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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엄마, 친구가 하늘나라 갔대”

작성자 : 송주연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 코너에 12월10일에 실린 글입니다 필자의 허락을 받아 전재합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금요일 오후였다. 다른 것이라고는 늘 비가 오는 이곳 캐나다 밴쿠버의 겨울답지 않게 무척이나 화창하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모처럼 비가 갠 주말을 어떻게 즐길까 고민하며 아들을 맞으러 학교에 갔다. 학교 놀이터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 삼삼오오 모여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학부모들. 멀찍이 바라봤을 땐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때 학교 현관문을 나서는 아들과 눈이 마주쳤다. 활짝 웃으며 다가가는데 이상하게도 아이의 표정이 어두웠다. 평소 금요일이라면 주말에 놀 생각에 더 활짝 웃으며 나오던 아이가 아니었던가. 아들은 나를 보자마자 반쯤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진짜 슬픈 소식이었어. 진짜, 진짜, 진짜 슬픈 소식이야. 그 친구가 하늘 나라에 갔대."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느닷없는 비보

 

 

그 친구라 함은, 지난 학년부터 아들과 한 반이었던, 9월에 시작된 새로운 학년에 첫 짝궁이었던 그 친구를 말하는 것이었다. 근무력증을 앓고 있어 휠체어에서 생활했고, 옆에는 장애학생 지원 선생님이 늘 함께 했지만, 아들의 그 친구는 학교생활에 대부분 참여했었다.

 

통합교육이 원칙인 이곳 캐나다에서 아이들은 조금 더 몸이 불편한 학생들과 생활하는 것을 당연히 여겼고, 이 친구도 학급 활동에 늘 함께 했다. 지난해 그 친구의 생일 땐 반 전체에서 작은 축하파티도 열었었다. 반에서는 혼자 책을 읽기 힘든 이 친구에게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책을 읽어주곤 했는데 두어 달 전 아들은 자신이 책 읽어줄 차례라며 영어발음을 연습해 갔었다. 몇 주 전 자원봉사로 따라간 현장학습 때도 장애학생 지원 선생님과 함께 참가했던 아이였다.

 

내게도 충격이었다. 순간 눈물이 쏟아졌고, 먹먹한 마음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평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마주친 선생님들의 눈빛에는 슬픔이 가득했고, 아들과 같은 반 친구들 중 몇몇도 눈가가 촉촉했다. 아이를 픽업하러 온 부모들 중 몇 명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마음이 조금 추스러지자, 아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들에게는 처음 겪는 상실. 그것도 2년 동안 같은 반을 했던 친구가 10살의 나이에 하늘나라에 간 것을 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어 아들에게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담임선생님이 건넨 종이

 

 

아들이 비보를 접한 것은 등교하자마자였다. 교실에 들어온 담임선생님은 침통한 표정으로 아이들에게 소식을 전했고, 몇몇 친구들은 곧바로 눈물을 터뜨렸다고 한다. 이어 담임선생님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종이를 꺼내며 아이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여기에 종이를 둘게요. 수업 도중에라도 마음이 힘들고 슬픈 기분이 들면 언제든지 가져다가 쓰고 싶은 것을 아무 거나 쓰세요. 그림을 그려도 되고, 하늘나라에 간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도 되고, 너무 슬퍼서 화가 나면, 화나는 마음을 표현해도 돼요. 그리고 수업 중에 갑자기 눈물이 나거나, 도저히 수업에 집중이 안 될 땐 도서관에 가서 혼자 시간을 보내거나 울고 와도 돼요."

 

아들이 전한 바에 따르면, 이날 그 어떤 선생님도 아이들에게 수업에 집중하라거나, 이럴 때일수록 더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고도, 그 친구를 위해서 우리가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느꼈을 심리적 충격을 이해해주고 그 슬픔을 충분히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하고 함께 울어줄 뿐이었다. 선생님들 역시 슬픔을 숨기지 않았다. 아들의 담임선생님은 "오늘은 마음이 너무 슬퍼서 수업하기가 힘들다"고 아이들에게 털어 놓았고, 지원 나온 대체교사가 이날 수업시간에 함께 했다.

