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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범수 카카오 의장 “전 재산 절반 기부”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55) 의장은 8일 카카오 및 계열사 전 임직원에게 보낸 신년 카카오톡 메시지에서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고 적었습니다.

     

    김 의장은 "격동의 시기에 사회문제가 다양한 방면에서 더욱 심화되는 것을 목도하며 더이상 결심을 더 늦추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 다짐은 공식적인 약속이 될 수 있도록 적절한 기부서약도 추진 중에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김 의장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할지는 이제 고민을 시작한 단계"라면서 "카카오가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사람을 찾고 지원해 나갈 생각"이라고 전했습니다. 

     

    김 의장의 재산은 개인 명의로 보유한 카카오 주식 1천250만주(전날 종가 기준 5조7천억원) 등 총 10조원이 넘습니다. 절반만 기부해도 5조 원 이상입니다. 

     

    김 의장은 1998년 한게임을 창업해 2000년 네이버와 합병시킨 다음 NHN 공동대표를 맡았고 2007년 자리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 뒤 한국으로 돌아와 2010년 카카오톡을 내놓았고, 2014년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인수했습니다. 

     

    다음은 김범수 의장이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 전문입니다. 카카오는 권위주의적 문화를 바꾸기 위해 직함 대신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릅니다. 브라이언은 김 의장의 닉네임입니다. 

     

    안녕하세요 크루여러분, 브라이언입니다.

     

    새로 생긴 크루전용 소통채널에 첫 콘텐츠를 보내게 되어 부담도 되고 영광스러운 마음도 있네요. 

     

    지난 1년은 코로나가 지속되면서 예상보다 변화가 심하고 어려운 한 해였습니다. 이런 시기에도 의미있는 성장을 이끌어내 주신 크루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모든 영역에서 비대면이 강화되는 상황과 급격한 기술 발전이 겹쳐지면서 세상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영역으로 빠르게 진입하였습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할 수 있는 이번 변화의 물결은 세상을 어느 곳으로 이끌고 갈지 두렵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이 시기에 이루어 온 것에 안주하지 않고 어떤 도전을 해 나가야 할까요? 언제나 그래왔듯이 공동체의 리더분들과 크루분들이 함께 답을 찾아가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도 지난 3월에 10주년을 맞아 사회문제 해결의 주체자가 되자고 제안드린 후 무엇을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요. 격동의 시기에 사회문제가 다양한 방면에서 더욱 심화되는 것을 목도하며 더이상 결심을 더 늦추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짐은 공식적인 약속이 될 수 있도록 적절한 기부서약도 추진중에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할지는 이제 고민을 시작한 단계이지만, 카카오가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사람을 찾고 지원해 나갈 생각입니다. 구체적인 플랜은 크루 여러분들에게 지속적으로 공유드리며 아이디어도 얻고 기회도 열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점점 기존의 방식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가 많아지면서, 함께 지혜를 모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만간 더 깊은 소통을 할 수 있는 크루간담회도 열어보려고 하니 그때 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다시 한번 크루 여러분들의 열정과 도전을 응원하며,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1. 2. 8. 브라이언

  • BTS, 청와대에서 청년들을 응원하다

    방탄소년단이 청년들에게 보낸 응원 메시지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19일 제1회 청년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방탄소년단은 "여러분의 훌륭한 생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그보다 더 미래의 청년을 위해, 앞장서 시대의 불빛이 되어주기를 바란다"라면서, 대한민국의 모든 청년들을 응원한다고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초청으로 기념식에 참가한 방탄소년단은 대표연설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겪었던 경험, 좌절 등을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미래의 청년 여러분, 우리가 서로 청년과 어른으로 마주하게 되어도, 이쪽이 맞는 길이다, 방법은 이게 좋다 등의 말 대신, 방탄소년단이 해낸 것처럼, 항상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지키고, 여러분이 함께 돕고 의지하며 (나아가고자 하는 길로) 갈 수 있게 격려하겠다" 라며 청년들을 응원했습니다. 

     

    아래는 방탄소년단의 대표연설 전문입니다.

     

    ▶RM 

     

    안녕하세요.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입니다.

     

    오늘 ‘제1회 청년의 날’을 맞아 이 자리에 섰습니다. 초대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탄생한 청년의 날이, 19년 후 진짜 청년이 되는 날, 문득 그날을 한 번 떠올려봅니다.

     

    저희는 오늘, 미래의 주인공이 되어있을, 그 날의 청년 분들께 메시지를 전해보려고 합니다.

     

    미래의 청년 여러분, 잘 지내고 계십니까.

     

    먼저, 전 세계 어딘가에서 지금도 도전을 멈추지 않고, 용기 있게 삶을 이끌고 계실 대한민국의 모든 청년분들께 응원의 말씀을 전합니다.

     

    지금부터는, 스물일곱. 많지 않은 나이지만, 롤러코스터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어느 일곱 청년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만약 미래의 삶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면, 2020년 저희의 이야기가 작은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이홉 

     

    빌보드 1위 가수. 글로벌 슈퍼스타.

     

    저희는 요즘, 이런 멋진 표현들을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너무 비현실적인 기분입니다.

     

    사실 시대와 관계없이, 아이돌, 아티스트라는 직업은 이정표가 없는 길과 같습니다.

     

    음악이란 큰 꿈 하나 메고 떠나지만, 내가 걷는 길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이제부터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 한참 가다가 너무 힘들어 멈췄을 때 조금만 더 가면 코앞이 낙원일 지, 낭떠러지인지 알 수 없습니다.

     

    저희의 시작은 그랬습니다.

