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청객 모두에게 벌금형을 선고한 판사
미국 대공황 때 있었던 일입니다.
1935년 1월 어느 추운 겨울밤에 뉴욕 법원에서 재판이 열렸습니다.
남루한 옷을 입은 나이 든 여성이 법정에 나와 판사 앞에 섰습니다. 빵 한 덩이를 훔쳐 절도죄로 기소된 그 여성은 부끄러움으로 고개를 떨군 채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판사가 그 여성에게 물었습니다.
"빵을 훔친 것이 사실인가요?"
"그렇습니다"
"그것이 절도죄라는 것을 모르셨나요?"
그 여성은 고개를 들고 판사를 보며 답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배가 고파서 그랬습니다. 사위가 가족을 버렸고 딸은 병이 들어 어린 두 손자가 굶고 있습니다. 너무 어린아이들입니다"
나이 든 여성이 말을 마치자 법정이 술렁였습니다. 용서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빵 가게 주인은 단호했습니다.
“판사님, 본보기를 위해서라도 저 여성을 처벌해야 합니다.”
판사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잠시 후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당신은 분명히 법을 어겼습니다. 그러므로 본 법정은 10달러의 벌금형에 처합니다."
판결을 마친 뒤 판사는 주머니에서 10달러 지폐를 꺼내 자신의 모자에 담았습니다.
“이 돈은 벌금입니다. 그리고 나는 법정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50센트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 여성처럼 가난한 이웃이 빵을 훔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가난함에도 무관심했습니다. 이는 우리의 무관심에 대한 벌입니다.”
순간 방청석은 침묵에 쌓였습니다.
판사의 모자가 방청객들에 넘겨졌고 모두가 기꺼이 벌금을 냈습니다.
판사는 10달러의 벌금을 뺀 나머지 돈을 그 여성에게 전달했습니다.
재판정을 나서는 여성의 빰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이 판결을 내린 판사가 피오렐로 헨리 라과디아입니다. 그는 공정하면서도 가난한 이들에게 우호적인 명판결을 많이 내린 판사로 이름났습니다.
후에 시민들의 추대로 뉴욕시장이 돼 세 번이나 연임하며 시민들을 위해 봉사했다고 합니다. 시장 시절에는 뉴욕의 지하경제를 주무르고 있던 마피아 소탕작전을 성공적으로 벌이기도 했습니다.
1945년 그가 사망하자 뉴욕시는 퀸스에 설립된 공항을 라과디아 공항으로 이름 지어 그를 기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