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뉴스

Contents List 3

  • 이영표 전 국가대표 선수가 양말 사업을 하는 이유

    이미지 : 유튜브 캡쳐

    이영표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가운데 한 명입니다. ‘헛다리짚기’ 드리블로 전 국민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요.

     

    그 뒤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독일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 사우디아라비아 알 힐랄, 캐나다 밴쿠버 화이트캡스 등 세계 유명 축구 클럽에서 활약했습니다.

     

    은퇴한 뒤에는 KBS 축구 해설위원으로 경기 결과를 족집게처럼 맞히는 ‘예언’으로 시청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축구가 삶 그 자체였던 이영표 씨는 지금 전혀 낯선 분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그의 일터는 하는 곳은 사회적 기업들의 성지인 서울 성수동 소셜 벤처 빌딩입니다. 스타트업인 ‘삭스 업(Socks up)’의 대표가 그의 직함입니다. 삭스 업은 양말이나 풋 크림과 같은 풋 웨어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회사입니다.

     

    ‘삭스 업’은 축구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넘어졌다 일어날 때 혹은 프리 킥이나 코너킥을 차기 전에 무의식적으로 양말을 끌어올리는 행위를 일컫는 말입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마음을 다잡는다는 뜻을 담고 있지요.

     

    이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른 이들을 돕고 ‘삭스 업’ 시키고 싶었는데 기부를 받아서 하는 것은 지속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삭스 업은 홈페이지에 자신들이 하는 일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양말을 끌어올리게 되는 인생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저희는 이 순간들을 ‘SOCKSUP MOMENT’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SOCKSUP MOMENT는 당신의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순간일 수도 있고, 위기를 극복하게 해준 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묻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의 삭스 업 모멘트는 언제인가요? 누군가의 SOCKSUP MOMENT를 한 켤레의 양말로 구현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것이 단순한 양말 한 켤레를 넘어, 여러분의 일상 속 크고 작은 ‘순간’들을 일깨워주는 작은 상징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홈페이지의 글처럼 삭스 업은 누군가의 스토리를 한 켤레의 양말로 만들어 그 양말을 신는 사람에게 힘과 위안을 주고 한 사람의 SOCKSUP MOMENT가 다른 사람의 SOCKSUP MOMENT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탄생한 상품이 유명 힙합 아티스트 코드쿤스트의 편지로 디자인한 양말입니다.

     

    코드쿤스트는 무명 시절 자신을 알리고 싶어 미국의 유명 래퍼인 조이 베데스에게 메일을 보냈다고 합니다. 당연히 답장이 없었지요.

     

    그는 실망하지 않고 베데스의 매니저, 스타일리스트 등 주변 인물들에게 계속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우연히 편지를 읽은 매니저가 그의 음악을 베데스에게 들려줬고 그는 코드쿤스트를 당장 로스앤젤레스로 초청했습니다. 그렇게 코드쿤스트는 유명 아티스트가 될 수 있었습니다.

     

    삭스 업은 코드쿤스트가 베데스에게 보낸 편지로 디자인 한 양말을 만들었습니다.

     

    삭스업에서 제작한 코드쿤스트가 베데스에게 보낸 편지로 디자인한 양말 [이미지 : 삭스업 홈페이지]

     

    홈페이지에 동영상으로 올라 있는 ‘SOCKSUP MOMENT - Footprint Project VOL1’은 누군가에게 SOCKSUP MOMENT를 주기 위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주인공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사는 17세 소년 사킬레 미콴다입니다. 그는 축구가 자신의 인생이라고 할 정도로 축구를 좋아하고 프로 선수가 되고 싶어 하는 소년입니다.

     

    그가 사는 우스터는 케이프타운에서 동쪽으로 130km 떨어진 작고 가난한 마을입니다. 우스터는 꿈도 희망도 없이 깡패가 되거나 마약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에서 프로 입단 테스트를 받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삭스 업에 100통 가까운 편지를 보냈습니다.

     

    2018년 5월 삭스 업은 그를 초청해 테스트 기회를 줬습니다. 안타깝게도 불합격했습니다. 하지만 미콴다의 표정은 밝았다고 합니다. 아프리카에 태어났기 때문에 기회가 없는 게 아니라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는 억울함이 사라졌다는 겁니다. 미콴다는 자신도 남에게 기회를 주는 삶을 살고 싶다는 다짐을 남기고 고향으로 돌아 갔다고 합니다.