     

     

    ▶슈가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데뷔 초, 방탄소년단은 오기와 패기, 열정과 독기를 무기삼아 감히 예측도 할 수 없는, 그런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보다 더, 성공하고 싶었습니다.

     

    작은 회사에서 데뷔해 많은 어려움, 걱정과 맞서가며, 어쩌면 무모하고, 어쩌면 바보 같을 만큼 앞뒤 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몰랐지만, 먼 훗날 다 추억이 될 것이고, 지금 힘든 것들은 다 지나갈 것이다, 그렇게 절실하게 주문을 외웠던 것 같습니다.

     

     

    ▶지민 

     

    쉬지 않고 달린 것 같은데, 분명 우리는 열심히 하고 있는데, 참 오랜 시간 동안 제자리였습니다.

     

    서로 예민해지고 다투고, 지쳐갈 때쯤, 일곱 명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저희의 일을 도와주시던 형들이 해 주시던 말씀, “너희를 다 이해할 순 없지만 마음이 많이 아프다. 함께 힘을 내 보자”.

     

    어쩌면 너무나 평범한 그 한 마디, 따뜻한 그 말이 저희에게는 큰 힘이 됐습니다.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청년들에게, 큰 불빛이 됐습니다.

     

     

    ▶진

     

    그 시절, 스무 살이 갓 지났던 저는 또 다른 현실과 싸워야 했습니다.

     

    데뷔하기 전엔, 노력만 하면 뭐든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데뷔를 하고 보니 노력보다는 재능이 필요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친구들을 따라가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의 자신감, 자존감은 크게 아파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문득 깨닫게 됐죠.

     

    진짜 내 모습은 뭘까? 지금 내 모습에 더 당당해져도 되지 않을까? 자신을 믿어보자.

     

     

    ▶제이홉 

     

    어느 새 방탄소년단이 걷던 길은 조금씩 넓어지고, 밝아졌습니다.

     

    팬들의 행복한 얼굴도 보이고, 그렇게 마냥,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큰 사랑과 관심만큼, 저희의 그림자도 점점 크고 무거워졌습니다.

     

    음악을 사랑했던 우리의 마음까지, 짓누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누구인가? 어떤 사랑을 받고 있는가?

     

    치열하게 자신을 다그치며, 되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뷔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쳤던 것 같습니다.

     

    이젠 내가 어디로 가는 건지, 좋아 보이는 이 길도, 내가 원치 않는 길은 아니었을지,

     

    목표를 잃어버린 듯 했습니다. 행복하지 않았고, 공허함이 밀려왔습니다.

     

    감정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스스로에게 솔직해지자. 감정 하나 하나까지 느끼고, 쏟아내자.

     

     

    ▶정국

     

    마치 거짓말처럼, 멤버들과 팬들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힘내 보기로 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길에서 시작했는데, 이젠 서로가 서로의 이정표가 된 것 같았습니다.

     

    함께 하는 것이 고맙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우리의 할 일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알게 해줬습니다.

     

    혼자 걸었다면, 이렇게 멀리 오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즐겁게 춤추며 달려가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RM

     

    2018년 무렵, 과분한 성공을 얻고, 일곱 멤버가 모두 방황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걷고 있는 길에 꽃밭이 펼쳐지고, 탐스런 열매가 떨어져도, 저희는 그 길이 늘 그럴 것이다, 믿지 못합니다.

     

    언제 다시 내리막이 시작되고, 또 폭우가 쏟아질지 모르기 때문이죠.

     

    그런 불안과 우울의 끝에서 저희 일곱은 다시 소년이 된 듯, 서로에게 꿈과 믿음을 불어넣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20년 8월이 됐습니다.

     

    빌보드 1위. 그리고 또 한 번 빌보드 1위.

     

    우리가 다시 일어섰을 때 주신 이 상들, 우리 일곱 명 모두, 눈물을 흘리며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더욱 감사한 건, 지난 십 년 동안, 포기와 낙오의 순간에 서로 단단히 붙잡고 의지가 되어 준 우리 멤버들과 팬들입니다.

     

     

    ▶진

     

    미래의 청년 여러분, 미래가 되어, 우리가 서로 청년과 어른으로 마주하게 되어도, 이쪽이 맞는 길이다. 방법은 이게 좋다. 이런 삶이 훌륭하다. 이것이 정답이다, 말하지 않겠습니다.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늘 강하고, 대단했습니다.

     

    대신, 순간의 행복과 불행이 인생 전체를 좌우하지 않도록, 2020년의 방탄소년단이 해낸 것처럼, 항상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지켜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함께 돕고 의지하며 갈 수 있게, 격려해드리겠습니다.

     

    어제의 청년들처럼, 오늘의 청년들처럼,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멈추지 않고 계속 씩씩하게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훌륭한 생각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그보다 더 미래의 청년을 위해, 앞장서 시대의 불빛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방탄소년단이 대한민국의 모든 청년 분들을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배우 김남길과 문화예술 NGO '길스토리'

    배우 김남길이 대표로 있는 '길스토리'는 문화와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문화예술 NGO다. [이미지 : 김남길 페이스북]

    김남길. ‘대세’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배우입니다.

    그에게는 또 다른 호칭이 있습니다. 문화예술 NGO ‘길스토리’ 대표가 그의 두 번째 ‘직함’입니다.

    길스토리의 목적은 “문화예술 캠페인으로 사회공헌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Rla 김 대표는 “예술이 가난을 구할 수는 없지만 위로할 수는 있다”고 합니다.

    김 대표가 길스토리를 만든 것은 2012년 3월입니다. 길스토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김 대표가 걸어온 ‘길’이 있습니다.

