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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 마음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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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골로 간 교수, 반찬가게를 내다

    푸른누리 임은상 대표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충북 옥천군으로 귀촌했습니다. 평소 마음공부에 관심이 많았는데 “삼라만상에 깃든 하늘을 섬기라”라는 가르침을 좌우명으로 삼아 산골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이므로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보살피신다고 합니다. 또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합니다. 불가에서는 우리는 물론 만물이 부처라고 하구요. 그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해보고 싶어요.”

     

    실제 임 대표는 자신이 받은 가르침대로 모든 자연물에 깃든 신성을 늘 생각하며 텃밭 농사를 짓고 반찬을 만들기 위해 정성을 기울입니다. 

     

    놀라운 일은 마음먹기에 따라 작물의 상태가 달라진다는 겁니다.

     

    지난해 고추를 기를 때 그를 확연히 깨달았습니다. 임 대표는 밭에서 자라는 고추를 향해 사랑하는 마음을 자주 보냈습니다. 또 하늘이 주시는 축복과 사랑의 에너지가 자신을 통해 고추는 물론 텃밭의 모든 생명에게 전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아가 텃밭의 고추와 그 안에 있는 생명이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 온 세상에 축복의 에너지를 보내주는 신성하고 위대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고 그런 모습을 자주 떠올렸습니다.

     

    그래서인지 지난해 고추 농사는 대성공이었습니다. 고추에 약을 뿌리지 않으면 탄저병이 찾아오는 일이 잦은 데 임 대표 텃밭의 고추는 빨갛게 익을 때까지 건강했습니다.

     

    임 대표는 산야초를 채취하고 텃밭 작물로 장아찌를 만들 때도 그 마음을 지키려 합니다.

     

    “원불교에서는 처처불상 사사불공 무시선 무처선이라고 합니다. 세상 만물이 부처님이고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불공드리듯 하라는 거지요 그렇게 하면 참선이라는 게 따로 없고 도량이나 기도처라는 것도 따로 없지 않을까요?”

     

    그렇게 텃밭 농사를 짓고 반찬을 만들어서인지 임 대표의 시골집에 놀러 온 이들은 모두 음식이 너무 맛있다고 놀라워했습니다.

     

    임 대표는 그런 마음을 담은 반찬을 도시인들에게 나눠보라는 지인들의 권고에 ‘겁 없이’ 반찬가게를 냈습니다. 자신이 사는 옥천군 청산면의 느낌을 담아 가게 이름을 푸른누리라고 지었습니다. 얼마 전 네이버를 포함 쇼핑몰에 등록도 했습니다. 

     

    반찬가게 주인장으로 만든 첫 ‘작품’은 바쁜 도시인들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장아찌입니다. 임 대표는 오가피, 머위, 취나물, 두릅 등 산속에서 채취한 자연산 산야초로만 장아찌를 만들었습니다. 친환경 산양삼을 넣어 채수를 끓였고 설탕 대신 올리고당을 조금 넣고 산나무를 우려 넣어 단맛을 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갑자기 반찬가게 주인이 되어서 이게 무슨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힘들지만 재미있습니다. 삶 속에서 명상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는 것도 좋구요”

     

    임 대표의 장아찌 가게를 찾아가는 링크입니다.

     
  • 가난한 부자, 부유한 가난뱅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책 <수도자처럼 생각하기>의 저자 제이 셰티가 올린 동영상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어느날 한 부자가 어린 딸을 자그마한 외딴 마을에 데리고 갔습니다. 딸이 가난을 겪어보고 무언가를 배울 수 있기를 바라서였습니다. 가난하지 않으려면 열심히 공부해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마음먹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겠지요. 

     

    부자 아빠는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한 그 마을의 작은 농장에서 딸과 함께 며칠을 지냈습니다. 그들을 도우려 노력하면서 말이죠. 

     

    아빠 : 이번 여행에서 보거나 배운 게 있니? 

