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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콩 민주화의 선봉장, 지미 라이 빈과일보 회장

    이미지 : 위키피디아 퍼블릭 도메인

    지난 10일 홍콩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었던 지미 라이 빈과일보 회장이 12일 0시에 보석으로 풀려나면서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습니다.

    현재 서방 국가들에게는 "홍콩 언론 자유의 상징", 중국 당국에게는 "홍콩 혼란의 검은 손"이라 불릴 정도로 홍콩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투사가 되었지만, 본래 그는 운동가와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광저우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지미 라이는 국공 내전 이후 광저우가 공산화되면서 가족이 다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5살 때부터 폐품을 주워가며 겨우 생활을 이어나갔고, 이후에는 암시장에서 라이터를 팔거나 기차역 앞에서 짐을 나르는 등 허드렛일로 연명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홍콩에서 온 어떤 손님이 준 초콜릿을 맛보고 "언젠가 반드시 홍콩에서 살겠다"라고 다짐했다고 합니다.

     

    12살이 되던 해, 그는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아버지가 피신해있던 홍콩으로 밀항했습니다. 

    그는 가발공장, 의류회사 등을 다니며 매일 16시간씩 중노동을 하면서도, 밤에는 학업에 몰두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특히 그는 영어를 계속 독학했고, 나중에 20대가 되어서는 미국으로 출장을 다니며 영문 서적을 읽을 정도가 됐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칼 포퍼 등 사회주의를 비판한 학자들의 책에 푹 빠졌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쓴 '노예의 길'은 너무 많이 읽어 책장이 떨어져 나갈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그동안 쌓아온 경력을 토대로 섬유업계에 뛰어들기로 결심했습니다.

    1970년, 그는 조금씩 모아온 돈으로 생산공장 코미텍스를 설립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사업규모를 지속적으로 늘려나간 그는 새로운 패션 브랜드의 런칭을 기획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81년,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패션 브랜드 '지오다노'를 설립, 큰 성공을 거둡니다.

     

    기업인으로 승승장구하던 그가 자유를 위해 싸우기로 결심한 것은 1989년 일어난 천안문 6.4 항쟁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천안문에서 민주화와 개혁을 요구하던 시위대를 중국군이 유혈 진압하자, 그는 홍콩의 시위대에게 "내려오라. 우리는 분노했다" 라고 적힌 티셔츠를 만들어 나눠줬습니다. 

    1990년에는 넥스트미디어라는 언론사를 만들어 '일주간'이라는 잡지를 발행했습니다. 이 잡지에 리펑 중국 총리를 비난하는 공개서한 등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들을 실었습니다.

    이로 인해 지오다노 매장을 유지하기 어려워지는 등 중국 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당했고, "장사꾼은 정권에 맞설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사업을 처분하고 언론사에 매진하기로 결심합니다.

    이후 지오다노를 매각한 그는 1995년 빈과일보를 창간합니다. '빈과'는 중국어로 '사과'를 뜻하며, 지미 라이가 '아담과 이브가 사과를 먹지 않았다면 인류는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통해 '빈과일보'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성경의 사과를 딴 신문답게, 중국 당국이 감추려 하는 커다란 이슈를 계속 특종으로 발굴, 보도하면서 홍콩 제일의 신문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는 빈과일보를 통해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동시에, 반중성향의 정당 및 사회단체들을 지원했습니다.

    또한 2003년 홍콩 시민들의 7.1 반중 행진을 독려하기도 했으며, 2014년 홍콩 민주화운동, 2019년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등 각종 굵직한 시위에도 적극 참여했습니다.

    지난 해에는 미국의 펜스 부통령,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방문해 홍콩 문제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도 그는 "중국 공산당이 세계로부터 홍콩을 고립시킨다"라던지 "중국이 코로나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는 등 중국 공산당과 시진핑 주석을 비판했습니다. 

    때문에 그는 중국으로부터 수많은 위협에 시달렸으며, 심지어 화염병 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결국 지난 10일 그는 홍콩 국가보안법의 "반중단체 자금 지원"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12일 보석으로 풀려났습니다.

    이날 정오에 빈과일보 본사로 출근한 그는 "빈과일보는 분명히 버틸 수 있다. 어떤 압박을 받아도 모두 버텨야 한다."라며 사원들을 독려했으며, 13일 오전 빈과일보 시청자들과의 온라인 채팅에서는 자유의 소중함에 대해 언급하며 자유를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BBC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설령 이런 시련이 닥칠 줄 미리 알았다 하더라도, 자신은 홍콩 민주화 운동을 계속했을 것"이라며 이 길을 선택한 것에 한 점의 후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미 라이에 대한 중국 당국의 견제가 점차 심해지는 가운데, 언론시장의 불황, 반중 성향 언론의 광고수입 감소 등 빈과일보에도 여러 악재가 겹치고 있지만, 홍콩의 민주화에 대한 그의 뜻은 변함없이 견고해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