    길의 시작에는 ‘라파엘의 집’이 있습니다. 그는 2009년쯤 지인의 소개로 중증 장애 어린이를 돌보는 ‘라파엘의 집’에서 처음 경험한 봉사활동에서 조건없이 베푸는 기쁨을 경험했습니다. 배우로서 인정받으며 점점 바빠졌지만 그는 ‘라파엘의 집’을 오가는 길 위에 더욱 자주 섰습니다.

    김 대표의 나눔이 알려지면서 팬들도 봉사활동에 동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를 축하할 일이 생기면 쌀 화환을 만들어 ‘라파엘의 집’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 길은 김 대표를 인도네시아 재난구호 현장으로도 이끌었습니다. 2010년 1월 쓰나미로 폐허가 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 다녀온 다음날 이번에는 강진이 아이티를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김 대표는 인도네시아와 아이티의 피해 현장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세계와 나 W-재난과 인간’의 나래이션을 자원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김 대표는 ‘선한 영향력’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고민도 됐습니다. 드러나지 않는 선행을 베풀고 싶었지만 배우라는 직업은 그를 도드라지게 했습니다. 자신의 활동이 어떤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위선적 행동으로 비칠까 걱정도 됐습니다.

    ‘길스토리’는 그런 고민의 결과물입니다. 배우 김남길의 활동이 아니라 길스토리의 활동에 김남길이 참여하는 틀을 만들면 오해로부터 좀더 자유로울 수 있겠다 생각한 것이지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를 통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길스토리는 2013년 비영리단체로 한 단계 더 발전하게 됩니다. 계기는 필리핀에 큰 피해를 입힌 태풍 하이옌이었습니다. 필리핀의 한 팬이 그에게 ‘필리핀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편지와 함께 태풍 피해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길스토리는 그해 12월 이재민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한달만에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 미국, 호주 등 세계 각지에서 400명 가까운 후원자들이 3500만 원의 성금을 보내줬습니다. 당시 길스토리는 비영리단체가 아니라 법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모금과 집행 전 과정이 투명하게 이뤄지도록 철저히 관리했습니다. 홈페이지에 내용을 모두 올렸고요. 이를 계기로 김 대표는 길스토리를 비영리단체로 등록하기로 했고 2015년 1월 서울시 산하 비영리 민간단체가 됐습니다.

    문화예술을 통한 사회공헌을 표방하는 NGO로서 길스토리는 문화와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길이야기, 길을 읽어주는 남자’입니다. “세계 사람들에게 우리의 아름다운 길을 찾아 알리고 그 길에 담긴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입니다. 

    지금까지 북촌, 성북동, 제주, 한양도성 등을 주제로 영상과 오디오가이드를 제작했습니다. 김 대표가 나래이션을 맡았고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3개국 언어를 지원합니다.

    길스토리의 프로그램 제작에는 김 대표를 비롯해 작곡가, 통번역사, 카피라이터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프로보노로 참여해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길스토리에 돈과 시간과 열정을 쏟아붓게 된 이유에 대해 한 방송사에 출연해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다”며 겸손해 합니다. 김 대표의 활동에 대해 주위에서 “넌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착한 사람이고 좋은 사람이어서 좋은 일을 하려는 게 아니라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사회적인 책임을 다해야 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제가 그런 일을 하면서 조금씩 변하다보니까 사람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김 대표는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 ‘열혈사제’에 나왔던 대사를 늘 떠올린다고 합니다. 

    “성인에게도 과거는 있고 죄인에게도 미래는 있다”

  • ‘디자인 싱킹’의 전설 라이퍼 교수의 ‘초긍정 싱킹’

    래리 라이퍼 스탠퍼드대학 교수 [이미지 : Design Thinking DTINGRE 유튜브]

    래리 라이퍼 스탠퍼드대 교수의 인터뷰 글을 읽다 그가 가진 ‘초긍정’ 인생관에 깜짝 놀랐습니다.

     

    라이퍼 교수는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의 전설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스탠퍼드대 기계공학과 교수이자 디자인 연구소 소장도 맡고 있는 석학이지요.

     

    디자인 싱킹이 뭐냐고요?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 가운데 하나인데 콕 짚어 설명하기는 어려운 개념입니다.

     

    디자인 싱킹과 관련해 2009년 출간된 <디자인에 집중하라>에는 “모두가 대화에 참여하는 기회를 통해 다극화된 경험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디자인 싱킹을 얘기하려는 게 아니라 라이퍼 교수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며 한 말 가운데 공유하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인터뷰를 하던 기자가 귀가 전혀 들리지 않음에도 강의를 계속하고 연구하며 여행을 할 수 있는 열정의 동력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라이퍼 교수의 답이 ‘법문(法門)’입니다.

     

    “남은 생만 보면 나는 당신보다 운이 좋다. 이 세상 모든 소음을 안 들어도 되니까. 도시는 점점 더 시끄러워질 거다. 난 전철역에서 잠도 잘 수 있고, 언제 어디서나 명상도 할 수 있다. 아주 좋은 점이다.”

  • 박미현 터치포굿 대표, 쓰레기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사회적 기업가

    박미현 터치포굿 대표이사. [이미지 : 유튜브 캡쳐]

    박미현 터치포굿 대표는 ‘버려지는 자원과 버리는 마음을 터치하는 사회적 기업’을 운영합니다. 

     

    터치포굿은 현수막이나 광고판 등 짧은 시간 쓰이고 버려지는 자원을 재활용하는 업사이클링과 환경 교육이 주요 사업입니다. 업사이클링은 재활용품에 디자인을 도입하거나 기능을 높여 가치를 더한다는 뜻입니다. 

     

    박 대표가 터치포굿을 만든 것은 지구촌을 위협하는 쓰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플라스틱이나 비닐에 재활용 로고가 표시된 것은 말 그대로 모두 재활용이 되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는 깜짝 놀랐지요..

