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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솔라카우, 아프리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다

    이미지 : YOLK 홈페이지

    소는 누가 키우나?

    아프리카에서 자녀를 학교에 보내라고 하면 부모들이 보이는 반응입니다.
     
    아프리카의 많은 시골 가정에서는 생계로 소와 양을 키웁니다. 가축을 돌보는 일은 주로 아이들에게 맡겨지지요. 부모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 일손이 사라지는 셈입니다.
     
    게다가 여자 아이들은 10대 중반이 되면 시집을 보내는 곳도 적지 않아 교육을 받을 기회는 더욱 적습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오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은행은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부모들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조건부 현금 지급(CCT: Conditional Cash Transfer) 제도를 가구당 월 13달러를 지급했습니다.
     
    부모들은 당연히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습니다. 아이들에 일을 시켜 벌 수 있는 돈을 공짜로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지요. 하지만 이는 재정문제 때문에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기업 요크(YOLK)는 다른 데서 답을 찾았습니다. 바로 태양이지요.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태양광 에너지입니다.
     
    아프리카는 빈곤층이 많지만 휴대폰 보급률은 90%를 훨씬 넘습니다. 교통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해 이곳 사람들은 많은 일을 휴대폰을 통해 해결합니다. 금융은 물론 공공기관에서 처리해야하는 일도 그렇습니다.
     
    생계에 꼭 필요한 수단이기 때문에 휴대폰을 장만하기는 하지만 가난한 이들에게는 충전이 큰 문제입니다. 소득의 10% 가량이 충전비에 쓰인다고 합니다.
     
    게다가 전기 인프라가 부족해 도시 외곽이나 시골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소득의 10% 이상을 배터리 충전에 쓰고 있다고 합니다. 배터리 충전을 위해 하루 4시간씩 걸어서 충전소를 찾아가기도 합니다.
     
    장성은 요크 대표는 이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아디이어가 떠올랐습니다. 학교에서 태양광으로 충전한 전기를 나눠주면 아이들을 학교에 오게 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지요.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태양광 전기 충전 시스템 솔라카우(Solar Cow)입니다. 솔라카우는 소 모양의 철골 구조에 태양광 모듈이 설치되어 있고 그 아래에는 충전지를 꽂는 슬롯이 붙어 있습니다.
     
    등교한 아이들이 맨 먼저 하는 일이 솔라카우에 충전지를 꽂는 일입니다. 충전지에 전기가 가득 채워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4~5시간.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고 하교할 때 충전된 보조배터리를 들고 집으로 갑니다.
     
    솔라카우는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면 부모들에게 필요한 전기를 공급하는 보상 시스템인 셈입니다.
     
    아이들은 아동노동에서 벗어나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부모들은 아이 노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준의 대가를 전기로 받아 휴대폰을 충전하거나 필요한 일에 씁니다.
     
    무엇보다 공짜로 무한히 쏟아지는 태양광 에너지를 이용하기 때문에 세계은행의 현금 지급에 비해 지속가능성 월등하게 높습니다.
     
    솔라카우 한 ‘마리’는 250가구에서 쓸 수 있는 태양광 에너지를 생산합니다. 아이들이 들고 와 충전해 갖고 가는 보조배터리 1개의 용량은 2900mA입니다. 휴대폰 한 대를 충전하고도 전등 4시간을 켤 수 있는 양이라고 합니다.
     
    요크의 첫 번째 솔라카우 프로젝트는 2018년 케냐의 오지 마을 포콧의 한 학교에서 시작됐습니다. 지금은 케냐 3곳, 탄자니아 2곳, 캄보디아 1곳의 학교에 총 8대가 설치됐습니다.
     
    요크의 아이들 학교 프로젝트의 성과는 어땠을까요? 2년간 성과를 분석한 결과 아이들이 학교에 출석하는 비율이 10% 늘었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가정의 숫자도 늘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자존감이 크게 높아졌다고 합니다, 자신이 가족에게 필요한 중요한 일을 한다는 생각이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여준 겁니다.
     
    솔라카우에는 많은 관심이 쏟아졌습니다. 구글에서 관심을 가졌고 로이터,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보도됐고 미국 시사주간지는 솔라카우를 ‘최고의 발명품’으로 선정했습니다.
     
    요크는 솔라카우 프로젝트를 케냐 뿐 아니라 탄자니아, 콩고 등 아프리카 다른 나라로 확대해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태양처럼 빛나는 희망을 심어주겠다는 포부를 품고 있습니다.