     

    이 대표는 독실한 기독교 인으로 다른 이들을 돕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그는 국제 어린이 양육기구인 컴패션의 한국 홍보대사도 맡고 있습니다. 컴패션은 1952년 에버렛 스완슨 목사가 한국의 전쟁고아를 돌보기 위해 만든 국제기구입니다. 그 자신도 여섯 가정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그는 <빛과 소금>이라는 잡지에 삭스 업을 시작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건 여러 가지가 있어요. 먹고, 자고, 입는 것이 기본이겠지만 사람은 그것만으로는 살 수 없어요. 사람은 영적 존재니까 희망이 있어야 해요. 먹는 것은 사람을 존재하게 하지만,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희망이에요. 저는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절망에 빠진 누군가, 기회를 간절히 기다리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잡아주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삭스업 무브먼트’의 기본 취지예요."

    

  • 500대 기업, 2018년에 2조6천억 사회공헌에 사용

    이미지 : SK

    지난해 국내 상위 500대 기업이 사회 공헌에 쓴 돈이 2조 6천억을 넘었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2일 매출 기준으로 국내 상위 500대 기업이 지난해 사회 공헌에 지출한 금액이 2조 6061억 원이었다고 밝혔습니다.
     
    2016년 2조 947억 원보다 24.4% 늘었지만 이듬해인 2017년 2조 7243억 원보다는 4.3% 줄어든 수치입니다.
     
    500대 기업의 지출액을 평균하면 기업당 사회 공헌 관련 지출액은 126억 5077만 원이었습니다.
     
    지출 분야별로 보면 취약계층 지원에 쓴 돈이 37.6%로 가장 많았습니다. 다음으로 '교육·학교·학술'(14.7%)과 '문화예술·체육'(11.0%), '창업 지원'(10.9)% 등의 순이었습니다.
     
    기업들이 대표적 프로그램으로 꼽은 사회 공헌 사업은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사업이 37.2%로 가장 많았습니다. 장애인(10.7%)과 노인(9.8%) 등을 대상으로 한 사업이 뒤를 이었습니다.

  • 애플 캘리포니아 주택 문제 해결에 25억 달러 투입

    애플이 미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의 주택문제 해결을 위해 25억 달러를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이미지 : 피스우즈]

    애플이 자사 사옥이 위치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 부근의 주택 문제 해결을 위해 25억 달러를 투입한다고 밝혔습니다.

     

    5일 미국 CNBC에 따르면 애플은 4일 실리콘밸리와 주변에 적정가격의 주택을 더 많이 공급하기 위해 캘리포니아주와 연계해 25억 달러 규모의 주택 사업을 추진합니다.

     

    실리콘밸리는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IT 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임직원이 늘어나 만성적 주택난을 겪고 있는 지역입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애플 블로그를 통해 “적정가격 주택은 안정성과 품위, 기회, 자부심을 의미한다"라며 “우리는 실리콘밸리가 활기찬 장소로 남도록 해야 할 커다란 시민적 책무를 느낀다"라고 대규모 주택 사업을 추진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애플이 내놓은 25억 달러 가운데 10억 달러는 캘리포니아주가 저소득과 중산층을 위해 새 주택을 짓는 것을 지원하는 ‘적정가격 주택 투자 펀드’에 투입됩니다.

     

    교직원, 서비스직 노동자, 전역 군인 등이 첫 주택을 지원할 때 주택 담보대출을 지원하는 데도 10억 달러가 쓰입니다.

     

    애플은 25억 달러 가운데 3억 달러는 적정가격 주택을 지을 수 있는 애플 소유의 토지로 내놓기로 했습니다.

     

    나머지 1억 5천만 달러는 비영리단체 ‘하우징 트러스트 실리콘밸리’의 적정가격 주택 펀드에, 5천만 달러는 노숙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각각 기부됩니다.

     

    구글은 앞서 7월 실리콘밸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 만 일대에 적정가격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10억 달러를 내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페이스북도 지난 10월 10억 달러 기부를 약속한 바 있습니다.

    

  • 하루 100원으로 묵을 수 있는 호텔

    이미지 : THANHNIEN

    베트남 호찌민에서 사업을 하는 응웬 탄 응웬 씨는 남부 껀토시의 한 병원을 찾았다가 가슴이 아픈 광경을 목격합니다.