     

    그는 언론과 인터뷰를 할 때마다 500이라는 숫자를 자주 얘기합니다. 500년은 플라스틱이 썩는 데 걸리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박 대표는 이를 ‘인간이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가장 긴 숫자’라고 표현합니다. 

     

    우리 자녀의 자녀의 자녀가 태어나서 온통 플라스틱 쓰레기로 뒤덮인 세상을 접하고 그런 상황을 만든 사람을 찾아 책임을 물으려고 해도 그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그런 세월이 500년입니다. 그렇게 오랜 생명을 지닌 플라스틱이 지구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박 대표는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야 하지만 당장 주위에 널린 것들을 처리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업사이클링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한 2008년 터치포굿을 만든 이유입니다. “쓰레기가 더 이상 쓰레기가 되지 않도록 하는 순환고리를 만드는 일”을 시작한 것이지요.

     

    자동차 범퍼를 잘게 쪼개 만든 ‘버즈 줄넘기’ 페트병에서 추출한 섬유로 만든 담요, 선거현수막으로 만든 손가방, 이면지로 만든 포스트잇 등 터치포굿은 그 동안 쓰레기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마법으로 주위를 놀라게 했습니다. 

     

    특히 지난해에 만든 업사이클 블록은 터치포굿의 재활용 ‘열정’이 담긴 상품입니다. 텃치포굿은 플라스틱은 종류가 다양하고 안에 기름기가 끼여 있는 등 처리 비용이 많이 들어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고 업사이클로 재활용을 시도했습니다. 

     

    터치포굿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산업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인식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일이죠. 이를 위해 기업이나 기관 등을 대상으로 쓰레기 재활용을 위한 솔루션을 제공하거나 아이들을 위한 환경교육을 진행합니다.

     

    박 대표는 터치포굿 브랜드 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RmfkW-FWkh0)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버려지는 자원으로 좋은 상품을 만들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하고 싶어요”

  • 미국 갑부 깜짝 대학졸업 축사, “학자금 다 갚아주겠다”

    현지시간으로 지난 19일, 사모펀드 최고경영자 로버트 스미스가 미국 모어하우스 대학 졸업식에서 학생들의 학자금 대출을 전부 대신 갚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미지 : Glitter & Gumbo 유튜브 캡처]

    미국의 한 흑인 갑부가 대학 졸업생들의 학자금 대출을 모두 갚아주겠다고 밝혀 졸업식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습니다.

     

    미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사모펀드 최고경영자인 로버트 스미스는 현지 시간으로 19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모어하우스 대학에서 열린 졸업식 축하 연설에서 “우리 가족이 여러분의 학자금 대출을 갚기로 했다"라고 밝혔습니다.

     

    처음에 상당수 학생은 그 말 뜻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단상에서 스미스의 말을 들은 교수들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치기 시작하자 학생들도 그제서야 자신들이 들은 말이 진짜임을 알고 환호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미스가 갚겠다고 약속한 학자금 대출금액의 규모는 약 4000만 달러(477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모어하우스 대학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다닌 대학입니다. 영화감독 스파이크 리, 영화배우 사무엘 잭슨, 육상 스타 에드윈 모제스 등이 나온 미국의 대표적 흑인 대학입니다.

     

    스미스의 놀랄만한 ‘졸업 선물’에 졸업식장은 환호와 환성으로 뒤덮였습니다.

     

    스미스는 학생들이 받은 학위가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며 나중에 얻게 될 부, 성공, 재능 등을 주위에 나눌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는 이어 “학위는 사회적 계약으로 여러분의 재능과 열정을 헌신할 것을 요구한다"라며 “우리는 우리 사회와 마을이 함께 만들어낸 존재”라고 강조했습니다.

     

    코넬 대학을 졸업한 스미스는 2000년 사모펀드 비스타 에쿼티 파트너스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 93세 할머니, 마침내 꿈을 이루다

    현지시간으로 지난 14일, 조이스 로웬스타인(93)이 미국 조지아 주립대학 졸업식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미지 : 조지아 주립대학 페이스북]

    93세 할머니가 대학 졸업이라는 오랜 꿈을 이뤘습니다.

     

    조이스 로웬스타인 할머니는 지난 14일 미국 조지아주립대학 졸업식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다른 졸업생들과 달리 할머니는 1943년 대학에 가겠다고 마음을 먹은 뒤 그 꿈을 이루기까지 70년 가까운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할머니는 아내이자, 어머니, 할머니를 거쳐 지금은 증조할머니가 됐습니다. 골동품 판매와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도 했고요.

     

    로웬스타인 할머니는 2012년 대학에 가기로 마음을 먹고 조지아 주립대 예술역사학 전공으로 등록했고 7년 만에 졸업을 했습니다. 관절염과 기억력 감퇴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할머니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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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크 베커 조지아주립대 총장은 졸업식사에서 할머니를 소개했고 졸업생과 참석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큰 박수로 할머니를 축하했습니다. 

     

    이날 졸업식에는 11살 증손녀 라라 렌더만도 참석했습니다. 

     

    “할머니는 정말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친구들에게 올해 연세가 아흔셋인 증조할머니가 대학을 졸업했다고 말할 겁니다.”

  • 방탄소년단 만든 방시혁 대표의 서울대 졸업식 축사

    지난 26일,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서울대학교 졸업식에서 동문 자격으로 축사를 하고 있다. 방 대표는 이 축사에서 자신의 행복론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미지 출처 : 서울대학교]

    방탄소년단을 키워낸 방시혁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대표의 졸업 축사가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방 대표는 26일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동문 자격으로 축사를 했습니다. 방 대표는 이 학교 미학과 출신입니다.