  • 한 러시아인이 본 메르켈 총리의 아름다운 퇴임

    다음 글은 한 러시아 사람이 메르켈 총리의 퇴임을 보며 쓴 글입니다. 김진국 유엔 대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번역해 올렸습니다. 

    독일과 지구촌을 위한 메르켈 총리의 헌신과 아름다운 퇴임을 축하합니다.

     

    [잘가요! 메르켈!!]

     

    독일은 6 분간의 따뜻한 박수로 메르켈에게 작별 인사를했다.

    독일인들은 그녀를 선택 하였고, 그녀는 18년 동안 능력, 수완, 헌신 및 성실함으로 8천만 독일인들을 이끌었다.

    그가 나라를 18 년 동안을 통치하는 동안 위반과 비리는 없었고 그녀는 어떤 친척도 지도부에 임명하지 않았다.

    그녀는 영광스러운 지도자인 척 하지 않았고 자신보다 앞섰던 정치인 들과 싸우지도 않았다.

    그녀는 어리석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진 찍히려고 베를린 골목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 인물이 "세계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여성 (Angelika Merkel)이며, 6백만 명의 남성에 해당하는 여인으로 묘사된다.

    메르켈은 어제 당의 지도부를 떠나 후임자들에게 뒷일을 넘겼고, 독일과 독일 국민은 더 성숙해 졌다.

    독일의 반응은 국가 역사상 전례가 없었다.

    도시 전체가 집 발코니로 나갔고, 인기 시인, 연주자들 및 기타 시민단체들도 없는 가운데 6분 동안 따뜻한 박수를 보냈다. 자발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우리의 현실과는 달리, 찬사, 위선, 공연, 북소리도 없었고 아무도 "글로리 메르켈(Glory Merkel)"을 외치지도 않았다.

    독일은, 그녀가 전 동독 출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로 뭉쳤고,

    패션이나 빛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고 다른나라 지도자들 처럼 부동산, 자동차, 요트 및 개인 제트기를 사지도 않은 화학물리학자인, 이 독일 지도자에게 작별을 고하였다.

    그녀는 독일의 지도부를 위임 한후, 그녀의 자리를 떠났다.

    그녀는 떠났고, 그녀의 친척들은 그들이 자기 나라에서 엘리트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18년 동안 그녀는 한결같이 새로운 패션의 옷을 갈아 입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 조용한 지도자와 함께 계셨다.

    독일의 위대함이 하나님과 함께하기를 ... !

    기자 회견에서 한 기자는 Merkel에게 물었다: '우리는 당신이 항상 같은 옷만 입고 있는 것을 주목 했는데, 다른 옷이 없지요?'

    그녀는 대답했다.

    "나는 모델이 아니라 공무원입니다."

    또 다른 기자 회견에서도, 한 기자가 물었다: '집을 청소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가사 도우미가 있는지를?'

    그녀는

    “아니요, 저는 그런 도우미는 없고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집에서, 남편과 저는 매일 이 일들을 우리끼리 합니다.”

    그러자 다른 기자가 물었다.

    '누가 옷을 세탁합니까, 당신이나 당신의 남편?'

    그녀의 대답은

    "나는 옷을 손 보고, 남편이 세탁기를 돌립니다. 대부분 이 일은 무료 전기가 있는 밤에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아파트와 이웃사이에는 방음벽이 있어서 이웃에 피해를 주지 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나는 당신들이 우리 정부의 일의 성과와 실패에 대해 질문하여 주기를 기대합니다."고 말했다.

    Mrs. Merkel은 다른 시민들처럼 평범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녀는 독일 총리로 선출되기 전에도 이 아파트에 살았고, 그 후에도 그녀는 여기를 떠나지 않았으며, 별장, 하인, 수영장, 정원도 없다.

    이 여인이 유럽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의 총리 메르켈이다!

    [위의 글은 어느 러시아인이 그들의 뽑내는 사치한 거부 푸틴 대통령과 비교한, 메르켈 총리에 관해 Facebook에 올린 내용이다.]

    * 그녀는 정직했고 진실했으며 자랑 하지도 않았고 꾸밈성도 없었다.

    참 존경스럽고 대단한 사람이다.

    우리와 비교할 때 낮 뜨거운 현실이다!

  • 뉴욕타임스 아시아 디지털 허브 서울로 옮겨

    뉴욕타임즈 본사 [이미지 : IK's World Trip, CC BY 2.0]

    뉴욕타임스 아사이 디지털 허브가 서울로 옮겼습니다.