     

    장기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은 가난한 사람들이 머물 곳이 없어 병원 복도와 벤치에서 지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하루 8만 동(4천 원)~15만 동(7500원) 하는 숙박비를 장기간 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응웬 씨는 가난한 이들이 비용 부담 없이 오래 머물면서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숙박시설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끼엔 안 레지던트(Kien An Residence)는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응웬 씨는 지금 레지던트로 운영되고 있는 건물을 월 700만 동(한화 약 35만 원)에 임대한 뒤 4천만 원 가까운 돈을 들여 리모델링을 했습니다.

     

    지난 7월 끼엔 안 레지던트는 15개의 객실과 객실별로 이층 침대 2개씩을 갖춘 어엿한 숙박시설로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객실에는 에어컨과 선풍기도 달았습니다. 와이파이도 됩니다.

     

    베트남 기준으로 중급 호텔 수준의 시설로 숙박료는 하루에 1500동(한화 약 75원)~2만 2000동(1600원)입니다. 숙박료는 숙박객의 처지에 따라 값이 달라집니다. 장애, 노인, 어린이는 1500동, 학생은 6000동, 보통 사람은 2만 2000동 등입니다.

     

    탄 린 매니저는 베트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무료로 숙박할 수 있는 공동주택 개념이지만 전기와 수도료를 내도록 했습니다. 숙소 유지비로 쓰기 위해서입니다.”

     

    끼엔 안 레지던트에는 현재 2명의 직원이 청소, 빨래, 숙소 관리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봉사자들입니다.

     

    ‘고객'들은 자신의 가난한 처지를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응웬 씨와 직원들은 이곳을 찾는 이들이 정직하고 선하다고 믿습니다.

     

    “정직한 사람을 믿어줌으로써 그들이 가진 선의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 로저 페더러, 말라위, 그리고 100만 명의 아이들

    이미지 : BBC News 유튜브 캡처

    로저 페더러는 역사상 최고의 테니스 선수라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2019년 3월 남자 프로 테니스(ATP) 투어 단식에서 미국의 지미 코너스에 이어 두 번째로 통산 100번째 우승을 달성한 선수입니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237주 동안 세계 랭킹 1위에 올라 역대 최장 연속 랭킹 1위를 기록했고 302주 동안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한 유일한 선수이기도 합니다.

     

    많은 이들이 페더러가 써나가는 위대한 테니스 역사를 알고 있지만 아프리카 말라위의 가난한 아이들을 돕는 그의 담대한 프로젝트를 아는 이들은 적습니다.

     

    페더러의 어머니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입니다. 페더러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아프리카를 자주 찾았는데 그 과정에서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처한 어려운 현실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됐다고 합니다.

     

    페더러는 2004년 아프리카 말라위에 로저 페더러 재단을 만들어 아이들의 교육과 급식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재단은 2018년까지 100만 명의 아이들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고, 이를 달성했습니다.

     

    로저 페더러 재단을 이끌고 있는 제니 핸델 CEO는 목표를 달성한 뒤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결과를 달성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지만 로저 페더러가 늘 자신의 목표를 달성했듯이 우리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100만 명의 아이들이 학교, 유치원 등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보다 나은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로저 페더러는 BBC와 인터뷰에서 “아이들을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 환상적인 일”이라며 “테니스 선수가 된 뒤에 늘 이곳이 내가 돌아와서 도와야 할 곳이라고 늘 생각했고 그럴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라고 말했습니다.

  • 지갑을 잃어버린 뒤 계좌에 입금된 돈

    이미지 : 팀 캐머런 트위터

    영국 런던에 사는 팀 캐머런(30)이 지갑을 잃어버렸다 찾은 재미있는 사연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캐머런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데 퇴근길에 청바지 뒷주머니에 넣어둔 지갑이 땅에 떨어졌지만 집에 도착해서야 지갑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지갑 안에는 운전면허증, 신용카드 등이 들어있어서 도용됐을 가능성도 있어서 걱정이 됐습니다.

