다.

평범한 등산객이 아닌 것 같았다. 운학산에는 등산하러 오는 이가 별로 없었다.

한달에 두세 팀이 올까말까 했다. 산이 깊고 길도 좋지 않아서 여자들끼리 온 적은 더구나 없었다.

필섭인 이 여자들이 혹 무당이 아닌가 했다.

그런데 여자들의 얼굴에선 무당들 특유의 신기가 보이지 않았다.

여자들은 합장 배례를 마친 다음 석주와 필섭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두 분께선 여기서 사시나 보지요?"

얼굴이 갸름하고 하얀 셔츠를 입은 여자가 정중한 태도로 말을 걸었다.

그녀가 말할 때 강한 기운이 풍겨 왔다. 필섭인 가슴께가 후끈 달아올랐고,

석주의 등허리는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찌릿찌릿했다.

"예, 그렇습니다. 어디서들 오셨습니까?"

필섭이 여자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며 물었다.

"상제봉 밑에서 왔습니다. 두 분께선 수도하시는 분들이지요?"

여자의 얼굴은 아주 맑았다. 화장을 하지 않았는데도 잡티가 전혀 없었다.

크고 아름다운 눈에서는 서글서글한 빛이 뿜어 나왔다.

'글쎄, 수도랄 것까진 없고, 그냥 수양이나 하면서 지냅니다."

필섭인 처음 보는 이 여자가 왠지 무척 낯익게 느껴졌다.

언젠가 어디선가 많이 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보기만 한게 아니라,

가까이 지낸 사람 같았다.

"실은 저희도 수도하는 사람인데요, 여기서 한 이틀 쉬어 갔으면 하고 왔거든요,

몇 년 전에 여길 한번 와봤는데 참 좋더라고요, 야영 준비를 다 해왔어요.

두 분 공부하시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허락해 주세요."

"그렇게 하십시오."

필섭인 망설이지 않고 쾌히 승낙했다.

수도하는 사람들이라니 반가웠고, 왠지 이 여자한테 친밀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석주의 의사를 묻지는 않았으나 석주도 반대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여자들은 마당 한켠에다 텐트를 쳤다. 필섭이와 석주가 도와주었다.

야영 준비를 끝내고 짐을 정리한 뒤 필섭이네와 여자들은 정식으로 인사를 나눴다.

여자들의 이름은  보화, 보연, 보옥이라 했다.

필섭이네한테 맨 먼저 말을 걸었던 여자는 보화였다.

"보자 돌림이시군요. 그럼 모두 자매간 되십니까? 보화 씨가 막내신가요?"

필섭이 보화를 쳐다보며 물었다. 보화는 다른 두 여자보다 대 여섯 살 아래로 보였다.

"친자매는 아니지만, 자매나 마찬가지예요. 우린 도반들이고 오랫동안 같이 살았어요.

그리고 제가 제일 위예요. 얘들은 동생들이에요."

보화가 웃으며 대답했다.

"예? 제일 앳되게 보이시는데요. 실례지만 지금 몇이세요?"

"호호, 저 나이 많아요. 서른넷이에요."

"그러세요?"

필섭인 깜짝 놀랐다. 스물대여섯쯤으로 짐작했는데,

10년은 더 젊어 보이니 수행이 깊은 모양이라 생각했다.

"공부를 참 많이 하셨나 봅니다. 수도를 시작하신 지 얼마나 되셨나요?"

"스물한 살 때부터니까 벌써 만 13년 됐네요."

"동생분들은요?"

"저보다 5년 늦게 입도했어요."

"무슨 도를 닦으십니까? 불도를 닦으시나요, 선도를 공부하시나요?

"저희는 후천대도에 입문했습니다."

"후천대도요? 처음 들어 보는데요."

필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후천시대, 후천개벽이란 말은 많이 들어 봤지만,

후천대도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

"후천개벽 얘긴 들어 보셔겠죠?"

"그런 얘기 가끔 들었습니다."

"우리 도는 후천시대를 여는 큰 도예요.

저희 스승님께서 천명을 받아 세상에 널리 펼치고 계십니다."

보화는 자신있게 말했다. 평소 후천개벽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지내던 터라 필섭인

호기심이 생겼다.

"저희 스승님께선 하늘 같으신 어른이세요. 하늘과 한몸이라고나 할까요.

말세의 구세성인에 관해서도 많이 들어보셨겠네요?"

"예, 구세주가 오실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있더군요."

"사람들은 말세의 구세주를 정도령, 자하진주라 부르지요. 미륵이 하강한다고도 하고요.

자기가 정도령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하지만 모두 가짜예요. 저희 스승님 한 분만이

바로 진짜지요."

"예?"

필섭이 또 깜짝 놀랐다. 그의 눈에 강한 의혹의 빛이 감돌았다.

석주도 눈을 크게 뜨고 보화를 쳐다보았다. 

필섭인 언젠가 벽운 선생한테 말세의 구세주가 어떤 분인지 여쭤 본 적이 있었다. 

벽운 선생은 그분이 선계의 대성자라고 했다. 그분께서 언제 세상에 나오시느냐고 재차 물으니까

너희 생전에는 나오실 거라며 그런데 너무 마음을 쓰지 말라 일렀다.

지금은 오로지 마음과 몸을 닦는 데 전념하라는 것이었다.

벽운 선생 말씀으로는 구세 성인을 한번 뵙는 것만도 무한한 광영이었다.

그런데 그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보화 씨의 스승이 구세성인이시라고요? 그분께선 언제 선계에서 나오셨습니까?"

"선계라니요?"

"제가 듣기로는 구세성인께선 선계의 큰 스승이시라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