    서울 종로구 스탠더드차터드 건물에 입주한 NYT 디지털허브는 5월10일부터 공식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NYT 디지털 허브의 서울 이전은 국제 사회 특히 아시아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상이 높이 올라갔다는 것을 뜻한다는 점에서 기분 좋은 일입니다.

    서울 사무소의 규모는 최대 50명까지 근무할 수 있는 규모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NYT 디지털 허브에는 에디터와 직원 등 20여 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이는 뉴욕타임스 뉴욕 본사와 비숫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진정되면 근무 인력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스티븐 던바 존슨 NYT 국제부문 사장은 최근 <코리아중앙데일리>와 가진 인터뷰에서 서울로 옮긴 이유에 대해 “향후 5년, 10년 20년을 생각했을 때 서울이 뉴스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NYT는 지난해 7월 홍콩에 있는 디지털 허브를 서울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NYT는 이전 장소를 놓고 방콕과 서울, 싱가포르, 도쿄 등을 검토했다고 합니다. 

    서울이 외국 기업에 친화적이고 독립적 언론활동이 가능하며 아시아 지역 주요 이슈에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이전지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NYT는 현재 뉴욕 본사와 런던, 홍콩, 서울 등 4곳을 통해 24시간 온라인 기사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 세계 맥도널드 직원들 한글 유니폼 입는다

    이미지 : SAINT 트위터

    세계 맥도널드 매장의 직원들이 한글이 적힌 유니폼을 입는다고 합니다.

    글로벌 패션 매체 세인트 (SAINT)는 12일 트위터에 5월26일부터 맥도널드 직원들이 입을 티셔츠를 공개했습니다. 

    세인트는 이 티셔츠가 맥도널드와 방탄소년단과 협업해 만든 동식 티셔츠라고 설명했습니다. 

    티셔츠는 검은색과 짙은 회색으로 디자인됐는데 왼쪽 상단에는 방탄소년단과 맥도널드의 로고가 있고 그 아래에 방탄소년단과 맥도널드 한글 초성 자음인 ‘ㅂㅌㅅㄴㄷ’와 ‘ㅁㄷㄴㄷ’이 새겨져 있습니다.

    맥도널드는 26일 미국을 시작으로 세계 49개국에서 방탄소년단과 콜라보 한 ‘BTS 세트(BTS Meal)’도 내놓습니다. 이 세트는 맥너겟, 감자튀김, 콜라 등으로 이뤄졌습니다. 
     
    맥도널드가 대중 가수와 협업해 만든 메뉴를 글로벌로 선보이는 것은 처음입니다. 지난해 힙합 가수 트래비스 스콧과 협업한 매뉴를 만들었지만 판매는 북미 매장에서만 이뤄졌습니다. 

  • 6년전 최저연봉 7만달러 실험한 회사 지금은?

    이미지 : Gravity Payments 유튜브

    2015년 미국 시애틀의 카드 결제 시스템 회사 그래비티 페이먼츠의 CEO인 댄 프라이스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발표를 했습니다.

     

    당시 110만 달러이던 자신의 연봉을 90% 줄이는 대신 직원 117명의 최저연봉을 3년 안에 7만 달러까지 올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프라이스는 자신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2015년 5만 달러에서 시작해 2016년 6만 달러, 2017년 7만 달러로 직원들의 최저연봉을 인상했습니다.

     

    최저 연봉 기준을 7만 달러로 잡은 이유는 ‘인간은 7만달러의 연봉을 받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교수의 연구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카너먼 교수는 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프라이스의 결정을 무모한 실험이라고 봤습니다. 폭스뉴스는 그를 사회주의자라며 직원들이 조만간 식량 배급을 받기 위해 줄을 서게 될 것이라고 냉소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소득이 높아지면 직원들의 행복도가 높아지고 이는 회사의 성장으로 이어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났습니다. 그래비티 페이먼츠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미국 경제 전문지 보도에 따르면 그래비티의 고객은 2배 늘고 거래 규모는 2015년 38억 달러에서 102억 달러로 268% 증가했습니다. 수익도 3배가 뛰었습니다. 고객 이탈률은 미국 평균치인 25%를 밑돌았습니다. 