     

    캐머런은 곧바로 자신의 은행 계좌부터 조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의 계좌에 세 차례에 걸쳐 돈이 입금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돈을 입금한 사람은 지갑을 주운 사이먼 바이 포드(30)였습니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 길에서 떨어진 지갑을 발견했는데 지갑 안에는 주인을 확인할 단서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팀 캐머런이라는 이름도 흔해서 페이스북을 통해 확인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지갑을 뒤지던 바이 포드는 은행 카드에 적힌 계좌번호를 발견하고 지갑 주인에게 연락할 수 있는 지혜를 떠올렸습니다. 지갑 주인이 명의 도용을 우려해 맨 먼저 자신의 계좌를 열어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계좌로 1센트씩 3차례에 걸쳐 3센트를 입금했습니다. 그가 3차례 입금한 이유는 한 번 입금할 때마다 쓸 수 있는 영문 단어가 18개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바이포드는 세 차례 입금을 하면서 캐머런에게 “Hi, I found your” “wallet in the road” “Call 000-0000”이라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캐머런은 곧바로 전화를 해 바이포드를 만나 지갑을 돌려받았고 고맙다는 뜻으로 레드와인 한 병을 선물했다고 합니다.

  • 베트남 스포츠 영웅이 금메달을 경매에 부친 이유

    이미지 출처 : 유튜브 캡쳐

    베트남의 역도 영웅이 자신이 딴 금메달을 경매에 내놓았습니다.

     

    세계선수권 우승자이자 2016년 리우 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레 반 꽁 씨는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금메달을 팔기로 했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오래 생각한 끝에 2016년 월드컵에서 딴 금메달을 경매에 내놓기로 했습니다. 이 금메달은 몇 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내 몸의 일부와 같은 소중한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간암 투병 중인 이웃집 아이의 치료비를 위해 메달의 새 주인을 찾고 있습니다.”

     

    그는 2016년 패럴림픽에서 베트남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땄고 49kg 급에서 세계 신기록을 갖고 있는 베트남 스포츠계의 영웅입니다.

     

    그가 자신의 메달을 경매에 내놓은 것은 간암 투병 중인 이웃집 아이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레 반 꽁 씨는 지난 7월 이웃집에 사는 여학생이 간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11학년에 재학 중인 그 소녀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신도 부상으로 1년 동안 운동조차 하지 못한 채 전자제품 수리로 생계를 이어가는 상황이라 고민이 됐습니다.

     

    그는 자신의 물건을 팔아서라도 치료비에 보태겠다 마음먹었는데 그때 금메달이 생각났습니다. 이 메달은 경매 사이트에 올린 지 이틀 만에 레 반 꽁 씨의 한 달 수입의 10배가 훨씬 넘는 약 300만 동(약 150만 원)의 제시가를 받았습니다. 경매는 31일까지 진행됩니다.

    

  • 5명의 어린이 탐정, 실종된 97세 치매 할머니 찾다

    이미지 : FOX40 News 캡쳐

    4명의 어린이가 실종된 치매 할머니를 찾았습니다.

     

    미국 폭스뉴스 등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즈빌 경찰서는 지난 1일 페이스북에 실종 신고가 접수된 한 할머니를 찾는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 할머니는 97세의 글렌타 벨포드 할머니로 치매를 앓고 있었는데 대화를 나누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경찰의 페이스북 계정에는 할머니를 걱정하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하지만 댓글로 걱정하는 데서 나아가 직접 할머니를 찾아 나선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동네에 사는 5명의 어린이들이었습니다.

     

    로건 헐트만 등 10살 전후의 친구들 5명은 이 소식을 듣자 각자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누비며 할머니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서성이고 있던 벨포드 할머니를 찾았습니다. 

     

    경찰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지 4시간쯤 지났을 때 헐트만과 친구들은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할머니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아이들은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할머니를 곁에서 지켰습니다.

     

    이들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저 돕고 싶었어요. 우리는 다른 이를 돕는 게 좋아요”라고 말했습니다.

  • 추모객들이 묘지에서 웃음을 터트린 이유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추모객들이 묘지에서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BBC 등에 따르면 12일 아일랜드 더블린의 한 묘지에서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세이 브래들리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고인이 모셔진 관이 무덤 바닥에 놓일 때 눈물을 훔치던 추모객들이 갑자기 웃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웃음을 터트린 이유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고인의 생전 목소리 때문이었습니다.