     

    많은 언론에서 방 대표의 축사 내용을 부조리에 대한 분노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실제 그는 이날 축사에서 부조리에 분노하고 맞서 싸워 사회를 변화시키기를 바란다고 졸업생에게 당부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방 대표의 행복론입니다. 방 대표는 남들이 만들어 놓은 행복을 추구하려고 애쓰지 말고 자신이 행복이라고 정의한 소소한 일상의 한순간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고 합니다.

     

    다음은 방 대표가 후배들에게 주는 행복해지는 비결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끼려면 여러분 스스로가 어떨 때 행복한지 먼저 정의를 내려보고, 그러한 상황과 상태에 여러분을 놓을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셔야 합니다.”

     

    “자신이 정의하지 않은, 남이 만들어 놓은 행복을 추구하려고 정진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시간에 소소한 일상의 한순간 한순간들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노력하십시오. 무엇이 진짜로 여러분을 행복하게 하는지 고민하십시오.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남이 정해준 여러 가지 기준들을 좇지 않고, 일관된 본인의 기준에 따라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십시오. 본인이 행복한 상황을 정의하고, 이를 방해하는 것들을 제거하고, 끊임없이 이를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행복이 찾아올 겁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반복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소명이 되어 여러분의 앞길을 끌어주리라 생각합니다.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여러분의 행복이 상식에 기반하길 바랍니다. 공공의 선에 해를 끼치고 본인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는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욕망을 이루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 바깥세상에 대해 끊임없는 관심을 유지하고, 자신과 주변에 대해 애정과 관용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관심 속에서 여러분의 삶에 제기되는 문제들, 여러분의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것들을 해결하고 본인이 생각하는 상식을 구현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노력들은 궁극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이 자신의 행복을 좇는 것은 세상의 행복을 증대시키는 일이 될 것이며, 이것이 우리 학교의 졸업생에게 주어진 의무이기도 합니다.”

     

    다음은 방시혁 대표의 서울대 졸업식 축사 전문입니다. 

     

    존경하는 오세정 총장님, 여러 교수님,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이신 졸업생 여러분들과 가족, 친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대표 방시혁입니다.

     

    오늘은 날씨조차 여러분들의 졸업을 축하하듯 화창한 것 같습니다.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모교의 졸업식에서 축사를 한다는 건 무한한 영광이기에 총장님의 축사 제안을 덜컥 수락해 버렸지만 사실 이 자리에 서기까지 굉장히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저는 부정할 수 없는 기성세대입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꼰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닐까, 또 무엇보다,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첫걸음을 내딛는 여러분께 해드릴 유의미한 이야기가 제게 있는지 우려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졸업 축사란 것은 결국 연사가 졸업생에게, 혹은 선배가 후배에게, 자신이 인생에서 배운 것을 이야기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꼰대’스러움에 대한 걱정은 내려놓고, 오늘은 최대한 솔직한 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아마 제 자랑도 좀 하게 될 것 같고, 제 삶의 여정 중 여러분과 맞닿는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1980년대 말에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때는 공부를 조금 한다고 하면 법대를 가는 게 당연히 여겨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1지망도 법대였습니다. 법학에 대한 열망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실 그때의 저는, 어떤 열정도 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목표와 성공의 요건에, 별 자의식 없이 흔들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학력고사는 다가오고, 점수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재수를 각오하고 법대를 쓰느냐, 법대를 포기하고 안전하게 서울대를 가느냐의 갈림길에 놓이게 됐습니다. 저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조금 전 말씀드렸듯 법학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재수는 하기 싫었거든요. 그런데, 법대 다음으로 커트라인이 높은 과를 가려니까, 뭔가 되게 없어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과들을 뒤지다가 미학과를 발견했습니다. 법대를 기대하셨던 어른들의 반대는 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떨어지면 재수는 없다’라고 반 협박조로 (대응해) 무사히 미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미학과가 저와 너무 잘 맞았다는 것입니다. 미학이 뭘 하는 학문인지도 모르고 들어왔는데 수업들이 너무 재미있는 겁니다. 원래 예술도 좋아했었고 탁상공론을 좋아해서였는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렵다고 하는 미학과 수업이 너무 재미있어서 중학교 때부터 해왔던 음악은 뒷전으로 밀렸고 음악을 직업으로 하겠다는 생각은 완전히 잊게 됐습니다.

    그랬던 제가 어쩌다 음악 프로듀서가 되었을까요? 사실 기억이 잘 안 납니다. 많은 분들께서 서울대생이 음악을 직업으로 삼기까지는 대단한 에피소드나 굉장한 결단이 있었을 거라고 추측하시는데, 사실 아무리 돌이켜봐도 그런 결정적인 순간은 없었습니다. 그냥 흘러가다 보니 어느새 음악을 하고 있었다는 게 가장 적절한 표현 같습니다. 정말 허무하죠?