     

    프라이스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집을 산 직원이 10배 늘고 아기를 가진 직원도 10배 늘었다”며 “직원의 70%기 빚을 완전히 갚았고 이직률도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직장에 만족한 직원들은 회사의 수익 창출에 크게 기여하고 이직률이 낮아진 데다 입사지원자가 너무 많아 사람을 찾는데 돈과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래비티 직원들의 급여도 매년 인상돼 현재 평균 연봉은 10만 달러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힘든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지난해 3월 수익이 55%나 줄어서 큰 위기에 처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프라이스는 해고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프라이스는 전 직원을 모아 놓고 회사의 어려운 상황을 솔직하게 알렸습니다. 회의가 마칠 때쯤 직원의 98%가 일시적 급여 삭감을 신청했다고 합니다. 

     

    다행이 두 세 달 뒤에 회사 수익이 반등해 프라이스는 다시 직원들의 급여를 원래 수준으로 되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삭감했던 급여도 모두 다시 채워줬습니다.

     

    좋은 뜻과 선한 행동이 회사의 성장을 가져왔고 위기도 쉽기 이길 수 있도록 해준 겁니다.

     

    프라이스가 직원들의 최저 연봉을 7만 달러로 정하기로 한 이유는 친구로부터 들은 말 때문이었습니다. 

     

    어느날 등산을 함께 하던 친구가 그에게 하소연을 했습니다. 집주인이 월세를 200달러 올린다고 하는데 감당할 수가 없다는 거였습니다. 친구가 ‘투잡’까지 뛰어도 감당이 안된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났다고 합니다. 

     

    프라이스는 친구 말을 듣고 그래비티 페이먼츠 직원들의 임금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친구의 연봉은 자신이 만든 회사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는 직원들보다 적지 않았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때를 회상하며 “절망감 때문에 며칠 잠을 잘 수 없었다. 내 친구도 우리 직원들도 그런 대접을 받아서는 안됐다”고 말했습니다. 

     

    프라이스가 ‘생활연봉’이라고 정한 7만 달러는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논란이 됐습니다. 극우 성향의 라디오 진행자 러시 림보는 “이 회사는 사회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MBA 연구자로 감이라며 곧 망하게 될 것”이라는 저주섞인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회사 임원 2명은 말이 안된다며 사표를 던졌고 심지어 자신의 친형으로 공동설립자인 루카스는 기업가치를 떨어뜨렸다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일부 고객사는 최저연봉 인상이 수수료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거래를 끊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연봉 인상 뒤 회사는 꾸준히 성장했습니다. 프라이스 바람대로 직원들의 행복도는 높아졌고 이는 고객들의 만족도 증가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2016년 직원들은 2016년 10만 달러가 넘는 테슬라 전기차를 프라이스에게 선물하는 서프라이즈 행사를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 블룸버그 “한국 경제 지난해 G7 진입”

    한국이 1인당 국민 총소득(GNI) 기준으로 G7에 진입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1월 25일 효과적인 코로나19 방역과 반도체 등 수출 호조에 힘입어 한국의 2020년 1인당 국민총소득이 주요 7개국(G7) 수준에 들었을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블룸버그는 2019년 세계은행(WB) 자료를 인용해 한국이 이탈리아를 제치고 세계 7위 안에 진입했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한국의 2019년 1인당 GNI는 3만3790달러로 3만4530달러인 이탈리아에 약간 뒤졌지만 2020년 이탈리아 경제가 대규모 봉쇄 때문에 약 9% 정도 위축됐기 때문에 지난해 한국의 이탈리아를 앞섰을 것이라는 겁니다. 

     

    실제 한국은 국민적 협조에 바탕한 뛰어난 방역 역량으로 지난해 다른 선진국에 비해 경제 분야에서 선방했습니다. 

     

    한국은행이 26일 발표한 4분기 실질 GDP 성장률은 1.1%였습니다. 지난해 연간 GDP 성장률은 –0.99%로 집계됐습니다. 

     

    비록 역성장하기는 했지만 OECD 국가들 가운데 1위입니다.

     

    이런 이유로 국제통화기금(IMF)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9%에서 3.1%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IMF는 1월 26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수정치’ 보고서에서 한국을 포함한 30개국의 성장 전망을 공개했는데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10월 전망보다 0.2%포인트 올렸습니다.

  • 김범수 카카오 의장 “전 재산 절반 기부”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55) 의장은 8일 카카오 및 계열사 전 임직원에게 보낸 신년 카카오톡 메시지에서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고 적었습니다.