     

    “여보세요? 이봐요. 나 좀 꺼내줘. X팔 도대체 내가 어디 있는 거야? 나 좀 꺼내달라니까. 여긴 너무 어두워. 신부님, 내 말 들려요? 저 세이에요. 상자 안에 있어요. 물론 당신 앞에는 없지요. 죽었으니까요.” 

     

    브래들리는 마지막으로 “안녕, 안녕, 이제 작별을 해야겠어”라는 가사를 담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추모객들은 브래들리의 유쾌한 목소리에 모두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그의 소망대로 장례식은 조금 밝은 분위기에서 마무리됐습니다.

     

    퇴역군인이던 세이 브래들리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 자녀들에게 자신이 녹음한 목소리를 꼭 틀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브래들리의 딸 안드레아는 언론에 자신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죽음을 준비하며 녹음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자신의 SNS에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유쾌하신 분이었고 자신의 마지막 가는 길을 웃으며 보내주기를 원했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아버지는 엄마가 울지 않고 웃으면서 묘지를 떠나기를 바라셨어요.”

    

     

  • 베트남 오지 마을에서 인술 펴며 20명 입양한 의사

    이미지 : tuoi tre 유튜브 캡처

    오지 마을에서 20년째 인술을 베푸는 의사가 있습니다.

     

    진 덕 티엔(51)은 1998년 후에 의약학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베트남 중부 꽝찌 근처의 어 바오로 갔습니다. 어 바오는 600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입니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큰 도시 다낭이 있었지만 그는 돈이나 명예 대신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일에 마음이 갔습니다.

     

    그는 자신이 20년 넘게 살고 있는 어 바오에 처음 간 날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베트남과 라오스 국경 근처의 어 바오에 가기 위해 흙먼지 날리는 길 8km를 걸어서 갔고 도중에 강도 건너야 했습니다.

     

    환경은 더 열악했습니다. 마을 보건소 건물은 나뭇조각으로 얼기설기 엮은 판잣집이어서 환자를 치료하고 돌보기에는 너무 허술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몸이 아픈 것이 악령이 작용한 때문이라고 생각해 기도를 하면 낫는다고 믿었습니다. 진 덕 티엔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처음 2주 동안 아무도 보건소를 찾지 않아 할 일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 덕 티엔은 이 마을의 임산부들이 가장 큰 위험에 처처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 마을의 임산부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강가에 세워진 텐트에서 혼자 아이를 낳아야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집에서 아이를 낳으면 가정에 불행이 찾아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이 마을의 신생아 사망률은 무척 높았습니다.

     

    그는 치료에 앞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일에 나섰습니다. 그는 출산을 앞둔 임산부의 가족들을 설득해 텐트로 가서 여성의 출산을 도왔습니다. 보건소 옆에 임산부가 의료지원을 받으며 출산할 수 있도록 판잣집도 지었습니다.

     

    이와 함께 마을의 지도자들을 찾아가 의료의 중요성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일도 지속적으로 이어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보건소에서 치료받으면 병이 낫는다는 확신을 갖는 데 무려 5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임산부들이 이전과 달리 별 탈 없이 건강한 아이를 낳는 경우가 늘어나자 마을 사람들의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출산일이 가까워지면 보건소를 찾는 여성들이 늘었고 아플 때 치료를 받으러 오는 이들도 생겨났습니다.

     

    지방 정부의 지원을 받아 보건소 건물도 세웠습니다. 판잣집을 허물고 지은 2층 콘크리트 보건소 건물에는 진료실과 함께 14개의 병실을 갖추고 있습니다.

     

    보건소가 자리를 잡자 진 덕 티엔은 다음으로 마을 주민들의 삶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교육이었습니다. 어 바오에 사는 학생들 가운데 상당수가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있었습니다. 학교에 가려면 반나절이나 걸어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내와 논의해 그런 아이들을 입양하기로 했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던 터라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부부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용기를 냈습니다.

     

    부부는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집 근처에 밭을 일궜습니다. 학기기 시작되기 2개월 전부터는 부근 도시의 자선단체를 찾아가 옷가지와 학용품 교재 등을 얻어오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부부가 입양해 키운 아이들은 20여 명이나 됩니다.

     

    진 덕 티엔의 아내 호앙 티 후옹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연히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남편과 나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에 개의치 않았어요. 우리는 그저 아이들이 자라면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을 뿐입니다.”