    저는 그렇게 허무하게, 뭔가에 홀린 듯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1997년부터 직업 프로듀서의 길에 들어서 박진영 씨와 함께 JYP라는 회사를 창업하고, 그 후 독립해서 지금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자 프로듀서로 살고 있습니다. 우스운 게, 독립한 후에도 수많은 선택지가 있었는데 왜 회사를 차리겠다고 생각했는지 선택한 이유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서두부터 제 얘기를 이렇게 길게 한 이유는, 제 인생에 있었던 중요한 결정들, 훗날 보면 의미심장해 보이는 순간들이 사실은 별 의미가 없었다는 것. 때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유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저는 사실 큰 그림을 그리는 야망가도 아니고, 원대한 꿈을 꾸는 사람도 아닙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구체적인 꿈 자체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번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에 따라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요즘 저와 방탄소년단,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행보를 보면 이런 말이 믿기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방탄소년단은 빌보드에서 2년 연속 톱 소셜 아티스트상을 수상했고, 4만 석 규모의 뉴욕 시티필드 공연을 순식간에 매진시켰습니다. 얼마 전에는 그래미 어워드에 시상자로 초청받으면서 또 하나의 ‘최초’ 기록을 세웠습니다. 외신에서는 감히 ‘유튜브 시대의 비틀즈’라는 과찬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현재 전 세계 주요 지역 스타디움에서 월드투어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아티스트의 반열에까지 올라가게 됐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저는 영광스럽게도 빌보드가 뽑은 25인의 혁신가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고, 저희 회사 역시 엔터테인먼트 업계 혁신의 아이콘이자 유니콘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아마 뉴스를 통해 이런 이야기를 접하셨을 때 이런 성공 뒤에는 분명 원대한 꿈이 있었거나, 방시혁은 엄청난 야심가여서 큰 미래를 그려놓고 이를 차근차근 실현해가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야심은 둘째치고 꿈도 없는 사람이라고 하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으실 겁니다. 매번 하고 싶은 것들을 아무렇게나 하고 그렇게 선택하다 보니 어쩌다 이 자리까지 왔다? 물론 그런 말이 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이야기를 잠깐 바꿔 볼게요.

    여러분! 저는 꿈은 없지만 불만은 엄청 많은 사람입니다. 얼마 전에 이 표현을 찾아냈는데 이게 저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 같습니다. 오늘의 저와 빅히트가 있기까지, 제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분명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로, ‘불만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는 타협이 너무 많습니다. 분명 더 잘 할 방법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튀기 싫어서, 일 만드는 게 껄끄러우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폐 끼치는 게 싫어서, 혹은 원래 그렇게 했으니까, 갖가지 이유로 입을 다물고 현실에 안주하는데요. 전 태생적으로 그걸 못 하겠습니다. 제 일은 물론, 직접적으로 제 일이 아닌 경우에도 최선이 아닌 상황에 대해서 불만을 제기하게 되고 그럼에도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만이 분노로까지 변하게 됩니다.

    아마도 ‘위대한 탄생’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의 멘토로 저를 기억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참가자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을 때 분노를 폭발시키는 제 모습을 기억하실 겁니다. 굉장히 많이 비호감이었죠? 그때 이후 그런 형태의 분노 표출이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됐고, 이제는 그렇게 분노를 폭발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지만 그 모습이 제가 ‘불만 많은 사람’이라는 걸 설명하기에 좋은 예인 거 같아서 잠깐 언급했습니다.

    그런 저의 성정은 제 작업과 제가 만든 회사의 일에도 똑같이 발휘됐습니다. 최고가 아닌 차선을 택하는 ‘무사안일’에 분노했고, 더 완벽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데 여러 상황을 핑계로 적당한 선에서 끝내려는 관습과 관행에 화를 냈습니다. 그중에서도 저를 가장 불행하게 한 것은 음악 산업이 처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산업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고, 불공정과 불합리가 팽배한 곳이었습니다. 음악을 직업으로 삼고, 이 세계를 알아가면서 점점 저의 분노는 더 커졌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음악이 세상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이용당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작곡가로 시작해 음악 산업에 종사한 지 21년째인데, 음악이 좋아서 이 업에 뛰어든 동료와 후배들은 여전히 현실에 좌절하고 힘들어합니다. 음악 산업이 안고 있는 악습들, 불공정 거래 관행, 그리고 사회적 저평가. 그로 인해, 업계 종사자들은 어디 가서 음악 산업에 종사한다고 이야기하길 부끄러워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여전히 음악 회사를 일은 많이 시키면서 보상은 적게 주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우리 고객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케이팝 콘텐츠를 사랑하고, 이를 세계화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팬들은 지금도 ‘빠순이’로 비하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아이돌 음악을 좋아한다고 떳떳하게 말하지도 못합니다. 업계와 사회가 나서서 찬양하고 최고의 예우를 해도 모자랄 판인데 왜 이런 대우를 하는지, 저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고 화가 납니다.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며 전 세계 음악팬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는 우리 아티스트들은 근거 없는 익명의 비난에 힘들어하고 상처받고 있습니다. 우리 피, 땀, 눈물의 결실인 콘텐츠 역시 부당하게 유통되거나 저평가되며 부도덕한 사람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수단이 되는 경우가 아직도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분노하게 되고 이런 문제들과 싸워 왔고 아직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저는 혁명가는 아닙니다. 다만, 음악 산업의 불합리, 부조리에 대해서 저는 간과할 수 없습니다. 외면하고 안주하고 타협하는 것은, 제가 살아가는 방식이 아닙니다. 원대한 꿈이 있거나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것이 지금 제 눈앞에 있고 저는 그것이 부당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그 분노가 제 소명이 됐다고 느낍니다. 음악 산업 종사자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고 온당한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화를 내는 것. 아티스트와 팬들에 대해 부당한 비난과 폄하에 분노하는 것. 제가 생각하는 상식이 구현되도록 싸우는 것. 그것은 평생을 사랑하고 함께 한 음악에 대한 저의 예의이기도 하고, 팬들과 아티스트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이기도 하면서 마지막으로 제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유일한 방법 같습니다.