     

    김 의장은 "격동의 시기에 사회문제가 다양한 방면에서 더욱 심화되는 것을 목도하며 더이상 결심을 더 늦추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 다짐은 공식적인 약속이 될 수 있도록 적절한 기부서약도 추진 중에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김 의장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할지는 이제 고민을 시작한 단계"라면서 "카카오가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사람을 찾고 지원해 나갈 생각"이라고 전했습니다. 

     

    김 의장의 재산은 개인 명의로 보유한 카카오 주식 1천250만주(전날 종가 기준 5조7천억원) 등 총 10조원이 넘습니다. 절반만 기부해도 5조 원 이상입니다. 

     

    김 의장은 1998년 한게임을 창업해 2000년 네이버와 합병시킨 다음 NHN 공동대표를 맡았고 2007년 자리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 뒤 한국으로 돌아와 2010년 카카오톡을 내놓았고, 2014년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인수했습니다. 

     

    다음은 김범수 의장이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 전문입니다. 카카오는 권위주의적 문화를 바꾸기 위해 직함 대신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릅니다. 브라이언은 김 의장의 닉네임입니다. 

     

    안녕하세요 크루여러분, 브라이언입니다.

     

    새로 생긴 크루전용 소통채널에 첫 콘텐츠를 보내게 되어 부담도 되고 영광스러운 마음도 있네요. 

     

    지난 1년은 코로나가 지속되면서 예상보다 변화가 심하고 어려운 한 해였습니다. 이런 시기에도 의미있는 성장을 이끌어내 주신 크루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모든 영역에서 비대면이 강화되는 상황과 급격한 기술 발전이 겹쳐지면서 세상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영역으로 빠르게 진입하였습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할 수 있는 이번 변화의 물결은 세상을 어느 곳으로 이끌고 갈지 두렵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이 시기에 이루어 온 것에 안주하지 않고 어떤 도전을 해 나가야 할까요? 언제나 그래왔듯이 공동체의 리더분들과 크루분들이 함께 답을 찾아가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도 지난 3월에 10주년을 맞아 사회문제 해결의 주체자가 되자고 제안드린 후 무엇을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요. 격동의 시기에 사회문제가 다양한 방면에서 더욱 심화되는 것을 목도하며 더이상 결심을 더 늦추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짐은 공식적인 약속이 될 수 있도록 적절한 기부서약도 추진중에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할지는 이제 고민을 시작한 단계이지만, 카카오가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사람을 찾고 지원해 나갈 생각입니다. 구체적인 플랜은 크루 여러분들에게 지속적으로 공유드리며 아이디어도 얻고 기회도 열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점점 기존의 방식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가 많아지면서, 함께 지혜를 모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만간 더 깊은 소통을 할 수 있는 크루간담회도 열어보려고 하니 그때 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다시 한번 크루 여러분들의 열정과 도전을 응원하며,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1. 2. 8. 브라이언

  • 한국 호랑이 모티브 동화, 미국 아동문학 '노벨상' 타다

    이미지 : 테이 켈러 페이스북

    한국계 미국인 작가가 미국의 아동청소년 문학계 최고상을 수상했습니다. 

     

    미국도서관협회(ALA)는 25일(현지시간) 테이 켈러(27)의 '호랑이를 잡을 때'(When You Trap a Tiger)를 '2021 뉴베리 메달'(John Newberry Medal) 수상작으로 발표했습니다.

     

    1921년 제정된 ‘뉴베리 메달’은 미국에서 '아동·청소년 도서계의 노벨상'으로 불릴 정도로 권위 있는 상입니다. 

     

    켈러는 ‘호랑이를 잡을 때’라는 책으로 100번째 뉴베리상 수상자가 됐습니다. 켈러의 두 번째 작품인 이 책은 만 8~12세를 대상으로 한 동화책으로 지난해 1월 펭귄랜덤하우스가 출판했습니다. 

     

    ‘호랑이를 잡을 때’는 켈리가 어린 시절 외할머니로부터 들은 한국 전래동화에서 영감을 얻어서 쓴 작품입니다. 

     

    주인공 릴리의 가족이 병든 할머니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뤘는데 신비한 호랑이가 나타나 릴리에게 비밀스러운 가족사를 풀도록 하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켈러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려둔 이 책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할머니가 호랑이들로부터 무언가를 훔쳤습니다. 이제, 호랑이들은 그것을 돌려받기를 원합니다. 호랑이들 가운데 한 마리가 릴리에게 할머니의 건강을 되찾게 해주는 것을 대가로 훔친 것을 돌려달라는 거래를 제안합니다...” 