    딸 : 아주 굉장한 여행이었어. 나는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 

    아빠 :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지 알았지? 

     

    딸 : 그럼, 우리는 개 한마리를 키우는데 그들은 네 마리를 키워. 우리는 마당 한가운데 풀장이 있는데 그 분들은 끝이 없어 보이는 호수를 갖고 있어. 우리는 정원을 밝히기 위해 조명을 설치했지만 그 가족은 별빛을 조명삼아 지내. 우리집 창문에서 보면 빌딩만 보이지만 그집에서는 멋진 일몰을 볼 수 있었지. 우리는 음식을 사먹지만 그분들은 자신들이 먹을 것을 직접 길러. 우리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담장을 세웠지만 그분들은 언제든지 자신들을 도울 친구와 마을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아.” 

     

    “아빠, 우리가 얼마나 가난한 지를 알려줘서 정말 고마워.” 

  • 행복으로 가는 길은 애쓰지 않고 맡기기

    어떤 분이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더 이상 행복해지려고 애쓰지 않으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목적을 ‘행복해지기 위해’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죠. “그럼 불행해져도 좋다는 말인가?” 이런 극단적인 생각까지도 떠올랐다 사라집니다. 

     

    “그런데 나에게 ‘행복’이란 무엇이지?” 이런 의문도 듭니다. ‘행복’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저 ‘행복해지고 싶다’는 욕망 하나 만으로 모든 걸 참고 인내하며 아등바등 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정말 ‘행복’이란 뭘까요? 

     

    불과 5,6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쌀밥’ 실컷 먹는 게 꿈이었습니다. 고기를 실컷 먹는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습니다. 그저 보리밥이라도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그런 것은 더 이상 ‘꿈’이 아닙니다. 요즘은 배불리 먹기보다는 오히려 어떻게 하면 덜 먹어 살 빼는가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처음 아기를 낳아 마주 하게 되는 감격의 순간, 거의 모든 부모는 손가락 발가락 다 있고, 건강한 자식 낳은 것 만으로도 행복해 합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부모의 소망은 “건강하게만 자라다오”이지요. 

     

    하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부터 성적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성적이 나쁘면 아이를 잡도리합니다. 자아가 성숙해지면서 아이가 부모에 반항을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가족 간 갈등이 심해지면 서로 불행하다고 느끼게 될 것은 뻔한 일입니다. 

     

    이렇게 ‘행복’은 시간에 따라, 상황에 따라, 가치관에 따라 수시로 변합니다. 절대적인 행복이란 없고 모든 행복은 상대적입니다. 어쩌면 행복은 내 마음먹기에 달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하나 ‘애쓰지 않는다’에 대해서도 생각해봅니다. 

     

    아침에 잠이 깨서 세수하고 밥 먹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직장에 가는 일상을 한번 생각해봅니다. 어떻게 아침이 되어 저절로 눈이 떠졌을까요? 어떻게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와 세수를 하고 세수를 한 물은 하수구로 흘러 내려갈까요? 벼에서 쌀이 만들어져 밥이 된 것은 어떻고요? 손이 뜻대로 움직여 숟가락으로 밥을 퍼서 입으로 가져가는 것은 어떤가요? 다행히 나의 위장은 잘 움직여 소화를 시키고 소장, 대장 등 오장육부가 알아서 움직입니다. 

     

    사고로 사지가 마비되었던 분이 재활 치료에 성공해서 손가락 한 개를 움직일 수 있었을 때 그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환호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 시각으로 보자면 기적 아닌 일이 없습니다. 

     

    사실 많은 일들이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한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나고, 먹고 자라고, 병들어 죽기까지 모두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모든 걸 하늘에 맡기고 편안한 마음으로 매 순간을 살면 어떨까요? 

    편안한 우주의 기운이 나의 마음에 감응해 하늘 보시기에 가장 좋은 일이 벌어지게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