     

    저는 행복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일 학업과 업무에 시달리던 고단한 몸을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뽀송뽀송한 이불 속에 들어갈 때 행복하지 않나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렇게 ‘감정적으로’ 행복한 것들도 있지만, ‘이성적으로’ 인식하는 행복한 상황도 있을 겁니다. 어떠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끼려면 여러분 스스로가 어떨 때 행복한지 먼저 정의를 내려보고, 그러한 상황과 상태에 여러분을 놓을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셔야 합니다

    저의 경우는, 두 번째 행복의 정의에 입각해서, 저의 행복을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회사가 하는 일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특히 우리의 고객인 젊은 친구들이 자신만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더 나아가 산업적으로는, “음악 산업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킴으로써 음악 산업을 발전시키고 종사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기여하는 것.” 그래서 그 변화를 저와 우리 빅히트가 이뤄내는 게 저의 행복입니다.

     

    자, 이제 돌아갑시다.

    제가 앞에서, 저는 구체적이거나, 커다란 꿈이 없다고 했죠? 맞습니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저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어떤 기업이 될지, 방탄소년단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심지어는 제가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지에 대해서도 그림 같은 건 없습니다.

    그럼에도 현재 저의 모습을 외부에서 보면 커다란 꿈을 향해 끊임없이 정진하는 듯 보일 겁니다. 그렇게 개인적인 꿈을 이뤄가는 과정에서 저와 제 주변 사람들, 제가 봉사해야 하는 고객들의 행복까지 빚어낸 매우 이상적인 상황으로 보일 겁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렸듯, 이런 시선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저는 별다른 꿈 대신 분노가 있었습니다. 납득할 수 없는 현실, 저를 불행하게 하는 상황과 싸우고, 화를 내고, 분노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것이 저를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었고 제가 멈출 수 없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니 많은 분들께 위로와 행복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제 꿈이 아니라 제 불만이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꿈 없이 살 겁니다. 알지 못하는 미래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시간을 쓸 바에, 지금 주어진 납득할 수 없는 문제를 개선해 나가겠습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음악 산업이 처한 수많은 문제들을 개선하는 데 매진할 것이며, 방탄소년단은 아시아 밴드, 혹은 케이팝 밴드의 태생적 한계라고 여겨지는 벽을 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겁니다. 저 역시 이런 일을 수행하는 데 부끄럽지 않게 끊임없이 반성하고 제 자신을 갈고닦겠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지금 큰 꿈이 없다고 구체적인 미래의 모습을 그리지 못했다고 자괴감을 느끼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자신이 정의하지 않은, 남이 만들어 놓은 행복을 추구하려고 정진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시간에 소소한 일상의 한순간 한순간들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노력하십시오. 무엇이 진짜로 여러분을 행복하게 하는지 고민하십시오.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남이 정해준 여러 가지 기준들을 좇지 않고, 일관된 본인의 기준에 따라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십시오. 본인이 행복한 상황을 정의하고, 이를 방해하는 것들을 제거하고, 끊임없이 이를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행복이 찾아올 겁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반복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소명이 되어 여러분의 앞길을 끌어주리라 생각합니다.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여러분의 행복이 상식에 기반하길 바랍니다. 공공의 선에 해를 끼치고 본인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는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욕망을 이루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 바깥세상에 대해 끊임없는 관심을 유지하고, 자신과 주변에 대해 애정과 관용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관심 속에서 여러분의 삶에 제기되는 문제들, 여러분의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것들을 해결하고 본인이 생각하는 상식을 구현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노력들은 궁극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이 자신의 행복을 좇는 것은 세상의 행복을 증대시키는 일이 될 것이며, 이것이 우리 학교의 졸업생에게 주어진 의무이기도 합니다.

     

    이쯤에서 두서없는 저의 축사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대학이라는 일생에 매우 중요한 또 하나의 과정을 잘 마무리하신 여러분, 다시 한 번 격하게 축하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시작될 인생의 다음 단계들을 행복 속에 잘 살아내시고 10년 후, 20년 후에, “내가 제법 잘 살아왔구나”라고 자평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제 묘비에 “불만 많던 방시혁, 행복하게 살다 좋은 사람으로 축복받으며 눈 감음”이라고 적히면 좋겠습니다. 상식이 통하고 음악 콘텐츠와 그 소비자가 정당한 평가를 받는 그날까지, 저 또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갈 겁니다. 격하게 분노하고, 소소하게 행복을 느끼면서 말입니다.

  • 노벨상 수상자를 만든 강의

    중국 출신의 물리학자 양첸닝 교수는 3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고명한 과학자다. 그는 학생시절 그를 포함한 단 두 사람을 앞에 두고 강의에 열과 성의를 다한 첸드리스카 박사 덕분에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아 Alanmak (https://en.wikipedia.org/wiki/File:CNYang.jpg), CC BY-SA 3.0 라이센스]

    모든 존재가 위대합니다. 모든 순간이 귀하고요. 

     

    어느 순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걸 정성을 기울인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들인 정성이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떤 꽃을 피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미국의 천체 물리학자 첸드리스카 박사가 그랬습니다. 위스콘신 주의 천체연구소에서 일하던 첸드리스카 박사는 어느 날 시카고 대학교에서 겨울 방학 동안에 강의를 요청받았습니다. 그러겠다고 했지요. 

     

    그런데 얼마 뒤 대학으로부터 강의를 취소해야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수강 신청한 학생이 두 명밖에 없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첸드리스카 박사는 학생 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다만 수강 신청을 한 학생들에 대해 물었습니다. 학교 쪽에서는 두 학생이 매우 열정적이고 향학열이 불타는 젊은이들이라고 했습니다. 

     

    첸드리스카 박사는 그 말을 듣고 강의를 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시카고의 겨울은 매우 춥습니다. 눈보라가 치는 한겨울 날씨에도 첸드리스카 박사는 연구소에서 두 시간이나 걸리는 길을 오가며 한 번도 빠트리지 않고 열정적인 강의를 했습니다.  