     

    2020년 1월 책이 출판됐을 때 켈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이 책을 쓰는 것은 정말 긴 여정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게 너무 개인적인 것이라 잘못 쓸까봐 너무 걱정했고 몇 번이나 그만둘 뻔 했습니다. 18번이나 다시 썼지요.”

     

    심사위원단은 이 책에 대해 "한국 전래동화에 생명을 불어넣은 마술적 사실주의(magical realism)의 걸작"이라며 "사랑과 상실, 희망을 생각해보게 한다"고 격찬했습니다. 

     

    켈러의 어머니는 '군 위안부'(Comfort Woman·1997)와 '여우 소녀'(Fox Girl·2002) 등을 쓴 소설가  노라 옥자 켈러(54)입니다. 

     

    켈러는 한국인 어머니와 독일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나 세 살 때까지 서울에서 살다 하와이로 이주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김치와 흑미밥, 이야기를 양분으로 자랐다"고 소개합니다.

     

    이미지 : 테이 켈러 페이스북

  • 의사당 청소하는 한국계 하원의원, 미국 사회에 감동

    앤디 김 미국 하원의원이 난장판이 된 의회의사당을 청소하고 있다. 이미지 : AP통신

    한국계 미국 연방 하원의원인 앤디 김 민주당 의원이 난장판이 된 연방의회 의사당을 청소하는 모습이 미국 사회에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김 의원은 7일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떠난 뒤 비닐 봉지를 들고 의사당 바닥에 널린 쓰레기를 주워 담았습니다. 

     

    양복을 입은 채 무릎을 꿇고 페트병 등을 주워담는 그의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되면서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김 의원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사랑하는 것이 망가졌을 때 누구라도 고치고 싶을 것입니다”라며 겸손해 했습니다.

     

    이어 “나는 의회를 사랑합니다. 그 자리에 있어 영광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전날 오후1시 미 연방의회에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를 확정하는 상·하원 합동회의가 열렸습니다. 

     

    하지만 그 시각에 맞춰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 수천 명이 의사당 건물에 난입했고 일부 시위대는 유리창을 깨고 의사당 안에 들어와 기물을 파손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의사당을 빠져 나간 뒤 김 의원은 참담한 마음으로 의사당 안을 걷다가 쓰레기를 치우는 경찰관을 보고 봉투를 달라고 해서 같이 청소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같은 민주당 소속 뉴저지주 하원의원인 톰 맬리나우스키가 그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멜리나우스키 의원은 “새벽 1시쯤누군가가 벤치 아래 무릎 꿇고 뭔가 줍는 걸 봤는데 앤디였습니다”라며 “앤디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려고 청소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언론에 전했습니다.

     

    1982년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태어나 뉴욕 근처 뉴저지에서 자란 앤디 김 의원은 시카고대 정치학사, 영국 옥스퍼드대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09년 국무부에 들어간 그는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사령관의 전략 참모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이라크 담당 보좌관 등을 역임한 중동 전문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 “계좌번호 불러주세요. 임대료 절반 돌려드릴게요”

    광주광역시의 한 임대인이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임차인을 돕기 위해 임대료 절반을 돌려줬습니다.

     

    광주시에 사는 홍영수씨는 지난해 12월29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자신이 겪은 감동적인 일을 소개했습니다. 홍씨는 성당에서 기도할 때 쓰는 ‘컵초’를 만들어 납품하는 일을 합니다. 컵초는 작은 유리컵 안에 들어 있는 초입니다. 

     

    홍씨는 많이 벌지 못해도 생활에 큰 어려움을 없었는데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위기가 찾아왔다고 합니다. 성당 미사가 중단되고 성당을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져 컵초 사용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입니다. 매출이 거의 반토막이 났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2월22일 임대인이 전화를 걸어왔다고 합니다. 11년째 가게를 임차해서 쓰면서 건물주가 연락을 한 것은 처음이어서 걱정부터 됐습니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임대인은 ‘코로나 때문에 힘드시죠’라는 격려와 함께 작은 도움이라도 됐으면 좋겠다면서 1년 임대료의 절반을 돌려주려하니 계좌번호를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계좌번호를 알려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1년치 임대료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이 입금됐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홍씨는 임대인이 11년 동안 임대료를 한 번도 올린 적이 없었다며 자신도 힘닿는 한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며 살고 싶다고 돌려받은 임대료의 일부를 나눔단체에 기부하겠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