 

상실은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심리적으로 깊은 충격과 슬픔을 남기는 경험이다. 특히, 어린 시절 생애 처음으로 겪는 상실은 성인이 되었을 때 여러 차례 맞닥뜨리게 될 또 다른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형성해 준다.

 

상실을 맞닥뜨릴 때 정서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슬픔을 충분히 표현해내야 한다는 점이다. 마음 안에서 밀려오는 슬픔을 힘들다고 해서 부인하거나 '괜찮다'고 포장해 버리면, 그 슬픔은 마음 더 깊은 곳으로 꽁꽁 숨어들어간다. 숨어든 슬픔은 예고도 없이 불쑥불쑥 찾아와 오랫동안 일상을 방해하곤 한다.

 

이런 면에서 선생님의 대처를 듣자 안심이 되었다. 이날 아들과 반 친구들은 수시로 종이를 가져다가 슬픔을 표현했고, 도서관에서 멍하게 앉아 있거나 한바탕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교장선생님의 메일 한 통

 

 

그리고 그날 오후, 교장선생님으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이 왔다. 교장선생님은 전체 학부모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다시 한 번 비보를 공식적으로 전했다. 그리고 당부했다. 슬픔에 빠진 유가족들이 다른 이들과 접촉하는 것을 꺼려하고 있으므로, 이들의 뜻을 존중해 달라고. 유가족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을 자제해 달라고 말이다. 

 

이어 교장선생님은 학교는 신속히 밴쿠버 교육청의 위기지원팀(VSB Critical Support Team)의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교육청의 위기지원팀은 학교 공동체에서 재난이나 구성원의 죽음 등 정신적인 상처를 남기는 일이 발생했을 경우, 심리적 문제를 비롯한 각종 어려움들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한다.

 

학생뿐 아니라 슬픔에 빠진 선생님들도 돕고, 때로는 대체 인력을 파견하기도 한다. 충격과 슬픔에 빠진 학교를 체계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언제든 아이들이 들를 수 있도록 상담센터를 열어 두었고, 학교와 교육청 소속의 상담사들이 도움을 제공할 채비를 마쳤다고 알렸다.

 

또한 교장선생님은 강조했다. 이번 일로 인해 아이들이 죽음에 관해 이야기를 하거나 물을 때 주의 깊게 들어주고 정직하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라고. 나아가 학교에서도 언제든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 묻고 이야기 하며, 슬픔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며 집에서도 함께 해달라고 당부했다.

 

교장 선생님이 보낸 메일을 보니 여전히 먹먹한 나의 마음이 조금은 따스해지는 듯 했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터부시하지 않고, 삶의 일부분으로 죽음을 이해하도록 도우려는 자세, 상실을 경험할 때 생기는 감정들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 유가족들을 존중하는 태도, 공동체 차원에서 상처를 극복해 가려는 노력. 아들의 학교는 가슴 아픈 상실을 경험할 때 반드시 해야 할, 그리고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차근차근 해내며 애도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모습들은 친구를 잃은 경험이 나와 내 아이를 비롯, 그 친구와 가까워 충격과 슬픔이 더 큰 몇몇만이 스스로 감당해내야 할 것이 아님을 알게 했다. 공동체 차원에서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은 시린 마음 한 켠에 훈훈함과 용기를 불어넣어 줬다.

 

물론, 아무리 함께하고 서로 위로하더라도 상실을 경험해내는 것은 분명 힘들고 아픈 일일 것이다. 그 충격 또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안다. 하지만 가정과 학교, 그리고 교육청까지 나서 함께 슬픔을 나누고 도우려는 모습들을 보니 이를 통해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그리고 학부모들도 한 단계 성숙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애써 축소하거나 감추려 하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며 함께 나눌 때 우리는 분명 이 슬픔을 감당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친구가 하늘나라에서는 더 이상 아프지 않길, 유가족들에게도 평화가 함께 하길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