     

    그로부터 십 년 뒤 첸드리스카 박사의 강의를 들었던 두 학생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합니다. 

     

    첸드리스카 박사에게 강의를 들었던 두 학생이 놀랍게도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한 사람은 첸닝 프랭클린 양 박사이고 다른 한 사람은 충다오 리 박사였습니다. 두 사람은 중국계 미국 과학자들이지요. 

     

    두 사람은 노벨상 수상과 관련해 10년 전 두 사람을 앞에 두고 강의에 열과 성의를 다한 첸드리스카 박사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하는 일 가운데 하찮은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일이 어떤 형태로든 세상에 영향을 미칩니다.

  • 119보다 더 빠른 응급치료 자원봉사단, 유나이티드 헤지젤라

    응급환자의 생사를 결정짓는 것은 다름 아닌 '골든타임'입니다. 골든타임 내에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통이 혼잡하거나, 앰뷸런스가 가기 어려운 지역이라든지 등으로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도 있는데요.

    예루살렘에서는 '유나이티드 헤지젤라(United Hatzalah)' 덕분에 어디든 3분 내로 응급치료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유나이티드 헤지젤라(United Hatzalah)'는 1992년에 엘리 비어(Eli Beer)가 설립한 '무료 응급의료 서비스 단체 (EMS)'입니다. 현재 약 5000명 이상의 자원봉사자들이 '앰뷰사이클(Ambucycle)'이라고 불리는 응급치료용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이스라엘 전 지역에서 구조대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유나이티드 헤지젤라 대원이 타는 앰뷰사이클에는 의료장비함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응급 의료장비, 산소공급기, 자동심장충격기(AED)를 포함해, 앰뷸런스에서 볼 수 있는 의료 장비들이 담겨 있습니다. 물론 대원들은 이 모든 장비들을 다룰 수 있습니다. 

     

    이들이 현장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3분입니다. 환자가 발생하면 단체의 지휘본부는 GPS 기반의 첨단 파견 기술을 사용해 가장 가까운 대원을 확인하고, 모바일 장치를 통해 그를 현장으로 안내합니다. 혼잡한 교통, 골목길 등 앰뷸런스에겐 장애가 되는 요소들도 앰뷰사이클에겐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엘리 비어가 이 단체를 만들게 된 것은 그가 어릴 때 목격한 사고 현장 때문이었습니다.

     

    비어가 6살이었을 때, 버스가 그의 근처에서 폭발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사람과 장비가 부족해 구조와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비어는 사고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하는 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15살이 되면서 앰뷸런스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습니다.

     

    비어가 17살이 되었을 때, 그는 응급상황에 더 빨리 대처하려면 좀 더 유연한 응급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주변에서 응급 상황이 벌어지면 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달려와 생명을 구할 자원봉사 구조대를 만든 이유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구조대는 규모가 점차 커져 전국적으로 확대되었고, 현재는 연간 300,000 명이 넘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5,000 명 이상의 자원봉사 단체로 성장했습니다. 모든 서비스는 인종이나 종교에 관계없이 모든 시민에게 무료로 제공됩니다.

     

    단체의 대변인인 다니엘 캐츤스테인(Daniel Katzenstein)은 '브레이킹 이스라엘 뉴스(Breaking Israel News)'와의 인터뷰에서 단체가 운용하는 앰뷰사이클과 일반적인 앰뷸런스의 차이점은 (실시간으로 소식이 전해지는) 트위터와 다음날 볼 수 있는 신문과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그는 대원 1명 당 연간 평균 480건의 출동 전화를 받는데, 그중 25%가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위급한 상황이며, 3년간 360여 명의 생명을 구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심장질환 학회(Israel Heart Society)에 따르면 단체가 가 설립된 이래로 심장 마비로 사망한 비율이 50 % 감소했다고 합니다. 심장마비에 대한 응급치료 여부는 긴급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을 판단하는 가장 좋은 척도입니다.

     

    유나이티드 헤지젤라의 이러한 활동은 세계적으로 성과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설립자 엘리 비어는 2011년 이스라엘 시몬 페레스(Shimon Peres) 대통령으로부터 '자원봉사자를 위한 대통령 상'을 수상했습니다. 이어 2012년에는 세계 경제포럼인 다보스(Davos)에서 '젊은 글로벌 리더'로 선정되었으며, 2016년에는 랍비 쉬무엘리 보테크(Rabbi Shmueli Boteach)가 설립한 '세계 가치 네트워크(World Values Network)'로부터 '인간 생명의 챔피온 상(Champion of Human Life Award)을 받았습니다. 

     

    또한, 이 단체는 2015년 3월 워싱턴 DC에서 열린 AIPAC (American-Israel Public Affairs Committee )의 혁신 쇼케이스에서 이스라엘에서 개발된 긴급 구조에 대한 신기술을 선보여 세계 응급 기술의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유나이티드 헤지젤라의 목표는 전 세계에 유나이티드 헤지젤라의 구명활동 모델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2015년부터 그들은 미국 뉴저지 주의 저지시티를 포함해, 남미를 비롯한 몇몇 국가에 지점을 설립해 구조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2015년 네팔 지진, 2016년 아이티 허리케인 등 국제적 원조가 필요한 재난에도 적극 나서 구명활동을 펼쳤습니다.

     

    "우리가 활동을 시작한 국가는 (환자의 연락을 받고) 현장에 도착하는 시간이 불과 2분 35초로 단축되었습니다. 큰 재난에는 우리의 응급 의료 전문가가 가장 피해가 심한 마을과 도시로 출동했으며, 가장 열악한 지역에서 앞서 활동했습니다. 우리 대원들의 열정과 전문성은 많은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